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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희망] ⑦ "하루만 절망했고 결국 찾아냈죠…딸 사랑이 위한 희망의 길"
기사 작성일 : 2025-01-05 08:00:34

‘사랑아, 사랑해’


윤동진 기자 = 국내에는 치료법이 없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네 살 딸 사랑이의 치료비용을 위해 전국 곳곳을 돌며 후원을 요청하고 있는 전요셉 씨가 29일 오후 최종 목적지인 서울 광화문광장에 도착, 마중 나온 사랑이와 뽀뽀를 하고 있다. 2024.11.29

윤보람 기자 = "처음 시작할 때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란 생각에 조급하고 두려웠지만 이내 기대감으로 바뀌었어요. 작은 빛들이 모여 큰 빛이 되는 것처럼 시민 한 분 한 분이 모아주신 마음이 점점 커져 제 마음도 희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네 살배기 딸 사랑이의 희소병 치료비 모금을 위해 부산에서 서울까지 도보대장정에 나서며 주변에 감동을 줬던 아버지 전요셉(34)씨는 와의 인터뷰에서 북받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는 근육이 퇴행하며 나중에는 스스로 호흡할 힘마저 사라지는 '듀센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다. 여자아이의 경우 5천만분의 1의 확률로 증상이 나타날 만큼 희소한 병이다.

목숨보다 소중한 딸아이의 병을 처음 마주했을 때를 전씨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2023년 5월 청주의 한 병원에서 근육병 소견을 받은 사랑이는 그해 여름 서울 상급병원에서 진행한 유전자 검사에서도 같은 소견이 나오면서 병마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절망감에 전씨는 구토까지 하며 몸부림쳤다.

하지만 절망할 시간조차 없었다. "딱 그날 하루 힘들어했고 다음 날부터는 사랑이를 낫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힘들어할 새도 없었다"고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지난해 1월 듀센 근이영양증이라는 병명을 알게 된 전씨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해외 제약사와 관련 치료를 한 병원, 연구팀, 논문 저자 등을 샅샅이 찾아 직접 이메일이나 전화로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유일한 희망은 최근 미국에서 개발된 유전자 치료제 '엘레비디스'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치료제 발견의 기쁨도 잠시, 국내에 도입되려면 적어도 5년이 걸릴 것이란 얘기를 의료진으로부터 들었다. 미국에 건너가 직접 치료받으려 해도 보험 적용이 안 돼 46억원에 달하는 약값을 오롯이 내야 한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전씨는 치료받을 수 있는 곳으로 일단 가야겠다는 생각에 작년 9월 미국 비자를 신청했다. 하지만 소규모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인 전씨를 상대로 미국 대사관은 한국에 돌아올 기반이 약하다고 판단해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았다.

"근육병 아이들은 하루가 급해요. 오늘의 근력이 가장 강하거든요. 그래서 약이 들어올 날만 기다릴 수 없어 무조건 치료받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운영하던 학원도 다 정리했었는데…"


‘희귀병 앓는 4살 딸 위해 국토대장정 마친 아빠’


윤동진 기자 = 국내에는 치료법이 없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네 살 딸 사랑이의 치료비용을 위해 전국 곳곳을 돌며 후원을 요청하고 있는 전요셉 씨가 29일 오후 최종 목적지인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2024.11.29

그렇다고 주저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다시 현실을 직시하고, 일단 치료비 마련이 급선무라는 생각에 여러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해외 기사가 전씨에게 빛줄기가 됐다. 칠레의 한 어머니가 같은 질환을 겪는 자녀를 위해 국토대장정을 해 53억원이 넘는 후원금을 모았고, 그 돈으로 미국에 치료받으러 간다는 내용이었다.

전씨는 6개월마다 관리해야 하는 난치성 대장 질환을 앓는 데다 무릎 수술을 받아 연골판이 다 제거돼 오래 걷기에 신체적 한계가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너무 절실하니까 '아, 나도 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2주 만에 준비를 마치고 일단 시작해버렸죠."

그렇게 시작한 대장정. 부산에서 서울까지 740㎞를 걷고 또 걸었다.

15페이지 분량의 편지를 매주 20부씩 인쇄해 배낭 속에 넣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과 교회 등 시설에 사연을 전하고 도움을 청했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면 사랑이를 생각하며 이겨냈다. 근육 수축으로 인한 통증 때문에 자면서도 종종 소리 지르며 깨는 사랑이가 훨씬 더 힘들 것이란 생각이었다.

마침내 24일 만에 서울 도심에 진입해 완주를 눈앞에 뒀을 때는 '감사함'이 앞섰다고 전씨는 말했다.

"사랑이를 위해 이렇게 걸을 수 있는 건강과 시간, 기회가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습니다. 하고 싶어도 사정상 못 하는 분들도 많으니까요."


밝은 표정의 사랑이


윤동진 기자 = 국내에는 치료법이 없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네 살 딸의 치료비용을 위해 전국 곳곳을 돌며 후원을 요청하고 있는 전요셉 씨의 가족 사랑이가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웃음을 보이며 뛰고 있다. 2024.11.29

사랑이 사연이 언론에 보도되고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작년 말까지 약 18억원의 거금이 모였다.

후원금은 모두 사랑의열매에 전달돼 사랑이를 위해 사용된다. 사랑의열매는 사랑이를 위한 지정 모금을 계속 진행 중이다.

사랑이네가 거주하는 청주시와 옥산면의 복지회, 교회 등 다른 기관에서도 특별모금을 통해 십시일반 마음을 보탰다.

칠레에도 사연이 알려지며 처음 도보대장정을 하기로 마음먹게 했던 환우 어머니와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연락이 닿았다고 한다. 두 가족은 지구 반대편에서 서로의 건강 회복을 응원하는 특별한 사이가 됐다.

사랑이는 현재 스테로이드제와 영양제를 주입하고 재활훈련을 하면서 근육 퇴행을 최대한 막는 수준의 치료를 받고 있다. 치료비가 다 모금되면 하루라도 빨리 미국에 가서 치료제를 쓰는 것이 전씨의 꿈이다.

국내 듀센 근이영양증 환우는 2천명 정도다. 전씨가 속한 환우회는 패스트트랙을 적용받아 신속하게 치료제를 국내 도입할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의 서명 운동을 하고 있다.

"사랑이처럼 아픈 모든 아이들에게 반드시 희망의 길이, 동행하는 분들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치료제가 빨리 개발되고 아이들이 내일 더 강해지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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