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
이충원 기자 = "강요로 시작된 일은 오래가지 않는다. 사원을 바꾸려면 경영자가 묵묵히 솔선하면 된다."(동아일보 2009.9.26)
일본에서 '화장실 청소의 신(神)'으로 불린 자동차용품 판매업체 '옐로햇' 창업주 가기야마 히데사부로(鍵山秀三郞) 씨가 지난 2일 세상을 떠났다고 일본 매체가 25일 전했다. 향년 92세.
1933년 도쿄에서 태어난 고인은 농고 졸업 후 1953년 자동차용품 판매점인 '디트로이트상회'에 들어갔다. 열악한 업계 상황 탓에 고인이 취업한 곳도 일반 사용자의 방문을 기대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여기서 화장실 청소를 시작, 가게 분위기를 바꿨다.
눈이 내리면 타이어체인 가격을 10배, 20배로 올리는 불투명한 판매 관행에 의문을 품고 1961년 퇴임한 뒤 자전거 행상으로 시작해 1962년 '옐로햇'의 전신인 '로열'을 설립했다. 고도 성장기로 인력난이 심했던 탓에 이류 내지 삼류 취급을 받던 자동차용품 판매업체에 오는 이들은 여러 회사를 전전한 끝에 마음이 피폐해진 이들이었다. 거칠었고, 주의라도 주면 금방 사표를 냈다.
이런 분위기를 바꾸려고 시작한 것도 화장실 청소였다.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 '머리 청소 마음 청소'(2008)에서 "작아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회사로 키우고 싶었지만, 직원에겐 통하지 않았다"며 "외근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책상에 집어 던지고 의자를 발로 차는 직원들의 마음을 치유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잠자코 청소하기 시작했다. 사무실과 화장실을 깨끗하게 해주면 황폐해진 마음도 치유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적었다.
사장이 청소한다고 금방 바뀔리가 없었다. 의아해하던 직원들이 고인을 자발적으로 돕기까지 10년이 걸렸다. 10년이 더 지나자 대부분의 직원이 이른 아침부터 세차하거나 회사와 인근 도로를 청소하기 시작했고, 주변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게 됐다. 이번엔 거래처 화장실을 청소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본사 주변 2.5㎞ 안에 있는 도로와 공원의 쓰레기를 주웠다. 고인의 저서에 따르면 "회사 바로 뒤에 있는 메구로천(川)은 처음엔 오염이 매우 심각했는데, 그 하천을 포함한 지역 일대를 회사 직원들이 청소하기 시작했다. 마을이 깨끗해지자 별안간 아름답고 멋진 가게가 차츰 늘기 시작했고 부동산 가격까지 올라갔다". 회사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세밀하게 분류해서 재활용하려고 쓰레기 전용 창고까지 지었다. 1991년에는 고인과 지지자 35명으로 이뤄진 시민단체까지 만들어 전국을 돌며 학교, 공원, 역 등의 화장실을 청소했다. 전국 122곳 외에 중국, 대만, 브라질 등 해외로도 퍼져나갔다.
청소의 효과는 뭘까.
고인은 '경영자통신'이라는 매체와 인터뷰에서 "상품을 팔 때 보통 품목별로 견적서를 써서 주면 고객이 필요한 상품을 고르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견적서를 쓰지 않아도 됐다. 고객이 수천만엔 규모 거래에서도 신뢰해줬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고객이 옐로햇을 신뢰한 건 직원이 변했기 때문이다. 같은 인터뷰에서 "회사에는 직무 규정이나 취업 규칙이 있지만, 그런 걸 제대로 읽는 사람은 없다. 사원은 직무 규정에 따라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사풍(회사 분위기)에 따라서 일을 하기 때문이다"라고도 했다. 고객 신뢰의 근본에 사풍이 있고, 사풍의 근본에 청소가 있었다는 소리다.
1997년 도쿄증권거래소 1부에 상장했고, 1998년 6월 퇴임할 때까지 일선에서 경영을 진두지휘하며 일본 2위의 자동차용품 판매업체로 성장시켰다. 연 매출 1조원을 넘겼다.
퇴임 후에도 맨손 화장실 청소를 멈추지 않았다. 저서와 인터뷰에서 이 대목을 "다른 이에겐 혹시 병균 옮을까 봐 장갑을 끼라고 권하지만, 나는 내성이 생겨서 변기도 맨손으로 청소한다"며 "용기를 내어 변기에 손을 대면, 지금까지 주저하던 마음이 사라져버린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나면 나머지 청소는 너무도 가볍게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현대비즈니스 인터뷰를 보면 고인은 화장실 청소로 히로시마의 폭주족 젊은이들을 갱생시킨 경험도 있다.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들에게 "뭐야, (맨손으로 변기를 닦을) 용기도 없는 거야"라고 중얼거리자 지기 싫어하는 그들이 경쟁적으로 갈색으로 더러워진 변기를 잡고 반짝반짝 빛이 날 때까지 닦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가장 더러운 일을 진지하게 하는 어른을 목격한 경험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물론이다.
저서와 강연에서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동정은 받더라도 도움은 받지 못한다. 동정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시 행동밖에 없다."
"사람은 보잘것없는 일을 정성 들여 했을 때 비로소 성장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아무것도 아닌 일에 힘써보기를 권한다. 작은 행동이라도 그곳에 기쁨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은 틀림없이 자신감으로 이어질 것이다."
일본 기업인이면서도 성과주의나 매뉴얼을 싫어했다.
"기업에서 성과주의를 도입하는 일이 많은데, 이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는 매우 의문이다. 경영자가 지나치게 성과주의를 고집한 결과, 모든 직원이 어깨동무하고 밖을 향해 진취적으로 나아가야 할 에너지가 안으로 향하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즉, 직원 간의 무한경쟁에 빠져버린 것이다"
"자기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에게는 공손하지만, 자신보다 약한 입장의 사람에게는 차가운 사람, 그런 사람의 밑바닥에 있는 것은 반드시 겉으로 드러난다. 매뉴얼화되어 있는 접객 서비스가 전성을 누리고 있다. 우리 회사에서는 지나치게 매뉴얼화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호텔에서 잘 때도 세면도구를 챙겨가고, 비누 등 호텔 비품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자고 난 침대도 깔끔하게 정리했다.
가장 힘주어 권한 건 서랍 정리였다. 현대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책상 서랍을 한번 정리해보는 게 좋습니다. 쓰지 않는 문방구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거든요. 제가 쓰는 볼펜은 딱 한 자루입니다"라고 했다. 그는 리필용 심지를 사용해서 한 자루만 사용했다. 그러면서 현대비즈니스 기자에게 그동안 다 쓰고 한 방울도 남지 않은 리필용 심지를 묶은 다발을 보여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