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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약탈된 고려불상 소유권이 일본에 있다?
기사 작성일 : 2025-02-07 08:00:33

서산 부석사로 돌아온 고려 금동관음보살좌상


[ 자료사진]

구정모 기자 = 고려 시대에 제작된 불상이 있다. 이 불상은 16세기 일본 쓰시마섬에 한 사찰이 세워지면서 그곳의 본존불로 안치됐다. 고려 불상이 언제, 어떻게 일본으로 넘어갔는지 불분명하지만, 왜구가 약탈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던 중 2012년 10월 우리나라 절도범들이 이 불상을 훔쳐 국내로 들여왔다. 일본 경찰의 수사 의뢰에 우리나라 경찰이 이들을 붙잡았고, 이듬해 1월 이런 사실을 공표했다.

이후 국내 한 사찰이 이 불상의 원소유자라며 불상 인도 소송을 제기하면서 이 사건은 법적 소유권 다툼으로 번졌다.

1심은 이 불상을 국내 사찰에 돌려주라고 판결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었다. 결국 2013년 10월 대법원은 이 불상의 소유권이 일본 사찰에 있다고 최종적으로 확정했다. 이에 따라 이 불상은 오는 5월 일본의 해당 사찰로 인도될 예정이다.

이런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온라인에서 다시금 찬반 여론이 뜨겁게 일었다. 물론 반대 입장이 우세했다. 일본이 훔쳐 간 우리 문화재를 왜 일본에 돌려줘야 하느냐며 법원 판결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이에 불상을 둘러싼 사실관계와 법적 쟁점을 정리하고, 그 과정에서 문제점은 없는지 살펴봤다.

◇ 일본 주지가 불상 먼지 털다가 정체 발견

일본에 있던 고려 불상의 정체가 드러난 계기는 우연이었다.

법원에서 인정된 사실관계와 관련 논문에 따르면, 1951년 5월 일본 쓰시마섬의 한 사찰인 간논지(觀音寺)의 주지가 먼지를 털려고 이 불상을 들다가 불상 안쪽에 있던 복장물(腹藏物· 불상 안에 넣는 물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결연문(結緣文·불상을 조성한 사람들의 기원과 시주자의 명단 등을 적은 기록물)에 '1330년 2월에 시주자 32명의 이름으로 이 불상을 부석사에 봉안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부석사는 충남 서산시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의 이름이다.


"일본은 약탈 문화재 반환하라"


진성철 기자 = 2013년 2월 1일 서울 종로구 일본문화원 앞에서 애국국민운동대연합, 독도쟁이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금동관음보살좌상 등 일본이 약탈한 문화재의 반환을 일본에 요구하고 있다.

후대에 '금동관음보살좌상'이라고 불리게 된 이 불상은 높이 50.5㎝, 얼굴 폭 12.1㎝, 무릎 너비 35.8㎝ 크기로 제작됐다.

윤용혁 공주대 교수의 '고려 말의 왜구와 서산 부석사'(2014)에 따르면 이 불상이 우리나라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85년 문명대 동국대 교수의 논문 '대마도의 한국 불상 고찰'을 통해서다.

이후 국내 절도범들이 일본 간논지에 있던 이 불상을 훔쳐 국내로 밀반입해 팔려다가 경찰을 붙잡힌 것을 계기로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됐다.

특히 부석사가 자신들이 원소유주라며 정부를 상대로 불상을 넘겨달라는 소송을 내면서 이 불상은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됐다. 당시 이 불상은 절도 피해 물품이어서 정부에 몰수된 상태였다.

◇ 법원, 약탈로 일본에 금동관음보살좌상 반출 판단

고려 시대에 제작된 이 불상이 어쩌다가 일본으로 넘어가게 됐을까.

경위를 추정할 수 있는 사실들을 추리면 먼저 조선시대 편찬된 역사서 '고려사'에 1352∼1381년에 왜구들이 5차례 걸쳐 현재의 서산 지역을 침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대마도에서 발간된 잡지 '대마도의 자연과 문화'에도 그 무렵 왜구들이 서산 지역을 침탈한 사실이 적혀 있다.

간논지의 연혁약사에 따르면 간논지는 1526년께 창건됐고 당시 이 불상이 봉안됐다.

키쿠다케 쥰이치 전 일본 규슈대 교수가 서일본문화협회가 발행한 '대마의 미술'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일본 호족인 코노 모리치카가 조선으로 건너가 악행을 저질러 절연을 당한 후 불교를 수양해 일본으로 돌아와 간논지를 열었다고 했다.

그는 왜구 집단에 속한 것으로 보이는 코노씨가 창립한 간논지에 고려 불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왜구에 의한 불상 등의 일방적 청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부석사 불상 환수해야"


(대전= 이재림 기자 = '서산 부석사 금동관세음보살 제자리 모시기 추진위원회' 회원이 4일 오후 정부대전청사 문화재청을 방문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이들은 이날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에서 도난당해 우리나라로 건너온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을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3.2.4

불상 자체에도 그 이력을 짐작할 단서가 있다.

불상을 보수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면 그 내용을 적은 기록물을 불상에 넣는 전통이 있는데, 이 고려 불상엔 일본으로 옮긴다는 내용의 복장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이 불상엔 화상의 흔적이 있고 일부가 손상된 상태였다. 왜구들이 주로 사찰에 불을 지르고 불상을 가지고 나왔는데, 화상의 흔적이 약탈의 근거로 추정됐다.

1심인 대전지법은 이런 사실을 토대로 불상이 "도난이나 약탈 등의 방법으로 일본 쓰시마 관음사(간논지)로 운반돼 봉안돼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2심인 대전고등법원도 "왜구가 이 불상을 약탈해 불법 반출했다고 볼 만한 상당한 정황이 존재한다"고 봤다.

특히 간논지 측은 2심 때 코노씨가 1526년에 조선에서 이 불상을 적법하게 받았다고 주장했으나 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재판부도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도 왜구 약탈설에 관해 이견을 피력하지 않았다.

◇ 일본 사찰, 취득시효 완성…불상 소유권 취득

왜구가 약탈한 것으로 강하게 추정되는 이 불상의 소유권이 어떤 이유로 일본 사찰에 있다고 인정됐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취득시효'와 '국제사법'이라는 법률 용어를 알아야 한다.

취득시효는 물건을 일정 기간 계속해서 점유하는 사람에게 그 물건의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제도다.

우리 민법 제246조에 따르면 동산의 경우 1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점유한 자는 해당 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한 것으로 인정된다.

내가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는데, 이 물건에 대해 타인을 배제하면서 내 것처럼 배타적 지배를 행사할 의사(소유의 의사)를 가지고 10년간 가지고 있었다면 그 물건의 소유권을 얻게 된다는 의미다.

게다가 민법 제197조에선 '점유자는 소유의 의사로 선의, 평온 및 공연하게 점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어떤 물건을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이 '자주점유'(소유의 의사를 가지고 하는 점유)하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점유가 소유의 의사가 없는 점유('타주점유')라고 주장하려면 이런 주장을 하는 자가 타주점유임을 입증해야 한다.

단, 소유의 의사가 있는지를 따질 때, 선의로(그럴 권한이 없지만 있다고 믿고서) 점유하게 됐는지, 악의로(그럴 권한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점유하게 됐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고려 금동관음보살좌상


[ 자료사진]

고려 불상의 사례로 돌아가면 간논지가 고려 불상을 도난당하기 전까지 어쨌든 이 불상을 500년 가까이 점유하고 있었다.

간논지가 이 불상을 선의로 취득했는지 악의로 취득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간논지가 500년 가까이 타인을 배제하면서 자기 것처럼 이 불상을 평온·공연하게 가지고 있었다면 이 불상의 소유권이 인정된다는 게 우리 민법의 논리다.

부동산의 경우 1997년 8월에 대법원의 입장이 바뀌었다.

당시 대법원은 점유자가 부동산을 악의로 무단으로 점유한 것이 입증되면 소유의 의사로 점유하고 있었다(자주점유)는 추정이 깨져 취득시효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하면서 과거 판례의 견해를 모두 변경하기로 했다.

예전엔 남의 땅인 줄 알면서도 그 땅을 20년간 점유했다면 그 땅의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었으나, 1997년 8월 대법원 판결 이후론 상황이 달라졌다.

하지만 불상과 같은 동산에 대해선 대법원의 입장 변화가 없다. 2심이 "동산을 절취(절도) 내지 강취(강도)해 점유하는 자의 점유도 자주점유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한 까닭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는 일견 일반 국민의 법 상식과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1997년 8월 대법원 판결 당시 천경송 대법관은 "진정한 권리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법이 정하는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는 법의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이고, 그 결과 자기 권리를 장기간 행사하지 않고 권리 위에 잠자고 있던 자가 권리를 상실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이는 취득시효제도의 본질과 존재 이유에 비춰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일본 민법에 따라 소유권 취득 여부 따져

국제사법은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 즉 국내에서 외국인과 우리나라 국민간, 혹은 외국에서 우리나라 국민과 외국인간 법률관계가 문제가 될 때 준거법을 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다.

고려 불상의 소유권을 두고 한일 양국 국민이 얽혀 있어 다양한 국제사법의 쟁점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석광현 당시 서울대 교수의 논문 '대마도에서 훔쳐 온 고려 불상의 서산 부석사 반환을 명한 제1심 판결의 평석: 국제문화재법의 제문제'(2017)에 따르면 왜구가 이 고려 불상을 약탈했을 때 불상의 소유권을 취득했는지 여부를 어느 법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문제가 발생한다.

국내법에 따르면 약탈로 문화재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지만, 당시 국제법적으로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엔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가 패전국의 문화재를 '전리품'으로 챙겨가는 것이 관행이었다. 문화재가 약탈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국제적인 합의가 자리를 잡은 것은 20세기 들어서부터다.


'불상 소유권 논란' 부석사 승려 일본방문


(교도= 서산 부석사에서 제작·보관되고 있다가 일본에 넘어가고 나서 다시 한국으로 반입된 금동관음보살좌상의 소유권 공방과 관련, 부석사 승려들이 14일 일본을 방문했다. 2013.3.14

이번 사건에선 간논지의 취득시효를 어느 나라의 법에 따라 판단하느냐가 핵심이었다.

2심 재판부는 옛 섭외사법(국제사법 예전 이름)에 따라 일본 민법을 준거법으로 삼았다.

일본 민법도 우리 민법과 마찬가지로 악의로 점유를 개시하더라도 자주점유 추정이 깨지지 않는다. 2심은 이런 일본 민법을 근거로 간논지가 취득시효에 의해 이 불상의 소유권을 취득했다고 판결했다.

구체적으로 간논지가 법인으로 전환한 1953년 1월 26일부터 불상을 도난당한 2012년 10월 6일까지 약 59년간 고려 불상을 점유한 것으로 봤다.

◇ 문화재도 취득시효 인정해야 하나…반론 여전

일본 사찰인 간논지에 고려 불상의 소유권이 있다는 법원 판단에 법리적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찜찜함'이 남는다.

조계종은 2023년 10월 대법원 판결 당시 "도난문화재에 대해 취득시효를 인정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어불성설일 뿐 아니라 약탈 문화재의 은닉과 불법점유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논평했는데, 이 논평이 이런 찜찜함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법원 논리라면 해외에 있는 약탈문화재를 환수할 방안이 마땅하지 않다. 취득시효제도가 있는 나라에선 약탈당한 문화재라도 현 점유자가 소유권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따르면 올해 1월 현재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은 모두 24만7천718점으로, 이 중 43.9%인 10만8천705점이 일본에 있다.

물론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이 모두 약탈문화재인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수가 일제 강점기 전후로 불법 반출된 문화재로 추정된다.

이에 문화재를 일반 재화와는 달리 취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송호영 한양대 교수는 '해외로 불법반출된 문화재의 민사법상 반환청구법리에 관한 연구'(2004)에서 "문화재의 경우 법률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일반 물건과는 달리 거래안전의 측면보다는 문화재 자체의 보호를 중시해 선의취득이나 시효취득의 성립을 해석상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동관음보살좌상


(대전=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 제자리봉안위원회가 9일 오전 불상이 있는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법회를 열고 있다. 2019.5.9 [서산부석사불상봉안위원회 제공]

장기적으론 국제사회가 과거 약탈문화재 반환 문제를 규율할 국제협약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현재 문화재 관련 주된 국제협약으로 1970년 '문화재의 불법적인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1970년 유네스코 협약), 1995년 '도난 또는 불법 반출된 문화재에 관한 협약'(1995년 유니드로와 협약) 등이 있다.

이 두 협약은 모두 협약 발효 이전 약탈 또는 불법 반출된 문화재에 대해선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국가 간 문화재 분쟁 대부분이 근대나 그 이전에 약탈된 문화재를 두고 일어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행 협약의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70년 유네스코 협약에 1983년에 가입했고, 1995년 유니드로와 협약엔 가입하지 않았다.

한편 이 고려 불상은 현재 고향인 부석사로 돌아와 있다. 고려 불상이 간논지로 옮겨지기 전 100일 동안 법요(法要·불교 의식)를 치르고 싶다는 부석사 측의 요청이 받아들여진 덕분이다.

불상은 5월 5일까지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그달 11일 전에 국립문화유산연구원으로 반환된 뒤 일본 간논지로 인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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