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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안녕' 포옹하며 눈물 보이는 쿠바 학생
(아바나= 이재림 특파원 = 14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 국제공항에서 한인 후손 5세대 야스민 양이 3년간의 고교 과정 이수를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타기 전 지인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5.2.15
(아바나= 이재림 특파원 = 한국과 쿠바 수교 1주년을 맞은 14일(현지시간) 아바나에 있는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 출국장 입구 한 편에서는 오전 5시 30분부터 반가운 한국어 인사가 귀에 꽂혔다.
'Cuba'(쿠바)라는 글씨를 인쇄한 티셔츠를 맞춰 입은 앳된 얼굴의 학생들은 커다란 여행용 캐리어와 손가방을 각자 하나둘씩 챙긴 채 "안녕", "어때" 같은 말을 나누며 들뜬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들을 배웅하기 위해 나온 가족 중에는 상기된 얼굴로 이따금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도 있었다.
애써 참던 눈물을 보인 한 할머니는 미소와 함께 손녀의 뺨을 어루만져 줬다.
이날은 에레라 메히아 야스민(16), 곤살레스 브리수엘라 비아트리스(15), 멘도사 페레스 캐틀린(15), 모야 에르난데스 라셸(15) 등 쿠바 청소년 4명의 한국행 출국일이다.
학생들은 3년 동안 목포의 한 고등학교에서 공부하기 위해 생애 처음 여권을 손에 쥐고 튀르키예 이스탄불을 거쳐 인천으로 가는 먼 길을 떠났다.
전남교육청의 외국 인재 프로그램에 발탁된 이들은, 쿠바 국적자 중 공식적으로 한국 고교 3년 모든 과정을 밟게 되는 첫 사례다.
과거에도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한 쿠바 10대가 있었지만, 그는 팬데믹 등 이유로 한국에서 1년 정도 체류한 뒤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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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학길 떠나는 쿠바 학생들과 아바나 세종학당 교사
(아바나= 이재림 특파원 = 14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 국제공항에서 야스민(오른쪽부터), 캐틀린, 라셸, 비아트리스 등 쿠바 10대 학생 4명이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 전 아바나 세종학당의 장동욱 교사 및 정호현 교장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5.2.15
4명의 쿠바 학생은 한글학교·아바나 세종학당에서 한글과 한국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받았다.
"K팝과 K드라마를 너무 좋아한다"는 캐틀린 양의 경우엔 햇수로 4년째 한국어를 공부했다.
그는 다소 수줍어하면서 "바이올린, 피아노, 기타 같은 악기들을 다룰 줄 안다"고 소개한 뒤 "한국에서의 시간이 내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과학자(야스민), 산업디자인(비아트리스), 음악가(캐틀린), 화학자(라셸) 등 각자 꿈은 조금씩 다르지만, 한국에 대한 "애정과 동경"을 품고 있다는 점은 모두 같다고 한다.
학생들을 직접 가르쳤던 장동욱 교사는 "한국어 말하기 실력엔 아직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아이들이 모두 적응을 잘할 것으로 믿고 있다"며 "각자 가지고 있는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 교사는 이날 인솔자 자격으로 함께 비행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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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학교·아바나 세종학당에서 한복 입고 포즈 취한 학생들
[쿠바 한글학교·아바나 세종학당 제공. 아바나=. 재판매 및 DB 금지]
학생 중 야스민 양은 쿠바 카마궤이 과학고에 다니다가 한국으로 갈 기회 앞에서 과감히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그는 지역에서도 내로라하는 인재 중 한 명이라고 세종학당 측은 전했다.
야스민 양은 "(세부) 전공은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과학을 더 공부하고 싶다"며 "그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면 좋겠다"고 당차게 말했다.
야스민 양의 경우엔 우리에게 조금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인물이다.
쿠바 한인 후손(5세대)이어서다.
"발음하기 어려워 기억하기 쉽지 않다"며 쑥스러워하던 그는 선대 이름을 '킴'(Kim)이라는 성씨로 형용하고 있었다.
야스민의 선조는 구한말 멕시코의 에네켄('애니깽') 농장 근로를 위해 넘어온 한인 중 1921년 3월 쿠바로 함께 재이주한 '1세대 이민자' 300여명 사이에 있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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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세종학당 현판
[촬영 이재림 특파원]
그보다 앞서 개별적으로 쿠바로 이동해 빠르게 현지화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세종학당 측 설명이다.
다만, 기록상 오류 가능성이나 명확한 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 부족 등으로 흔적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지난해 양국 수교 및 지난달 주쿠바 한국대사관 개관 이후 재외동포청을 비롯한 유관기관이 외교부와 함께 쿠바 후손 찾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이유를 방증하는 정황으로 여겨졌다.
정호현 한글학교·아바나 세종학당 교장은 "오늘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아이들의 인생이 바뀌는 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야스민 같은 한인 후손을 비롯해 똑똑한 쿠바 학생들이 즐겁고 건강하게 생활해,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어 하는 다른 수많은 쿠바 학생에게 모범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