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aily

[여행honey] 추억과 새로움의 문화공간…춘천
기사 작성일 : 2024-05-08 08:01:10


옛 김유정역 인근 풍경 [사진/백승렬 기자]

(춘천= 김정선 기자 = 강원도 춘천은 많은 이들에게 젊음과 청춘을 떠올리게 하는 도시다.

'봄'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곳 출신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의 단편 '봄·봄'이 생각나는 계절에 춘천을 다시 찾았다.

누군가에게는 이미 추억의 장소가 됐을 풍경을 되새기며 새로움을 주는 이색 문화공간을 돌아봤다.

◇ 김유정역과 옛 김유정역의 풍경



경춘선 김유정역 외관 [사진/백승렬 기자]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은 자연의 빛깔은 다채롭다.

춘천으로 향하는 차창 밖으로 분홍, 노랑, 빨간빛의 봄꽃 나무들이 지나갔다.

산에는 뭉게구름이 핀 듯 연둣빛이 부풀어 올랐다. 역시 '푸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가려는 곳은 김유정역과 옛 김유정역이다.

김유정역의 원래 이름은 신남역이었다.

2004년 문인과 지역 주민들의 요청으로 국내 철도 역사에서 처음으로 사람의 이름을 딴 김유정역으로 개명했다.

역 인근 실레마을(춘천시 신동면 증리)이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이다.

2012년 경춘선 복선전철 사업으로 현재의 전통 한옥 역사로 이전하고, 옛 역사는 보존돼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유정 북카페로 운영 중인 무궁화호 내부 [사진/백승렬 기자]

김유정역 안내판에는 역사의 역명판이 수도권 전철역 중 유일하게 한글 궁서체라고 적혀있다.

봄꽃이 피어있는 옆길을 지나니 유정이야기숲이라는 안내판이 나오고 옛 김유정역으로 이어졌다.

옛 김유정역을 지키는 캐릭터라 할 수 있는 '나신남' 역장이 나무에 물을 주고 있는 듯한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역사에 들어가면 옛 열차시간표, 난로와 주전자가 보였다.

옆방에는 추억의 소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구식 텔레비전, 밥솥, 휴대전화, 지하철 승차권 등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밖에는 멈춰 선 열차가 서 있었다.

옛 무궁화호 열차로, 현재는 유정 북카페로 운영 중이다.

파란 하늘과 열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방문객들을 바라보니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시간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 김유정문학촌을 더듬다



김유정문학촌에 있는 복원된 김유정 생가 [사진/백승렬 기자]

김유정역과 옛 김유정역에서 걸어서 200m 정도 가면 김유정문학촌이 나온다.

금병산(해발 652m)에 둘러싸인 이곳에는 소설의 배경지를 따라 실레마을 이야기길이 조성돼 있다.

'봄·봄', '동백꽃' 등 10여편이 작가의 고향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김유정은 유아기에 서울로 이사해 학창 시절을 보냈다.

1931년 귀향해 실레마을에 야학당을 열어 농촌계몽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문학촌에 자리 잡은 복원된 생가는 매년 가을이면 이엉 갈이를 한다.

생가에 들어서면 깔끔하게 정리된 'ㅁ'자 마당이 보인다.

생가 바로 옆에는 김유정의 '봄·봄' 속 한 장면을 구현한 조각상들이 눈길을 끌었다.



김유정의 단편 '봄·봄' 속 장면을 구현한 조각상 [사진/백승렬 기자]

작품 속 주인공은 점순과 혼인하기 위해 예비 장인의 집에서 머슴 노릇을 하고 있다.

점순의 아버지 봉필은 딸이 크지 않았다며 주인공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

조각상들은 주인공과 봉필이 점순의 키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장면을 표현했다.

김유정문학촌에는 기념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기념전시관에서 작가의 삶을 조명한 회화작품을 훑어봤다.

별도로 있는 김유정 이야기 집에선 작가의 작품세계를 구체적으로 조명했다.

그가 일제 강점기 하층민의 삶을 적나라하게 그렸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옛날 짚신, 우표, 조각보, 주판 등의 물품을 모아놓은 공간이 따로 있었다.

김유정의 단편 중에는 '떡'이라는 작품도 있다.

이에 기인해 다양한 모양의 떡살을 모아놓은 공간도 흥미로웠다.

◇ 책과인쇄박물관의 향기



책과인쇄박물관 [사진/백승렬 기자]

김유정문학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책과인쇄박물관이 있다.

인쇄 관련 일을 했던 전용태씨가 2015년 개관한 곳이다. 박물관 외관이 세로로 된 책꽂이를 연상케 했다.

이곳에선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취재팀과 만난 전 관장은 서울 소재 신문사에서 일했던 경험, 자신이 지켜본 인쇄의 역사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전시실 내부 [사진/백승렬 기자]

그가 거쳤을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듯했다.

박물관에는 납을 녹여 활자를 찍어내던 주조기, 타자기, 종이 압축기는 물론이고 다양한 자모가 한글, 한자, 영문, 서체별로 보관돼 있었다.

편지봉투, 전표, 다양한 서식, 청첩장 양식도 볼 수 있었다.

전 관장이 수소문해서 구했다는 활판 인쇄기는 시간의 흔적을 담고 있었다.



1층 전시관에 전시한 오프셋 등 각종 인쇄기 [사진/백승렬 기자]

청타기, 발로 밟아 움직이는 족답(足踏) 인쇄기, 오프셋 인쇄기 등을 둘러보며 발전과 변화를 알 수 있었다.

인쇄체험실에서는 마침 체험 중인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1900년대 초 신식 활판 인쇄기로 찍어 발간한 책인 딱지본, 문예지와 월간지 창간호,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한용운의 '님의 침묵' 초간본 등이 전시된 공간을 둘러보다 보니 수집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 국내 첫 반려견 박물관… 강아지숲 박물관



강아지숲 박물관 [사진/백승렬 기자]

춘천시 남산면 일대에는 반려견 테마파크 '강아지숲'이 자리한다.

사전 개장을 거쳐 2023년 정식 개관했다.

이곳에는 강아지숲 박물관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국내 제1호 반려견 전문 박물관이다.



박물관 내부 전시물 [사진/백승렬 기자]

강아지숲 박물관에 들어서니 '개와 인간의 아름다운 관계'라고 적힌 큰 글씨가 보였다.

그 아래에는 3개 전시실의 주제인 '서로 기대는 사이', '서로 통하는 사이', '함께 걸어갈 사이'라는 글자가 쓰여있다.

어쩌면 반려동물과 함께하거나 함께 하려는 이들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풀어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개와 인간의 오래된 동행의 역사에서 시작한 전시는 애완동물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반려동물로서의 의미를 지나 요즘 시대에 더욱 필요로 하는 조화로운 공존의 방법을 이야기한다.

매우 기본적 내용인 것 같지만 가장 필수적인 테마를 말하려는 것 같았다.



반려견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입장객 [사진/백승렬 기자]

박물관 옥상은 바로 옆 외부의 반려견 동산으로 이어진다.

반려견을 데리고 온 이들이 잔디밭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목줄을 풀어놓고 자유롭게 교감하는 듯 보였다.

연못을 지나 이동하는 사이 반려견과 함께 산책로로 입장하는 사람들이 이어졌다.

◇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 풍경

춘천에는 문화공간도 많지만, 어느 곳을 가나 넓은 호수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자연의 모습을 보기 위해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 의암호 정차장으로 향했다.

주변에는 호수의 물결이 햇빛에 반짝이고 인근 가로수에는 연두색 잎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선 삼천동에서 의암호를 가로질러 삼악산을 연결하는 3.61km의 케이블카가 다닌다.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 전망대에서 바라본 춘천 시내 [사진/백승렬 기자]

호수 주변에선 의암호 정차장을 오가는 케이블카가 보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삼악산 정차장에 가면 호수와 인근의 산 그리고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보인다.

삼악산 정차장에 도착해 전망대로 가면 넓은 풍경이 펼쳐진다.

꽤 높은 시선에서 바라본 호수와 산, 도로, 교량의 윤곽이 선을 이뤘다. 신록의 계절이 짙어지면 산자락의 푸른 기운과 호수의 빛깔 또한 더욱 진해질 것이다.

◇ 담백한 닭갈비와 막국수

춘천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닭갈비와 막국수다.

잘라낸 닭고기와 양배추, 떡 등을 양념과 잘 버무려 철판 위에서 뒤섞거나 숯불 위에 석쇠를 놓고 구워 먹는다.

김유정문학촌 방문을 마치고 인근 닭갈빗집을 찾았다.

간장 양념과 고추장 양념의 숯불 닭갈비를 시켰다.

부추와 양파무침, 물김치, 백김치, 상추가 나왔고 마늘, 쌈장이 곁들여졌다.

석쇠에 닭갈비를 올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뒤적거려가며 익혔다.

봄 날씨에 숯불의 열기도 적당히 어울리는 것 같았다.

향토 음식인 막국수는 닭갈비의 단짝이다.

막국수도 함께 시켰다.



막국수와 숯불 닭갈비 [사진/백승렬 기자]

면 위에 채 썬 오이, 양념이 놓였고 삶은 계란 반쪽, 김 가루가 더해졌다.

맨 위에는 깨가 뿌려져 있다.

꽤 단출한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국수를 잘 비빈 뒤 한입 물으니 맵지 않고 적당하고도 익숙한 맛이다.

자연의 풍경과 문화공간을 보고 난 뒤여서인지 포만감이 더해지는 것 같았다.

※이 기사는 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5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