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aily

[걷고 싶은 길] 무풍한송길과 통도 팔경
기사 작성일 : 2024-04-05 09:01:11


극락암 홍교[사진/백승렬 기자]

(양산= 현경숙 기자 = 통도사 진입로인 무풍한송길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다.

통도 8경 중 제1경이다. 통도 팔경은 국내 최고 사찰로 꼽히는 통도사 내에서도 특히 자연 풍광과 산사의 멋이 잘 어우러진 곳을 일컫는다.

통도 8경 중 6개가 자장암, 극락암, 비로암, 백운암, 안양암, 취운암 등 통도사 암자 경내에 있다. 무풍한송길과 통도 8경이 산재한 암자 순례길을 걸어보자. 8경 중 7경을 이 길 위에서 만난다.

장중한 전각들이 참배객을 압도하고, 방문객으로 붐비는 큰절에서와는 다른 면모들을 접하게 된다. 그것은 고요, 연륜, 수행이 선사하는 감동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무풍한솔길[사진/백승렬 기자]

◇ 춤추는 것은 바람일까 소나무일까

통도사를 품고 있는 숲길인 무풍한송길은 2018년 제18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생명상(대상)을 받았다.

통도사 산문에서 시작해 통도천을 따라 이어지는 호젓한 흙길 옆으로 아름드리 노송들이 춤추듯 구불거리고 한결같은 푸르름은 서늘함을 안긴다. '무풍한송'은 '무풍송림'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자로는 춤출 무(舞), 바람 풍(風), 찰 한(寒), 소나무 송(松) 자를 쓴다. 대개 '차가운 소나무가 바람에 춤추는 듯하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그러나 혹자는 '차가운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춤춘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무풍한송길의 소나무들은 높이 치솟기도 했지만, 옆으로 눕거나, 뒤틀리는 등 가지가 구불구불하다. 둥치는 수백 년 된 듯 굵다. 부드러운 경사를 이루며 흐르는 통도천과 굽이치는 소나무의 허리선이 조화롭게 펼쳐진다.

통도천은 수량이 풍부했다. 단단해 보이는 너럭바위들은 물기를 머금은 채 은빛으로 번들거려 살아있는 생명체같이 느껴졌다. 물안개처럼 천천히 내려앉는 봄비 사이로 부는 바람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무풍한솔길 옆 용혈 바위[사진/백승렬 기자]

젖은 계곡과 대지, 파릇한 솔잎은 곧 만개할 봄의 향연을 예고했다.

무풍한송길은 약 1.6㎞이다. 통도사 진입로이자 산책로이다. 폭은 5m 정도로 넓다.

구룡지 전설이 얽힌 용혈 바위가 중간에 있다. 전설은 통도사 창건 설화와 관련 있다.

통도사 개산조인 자장 스님은 영축산에서 나쁜 짓을 일삼던 아홉 마리 용을 설법으로 흩어지게 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급히 도망가면서 이 바위에 부딪혀 피를 흘렸다는 것이다.

눈먼 용 한 마리는 통도사를 지키는 호법용이 되겠다고 자처해 금강계단 옆 구룡지에 여전히 머물고 있다는 게 설화의 내용이다.

통도사 송림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무풍한송에 더해 곳곳의 곧고 굵은 소나무가 예사롭지 않은 인상을 심어준다. 극락암으로 오르는 길에 마주치는 송림은 쭉쭉 곧게 뻗은 소나무 군락이다.

봄이면 소나무 그늘에서 만발하는 진달래와 환상적인 조합을 이룬다. 통도사 소나무 군락이 멋진 배경에는 국란을 이겨낸 용기와 의지가 자리 잡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전국의 숱한 소나무 숲이 송진 수탈의 피해를 보아 그 상처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통도사 송림은 수탈을 비껴갈 수 있었다.

이곳 고승과 선사들이 송진 채취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나무를 지키려는 노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자장암으로 이어진 계단[사진/백승렬 기자]

◇ 영축산 암자 순례길

무풍한송길이 끝나고 큰절을 지나면 여러 암자로 가는 갈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물길과 들길 사이에 자리한 산내 암자는 모두 17곳이다.

대부분의 암자가 웬만한 사찰보다 규모가 크고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자장암은 자장 율사가 통도사 창건(646년)에 앞서 수행하던 곳에 지어진 암자이다.

백운암은 892년 신라 진성여왕 6년에 지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 암자들을 둘러보는 길이 딱히 정해진 것은 아니다.

양산시는 통도사 산문에서 시작해 서운암∼자장암∼극락암을 거쳐 비로암에 이르는 길을 '발길따라'라는 명칭의 암자 여행길로 소개하고 있다.

보타암, 취운암, 수도암, 안양암은 큰절에서 가깝다. 서운암 쪽에 백련암, 옥련암, 사명암이 있고 자장암 근처에는 서축암, 금수암이 자리하며, 비로암으로 가다 보면 반야암 가는 길이 보인다.



자장암에서 본 영축산[사진/백승렬 기자]

비로암 위쪽이 백운암인데 산문에서 백운암까지 편도 6.3㎞이다. 산문에서 시작해 백운암까지 다녀오면서 군데군데 암자들을 둘러보려면 한나절은 족히 잡아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안양암, 서운암, 자장암, 서축암, 극락암, 비로암, 백운암을 다녀왔다. 비로암에서 백운암으로 가기 위해서는 계곡을 따라 상당히 가파른 길은 30∼40분 정도 올라야 하는데 등산 기분을 느끼게 한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 다음 날 백운암으로 향하는 계곡 길은 청정하고 상쾌했다. 백운암 '흰둥이'들이 나그네를 반겼다. 8년 전 혼자였던 견공이 가족을 거느리고 있었다.

◇ 통도 8경과 빼어난 암자들

자장암은 좌우로 병풍처럼 길게 둘러쳐진 영축산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요사채 앞마당에서 바라보면 영축산과 자장암 사이에 노송 군락이 자리하고, 노송과 영축산 사이에는 자장동천이 흐른다.

자장암으로 오르는 계단은 백팔 번뇌를 잊게 할 정도로 단아하고 예스럽다. 계단 수도 108개. 중간에 동그라미 문이 있다. 가운데가 텅 빈 동그라미는 비움과 동시에 채움을 뜻한다. 원은 '완전' '완성'을 의미한다.



자장암 마애불[사진/백승렬 기자]

자장암에는 높이가 4m에 이르는, 통도사 유일의 마애불상이 모셔져 있다. 마애불 옆 좁은 통로로 들어가면 석간수가 나오는 암벽에 금개구리가 산다고 알려진 작은 구멍인 금와공이 있다.

설화에 따르면 개구리 한 쌍이 샘물을 흐리지 않도록 자장 율사가 암벽에 무명지로 구멍을 뚫어 살게 했다. 지금도 입 주위가 금색으로 빛나는 개구리가 이 구멍에 살고 있다고 한다.

금와공에서 개구리를 직접 목격했던 강미경 양산시 관광통역안내사는 "입에 금색 테두리를 두른 개구리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구멍 안에 반듯하게 앉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보고 왜 '금와 보살'이라고 부르는지 실감했다"고 전했다.

자장암에서는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고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건축 기법이 눈에 띈다. 주 법당은 거북 바위 위에 걸터앉은 형상인데 방 안에 거북 등, 방 밖에 거북 꼬리에 해당한다는 바위의 일부가 드러나 있다.

자장동천 옆에 새로 지어진 찻집도 굵은 소나무를 베지 않고 그대로 둔 채 건물을 올렸다. 솔밭 사이로 흐르는 자장동천은 통도 8경 중 제4경이다.

극락암에서는 작은 연못인 극락영지와, 그 위를 가로지르는 홍교가 불심을 사로잡는다.

탐진치(貪瞋痴)를 버리고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넌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홍교는 극락교라고도 불린다. 마음을 하나로 모으지 않으면 건너기가 쉽지 않다.

봄이면 수백 년 된 벚나무가 꽃으로 장엄하는 극락영지는 여름에 연꽃이 피어나고, 가을에는 단풍 물든 영축산 봉우리가 수면에 어린다. 극락영지는 제5경이다.

영축산 능선, 소나무 군락, 대나무 군락이 긴 띠처럼 극락암을 두르며 장식한다. 기슭에 핀 여린 산수유가 다소곳했다.

극락암은 근현대 고승으로 추앙받는 경봉 스님이 주석하던 곳으로, 한강 이남의 최고 참선 수행 도량으로 꼽힌다.



비로암 물레방아와 정원[사진/백승렬 기자]

비로암은 단정하게 다듬어진 정원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비로암은 양산의 또 다른 명산인 천성산을 내다보고 있다. 제3경인 비로 폭포는 비로암에서 약 500m 떨어져 있다.

정원의 물레방아가 방문객의 발길을 붙잡는 비로암은 봄비 속에 운치를 더했다.

서운암은 이야깃거리가 풍성하다. 고려 시대에 창건된 서운암은 현재 조계종 종정인 중봉 성파 스님 대에 이르러 중건됐다.

성파 스님은 고려 팔만대장경을 원형 그대로 도자기판에 옮긴 16만 도자 대장경을 조성해 장경각에 봉안했다. 인류 평화와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았다. 도자 대장경을 만드는 데 10년, 장경각을 조성하는 데 10년 걸렸다.

도예, 서예, 옻칠, 천연염색 등 전통예술에 조예가 깊은 스님은 도자기로 된 3천 불상을 조성하기도 했으며 일제강점기 이전에 만들어진 전통 장독 수천 개를 모아 약된장 복원에 앞장섰다.



서운암 장경각[사진/백승렬 기자]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를 나전 옻칠 기법으로 재현한 그의 작품은 암자 앞 드넓은 마당에 수중 전시돼 있었다.

스님은 서운암에서 들꽃 축제, 전통문학인 축제, 염색 축제 등을 벌이기도 했는데 봄이면 금낭화, 조팝나무, 황매화, 홍매화 등 100여 종의 야생화가 5만여 평의 야산을 장식한다.

서운암에 사는 공작 7마리는 두려움 없이 사람과 공존하고 있었다.

제2경인 안양암 동대는 통도사 큰절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로 이름이 높았다.

제6경은 백운암에서 들리는 법고 소리를, 제7경은 영축산 능선을 중심으로 축조된 산성인 단성에서 바라보는 낙조, 즉 단성낙조를 일컫는다.

제8경은 취운암에서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이다. 통도사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은 대개 암자 순례를 통해 통도 8경의 일부라도 감상하는 기회를 갖는다. 암자를 둘러보지 않고 통도사를 안다고 하기 어렵다.

※ 이 기사는 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