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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석유 공룡'들이 잇달아 전기차 산업에 투자하는 이유는
기사 작성일 : 2024-04-08 07:00:32

장하나 기자 =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수요 둔화로 '캐즘'(Chasm·깊은 틈)에 봉착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글로벌 '석유 공룡'들이 잇따라 전기차 관련 산업에 대한 투자를 단행해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 석유기업 엑손모빌을 비롯해 쉘, BP 등이 연이어 배터리 원소재에 투자하고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충에 나서는 등 내연기관차의 '덕'을 많이 보는 '석유 공룡'들이 역설적으로 전기차 생태계 조성에 베팅하는 셈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석유 기업 엑손모빌은 최근 열린 미국 아칸소주의 리튬 혁신 서밋 행사에서 아칸소 서남부 리튬 개발 계획이 빠른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엑손모빌의 첫 리튬 시추 장치


[엑손모빌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엑손모빌은 아칸소주에서 이미 수많은 리튬 탐사정을 시추했고, 리튬 채굴을 위한 광범위한 엔지니어링과 설계 작업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엑손모빌은 지난해 5월 자원 탐사 기업 갤버닉 에너지로부터 12만에이커 규모의 리튬 매장지를 매입했다. 이 지역 퇴적층에는 400만t 규모의 탄산리튬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기차 5천만대에 탑재할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분량이다.

엑손모빌은 이곳에서 2026년부터 리튬을 채굴해 가공·생산할 계획이다. 기존 석유·가스 시추 방법을 활용해 지하 약 3㎞ 지층에 있는 염수를 뽑아낸 뒤 리튬을 분리해내는 직접리튬추출(DLE) 방식을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쉘의 '에너지 전환 전략 2024'


[쉘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쉘과 토탈에너지, BP 등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은 주유소를 매각하고 대신 전기차 충전소를 확대하는 사업에 대거 나섰다.

쉘은 지난달 14일 발간한 '에너지 전환 전략 2024'에서 공용 전기차 충전기를 2022년 2만7천개에서 2023년 말 5만4천여개로 늘린 데 이어 오는 2025년 7만개, 2030년 30만개까지 대폭 확대해 나간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반면 전 세계 약 4만7천곳의 주유소 중 1천여곳을 2024∼2025년 2년에 걸쳐 매각한다는 계획도 함께 내놨다.

쉘은 지난해 3월 미국 전기차 충전기업 '볼타'를 1억6천900만달러에 인수한 바 있다. 이를 통해 현재 미국에서 3천개 이상의 전기차 충전기를 운영 중이며, 3천400여개를 추가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9월에는 중국 선전바오안국제공항 인근에 258개의 급속충전기를 갖춘 전기차 충전소를 개소하기도 했다.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탈에너지는 벨기에, 독일,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4개국에 있는 주유소와 지분을 캐나다 편의점 체인 쿠쉬 타르에 매각했다.

매각에 따라 독일과 네덜란드에 위치한 주유소 총 1천500여곳의 소유권이 쿠쉬 타르로 이전됐다.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에 있는 주유소 619개의 경우 양사가 공동 설립한 합작법인(JV)이 운영을 맡게 되며, 지분율은 쿠쉬 타르가 60%, 토탈에너지가 40% 보유하게 된다.

토탈에너지도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보에 주력하고 있으며, 현재 유럽을 중심으로 총 5만5천여개의 전기차 충전기를 구축했다.


서울 시내 한 전기차 충전소


[ 자료사진]

지난해 10월에는 영국 BP의 전기차 충전기 사업부 BP펄스가 미국 내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 확장을 위해 1억달러 상당의 테슬라 초고속 충전기 '슈퍼차저'를 주문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2030년까지 미국 전역의 충전소에 최대 10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BP펄스 중장기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이처럼 글로벌 오일 메이저 기업들의 전기차 분야 투자가 확대되며 전기차 업계의 캐즘 극복이 앞당겨질지 주목된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오일 메이저 기업들이 대규모 자금 조달 능력을 바탕으로 미래 먹거리를 찾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며 "이런 움직임은 (속도 조절은 하더라도) 결국 카본 에너지에서 그린 에너지로 패러다임이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28일 기후변화 전문 온라인 플랫폼 '블룸버그 그린'의 분석을 인용해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4개 대륙 31개 국가에서 순수 전기차(BEV)의 신차 판매 점유율이 '티핑 포인트'(큰 변화를 불러오는 변곡점)인 5%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신차 판매 중 5% 점유는 대량 보급의 시작을 알린다며 앞선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 전기차가 신차의 5%를 넘어서면 4년 이내에 25%로 급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텔레비전부터 스마트워치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기술은 S자 형태의 곡선을 그린다"며 얼리어답터를 넘어 대중에게 수용되기 위해서는 비용, 인프라 부족, 소비자 불신 등을 극복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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