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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폐지되는 서울 학생인권조례…"학생자유"vs"교권침해"
기사 작성일 : 2024-04-26 20:00:38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안 찬성의 목소리


임화영 기자 =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의 서울시의회 본회의 상정이 불발된 22일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서울학생인권조레폐지 범시민연대 관계자들이 폐지안 찬성 시위를 하고 있다. 2023.12.22

서혜림 기자 = 서울시의회가 26일 인권·권익향상 특별위원회(특위)와 본회의에서 각각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의결함에 따라 2012년 제정된 지 12년 만에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조례는 그간 성적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을 명시해 학생 인권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학생 개개인의 인권이 과도하게 강조되면서 교권이 위축되고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 학생 권리 침해 시 교육청 조사 청구…교육권 침해 비판 세져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경기도교육청에서 처음 제정된 뒤 17개 시도 교육청 중 서울을 비롯한 6개 교육청에서 제정돼 시행 중이다.

학생인권조례에는 학생이 성별, 종교, 나이,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체벌과 따돌림, 성폭력 등 모든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자기 소질에 맞게 학습할 권리 등을 담았다.

이러한 권리를 학교 측이 보장해주지 못하거나 침해할 경우 학생은 교육청 직속 기관인 학생인권옹호관에게 상담·조사 등을 청구할 권리를 갖게 된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을 한명의 인격체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교사의 정당한 교육권을 침해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학생의 권한을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학생이 수업을 방해하는 등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거나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상황에서도 교사가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기 때문이다.

교사의 생활지도 등 교육의 일부를 학부모가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경우에 악용된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또한 교육청에서 통상 학생의 신고를 받아 사안을 조사한 뒤 '권고' 수준 조치를 내리지만 교원들에게는 이러한 체계 자체가 큰 부담이었다.

서울의 한 공립 초등학교 교감은 "'학생 인권'으로 문서화하고 이름을 붙이니까 특정 집단만 강조되는 단점이 있다"며 "교사도 인권이 있는데 교사와 학생이 둘 다 있으면 학생의 인권 쪽으로 신경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기자회견


최재구 기자 = 1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12.13

◇ 2022년부터 불거진 폐지 논란…여당 주도로 폐지 기로

서울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처음에 '학생의 성적 지향을 존중한다'는 점에 반대한 한 시민 단체로부터 나왔다.

종교단체와 학부모단체 등으로 구성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범시민연대'는 2022년 8월 "학생인권조례가 동성애, 성전환, 조기 성행위, 낙태 등 비윤리적 성행위들과 생명 침해행위를 정당화한다"며 조례 폐지 청구인 명부를 서울시의회에 제출했다.

이후 2023년 3월 의회에서 청구를 받아들여 김현기 시의회 의장 명의로 폐지 조례안이 발의됐다.

국민의힘 의원이 다수인 시의회에서 폐지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커지고 서울시교육청의 반발도 심화하면서 진영 간 이념 다툼이 치열해졌다.

여기에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등 교권 침해 이슈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서울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논쟁은 더 뜨거워졌다.

그러다가 지난 12월, 폐지안 수리 및 발의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인용되면서 학생인권조례는 극적으로 살아났다.

법원은 "신청인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고, 그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효력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가 있음이 소명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시의회가 인권특위와 본회의에서 같은 내용의 폐지안을 발의·의결하면서 학생인권조례는 다시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교육청으로서는 대법원 제소로 맞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1인시위 이어가는 조희연 교육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2일 서울 마포구 공덕역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2023.12.22 [서울시교육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교실 앞 성적공개 없애는 등 성과 커…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최근에는 교권침해의 한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지만 권위적인 학교 문화를 바꿔낸 성과는 분명히 있었다는 게 교육계의 평가다.

학생인권조례 도입으로 서울 학교는 두발·복장 규제, 체벌, 일방적인 소지품 검사 등이 사라졌다고 교육계는 입을 모은다.

모의고사 등 시험 성적이 발표됐을 때 성적표를 뽑아 교실 앞에 붙이는 문화 등 차별로 지적될 수 있는 관행이 적잖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다만 사회가 성숙해지면서 '학생 인권'만을 따로 명문화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생겨났다.

한 지역교육청 관계자는 "학생인권조례로 학생 인권이 신장이 된 것은 분명하다"며 "그러나 학생 권리의 보장을 넘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대가 이미 성숙해졌다"며 "지금 시대에는 업그레이드 버전이 필요한 것이 맞다. '학생' 인권이 아닌 '교사'를 포함한 '사람'에 대한 인권으로 표기해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도 최근 이런 비판을 받아들여 학생인권조례에 학생의 책무성을 추가해 개정하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폐지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한편 4·10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학생의 기본권과 보호 방안을 명시한 학생인권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더라도 이러한 입법 과정을 통해 다시 조례와 같은 효과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학생인권법은 학생인권센터를 설치하고 교직원의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 등을 담고 있다.

다만 학생 인권을 조례가 아닌 법령으로 다뤄야 할 필요가 있느냐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팽팽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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