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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한일관계 개선 뚜렷한데 징용 배상 '제자리걸음' 유감
기사 작성일 : 2024-07-27 08:00:02

서울 용산역 강제징용 노동자상


[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도쿄= 박상현 특파원 = "상상을 뛰어넘는 형태로 (한일관계가) 개선됐다. 일본과 한국은 경제 안보 분야 협력을 가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일 경제를 연구하는 무코야마 히데히코 주오대 강사는 아사히신문이 26일 게재한 일본 수출 규제 해제 1년 관련 기사에서 이같이 평가하고 당부했다.

이에 앞서 이임을 앞둔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는 지난 25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예방했다.

일본 총리가 개별 국가 대사와 면담하는 것은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기시다 총리는 윤 대사에게 재임 중 한일관계 발전을 위해 일본에서 한 큰 역할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윤 대사도 최근 주일 대사관에서 개최한 이임 행사에서 2022년 7월 부임 당시 한일관계가 전후 최악이라고 일컬어졌지만, 지금은 정부 간 대화와 정치 교류가 모두 정상화됐다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을 입증이라도 하듯 당일 행사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를 비롯한 많은 일본 정치인, 관료, 언론인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한일관계가 뚜렷하게 회복됐다는 사실은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인 수로도 확인된다.

올해 상반기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444만2천명으로 부산시 인구보다 100만명 이상 많았다.

이러한 추세가 연말까지 지속되면 연간 기준으로 일본 방문 한국인이 가장 많았던 2018년 753만8천명을 훌쩍 뛰어넘는 888만명이 일본 땅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인 6명 중 1명꼴로 일본을 방문하게 되는 셈이다.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2019년에는 일본 방문 한국인이 558만4천명으로 전년 대비 약 200만명 줄었는데, 그해 한국에서는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인 '노 재팬' 열풍이 불었다.

'노 재팬'은 한국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 배상 책임을 인정하자 일본 정부가 사실상 보복 조치로 한국에 수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촉발됐다.

냉랭했던 양국 관계는 지난해 3월 윤석열 정부가 징용 문제 해법을 발표하면서 급속도로 좋아졌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양국을 오가는 '셔틀 외교'를 재개했고 일본이 한국에 가한 수출 규제도 해제됐다.

이렇듯 한일관계가 좋은 흐름으로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작 개선 실마리가 됐던 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는 답보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당시 '제3자 변제'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피고인 일본 기업을 대신해 정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민간의 자발적 기여로 마련한 재원으로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에게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는 방법이다.

일본 정부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배상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징용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건넬 그나마 현실적 대안이었다.

자발적 기여라는 길을 열어둔 만큼 일본 기업이 재단에 돈을 낼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해결책을 발표하고 500일이 넘게 지났지만, 일본 기업 참여는 전혀 없었다.

재단 관계자는 26일 와 통화에서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승소자 90% 이상이 제3자 변제를 수용하겠다고 했다"며 "포스코 등이 기부한 41억여원 중 38억원을 사용하거나 공탁하기로 해 남은 돈이 3억원밖에 없고, 현재로서는 최소 120억원 정도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재단은 자금난으로 인해 더 이상 배상금을 지급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 소식을 접한 뒤 "제3자 변제는 윤석열 정권이 위신을 걸고 내놓은 해결책인 만큼 '돈이 없다'는 이유로 중지돼서는 안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일본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심사할 사도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한국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도 광산 문제처럼 징용 배상에 대해서도 일본은 결단을 내려야, 아니 최소한 한국 정부의 '선의'에 걸맞은 성의라도 보여야 하지 않을까.

피고 기업이 아니더라도 일본 기업이 재단에 기여한다면 한일관계 개선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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