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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대책 부실하면 위헌" 처음 인정…감축 목표는 '노 터치'
기사 작성일 : 2024-08-29 20:00:38

황윤기 기자 = 헌법재판소가 29일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것은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책이 부실하면 환경권 침해로 볼 수 있다고 처음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구체적인 감축 목표에 관해서는 사실상 정부의 재량에 일임해 소극적인 결론에 그쳤다는 한계도 있다.


발언하는 한제아 양


한종찬 기자 =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개최한 기후 헌법소원 최종선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한제아 학생이 발언하고 있다. 2024.8.29

◇ 헌법 전문 근거로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의무' 선언

헌재는 이날 결정문에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으로서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행할 때 미래의 환경적 조건에 대한 책임을 고려하는 것이 헌법적으로 요청된다"고 적었다.

헌재는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한다'는 헌법 전문으로부터 국가의 책무를 도출했다.

이에 "국가가 기후위기의 위험 상황에 대응하는 보호조치를 마련함에 있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이 이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미래 국민의 자유 보장을 위하여 필요할 뿐만 아니라, 현재 세대와 미래세대 사이의 평등한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국제사회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별 온실가스 배출량을 규제하고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경제적 불이익을 주는 상황에서,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을 다하지 않으면 미래 세대에게 책임이 전가돼 헌법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는 헌법 35조 1항도 중요하게 다뤄졌다.

헌재는 "기후변화로 생활의 기반이 되는 제반 환경이 훼손되고 생명·신체의 안전 등을 위협할 위험에 대해, 그 원인을 줄여 완화하거나 결과에 적응하는 조치를 하는 국가의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 의무도 (환경보전 의무에) 포함된다"고 적었다.

이를 근거로 헌재는 정부가 2031년부터 2049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법률에 전혀 규정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가가 기후 위기에 충분히 대응할 책임이 있음을 선언한 최초의 사법적 결정이다.

헌재는 또 "미래세대일수록 민주적 정치과정에 대한 참여에 제약이 있으므로 이러한 영역에서의 입법 의무 이행에 대해서는 사법적 심사의 강도가 보다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상대적으로 기후 위기의 피해를 많이 보면서 참여권은 보장되지 않는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보호할 사법적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결정이 향후 다양한 환경 분쟁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할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 어린 해석이 나온다.


착석하는 헌재재판관들


한종찬 기자 =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9일 오후 헌법소원·위헌법률 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2024.8.29 [공동취재]

◇ 실질적 규제는 불발…'반쪽짜리 결정' 비판도

그러나 이번 결정이 실질적 변화를 끌어내지는 못하고 '선언'으로서의 의미에 그쳐 아쉽다는 관점도 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지구의 기온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산업 분야에 대한 실효성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 때문에 정부는 2030년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이기로 하고 이를 위한 부문별·연도별 감축 목표를 정했다.

헌법소원을 낸 시민단체와 청소년 등은 정부의 2030년 배출량 목표치도, 부문별·연도별 감축 목표도 기온 상승을 억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헌재가 목표치를 높여주기를 바랐다.

실제로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2021년 4월 독일 정부의 2030년 목표치가 충분치 않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독일 정부는 2030년의 목표 감축량을 1990년 대비 55%에서 65%로 크게 높였다.

그러나 이날 헌재는 정부가 설정한 배출량 목표치에 대해서는 사실상 사법적으로 관여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헌재는 "입법자(국회) 또는 집행자(정부)가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한 '특정 연도'의 감축목표 비율에 관한 구체적 수치에 대해, 헌재가 어떤 특정한 추정 방식과 평가 요소를 채택해 그 결과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 지구적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기여해야 할 우리나라의 몫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산출하기 위한 신뢰할 만한 방법이 아직 없고, 구체적 수치를 결정하는 것은 사회경제정책이나 외교정책까지 포괄하는 것이므로 그 권한과 책임까지 국회와 정부의 몫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논리대로라면 앞으로도 정부가 나름대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도출해 목표를 설정했을 때 법원이나 헌재가 사법적으로 개입하기는 어려워지는 셈이다.

정부가 부문별·연도별로 정한 구체적인 감축 계획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평가될 경우 계획 수립의 위헌성을 확인하는 것도 불발됐다.

9명 중 5명(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정형식)의 재판관은 정부 계획에 따르면 2030년까지 40% 줄이겠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며 위헌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나머지 4명의 재판관은 목표 달성이 불가하다고 단정할 수 없고, 그렇더라도 '최소한의 보호조치도 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판단해 기각 의견을 냈다.

정부는 기준 연도인 2018년의 배출량은 '총배출량'으로, 목표 연도인 2030년의 배출량은 산림에 흡수되는 양을 제외한 '순 배출량'으로 계산했는데 기준 설정의 타당성에 대한 재판관들의 의견이 갈린 탓이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위헌 결정을 하려면 6명 이상 재판관의 동의가 필요해서 위헌을 선언하자는 의견이 법정 의견으로 채택되지는 못했다.

이영경 에너지정의행동 사무국장은 "오늘의 판결은 우리에게 매우 반갑고도 조금은 아쉬운 결과"라면서도 "온열질환과 재난에 대응하는 것을 개개인의 책임인 것처럼 돌리고 시민 실천만 강조하며 정부의 책임을 회피할 때 오늘의 판결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 대응의 시작은 지금부터'


한종찬 기자 =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개최한 기후 헌법소원 최종선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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