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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6년→5년 논란…"의사공백 최소화" vs "의료교육 부실화"(종합2보)
기사 작성일 : 2024-10-06 18:00:29

이주호 부총리, 의대 학사 관련 대책 발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과대학 학사 정상화를 위한 비상 대책(안) 발표를 하고 있다. 2024.10.6 [교육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세종= 고은지 김수현 기자 = 정부가 '2025학년도 복귀'를 전제로 의대생들의 휴학을 승인하기로 한 것은 학생 복귀와 교육과정 정상 운영을 위한 새로운 계기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다.

서울대 의대가 학생들의 무더기 유급을 막기 위해 지난달 30일 전국 최초로 의대생의 집단 휴학을 승인한 것이 불씨를 댕겼다.

교육부는 수업을 거부하고 있는 대다수 의대생에게 조건부 휴학이라는 '당근'을 제시하면서 늦어도 내년까지는 복귀할 수 있도록 마지막 문을 열어뒀다.

동시에 2025학년도에 복귀하지 않는 학생은 유급 또는 제적 처리하겠다는 '채찍'도 내비쳤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와 대학의 어떤 호소에도 냉소적인 반응을 보여온 의대생들이 이번 대책으로 인해 교육현장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의사인력 공급의 공백을 막기 위해 총 6년인 의대 교육과정을 5년으로 줄이는 방안은 교육부로선 의료 인력 배출 차질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의료계는 '의료교육 부실화'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가운만 남은 의대 강의실


[ 자료사진]

◇ 끝나가는 2024학년도…"내년에는 돌아오라" 마지막 호소

정부는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의과대학 학사 정상화를 위한 비상 대책(안)'을 발표하면서 "정부와 대학의 탄력적 학사 운영 조치에도 의대생의 수업 복귀는 여전히 저조한 상황"이라고 현 상황을 짚었다.

교육부와 의원실 자료 등에 따르면 2024학년도 2학기 전국 40개 의대 재적생 1만9천374명 중 실제로 출석한 학생은 2.8%(548명)에 불과했다.

또 8개 국립대(강원대, 경북대, 경상국립대, 부산대, 전남대,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에서 1, 2학기 합쳐 휴학을 신청한 의대생은 4천346명에 달했다. 이 중 93.2%에 달하는 4천50명이 '휴학 보류' 상태였다.

의대생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수업을 거부하는 사태가 장기화하자 대학들은 난감한 상황이다.

서울대 의대가 지난달 30일 의대생들의 1학기 휴학 신청을 일괄 승인한 것도 학생들이 인제 와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내년 2월까지 짧은 기간에 1년 치 과정을 가르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가 '동맹휴학 불가' 방침을 내건 교육부의 지침에 반해 학생들의 집단 휴학을 기습 승인하자 대학가는 동요하기 시작했다.

교육부가 서울대에 대한 강도 높은 감사에 나서면서 대부분 학교는 아직 상황을 관망하는 추세지만, 서울대발 '휴학 도미노'가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하다.

이에 교육부는 집단 동맹휴학은 불허한다는 기본원칙을 지키면서도, 미복귀 학생은 2025학년도 시작에 맞추어 복귀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제한적 휴학 승인' 대책을 내놓았다.

교육부는 "대학 총장 및 학장 등 현장 의견을 수렴해 의과대학의 학사 운영을 정상화하고, 원활한 의료인력 양성이 이뤄질 수 있도록 비상 대책을 수립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 의과대학 학사 정상화 비상 대책안


김영은 기자 =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 '내년 복귀' 약속해야 휴학 승인…교육과정·국시 등 탄력운영

정부의 이번 대책을 받아들여 휴학하려는 학생은 기존 제출했던 휴학원을 정정해 '2025학년도 시작에 맞춰 복귀한다'고 명기해야 한다.

대학은 복귀 의대생을 위한 교육과정 운영계획을 수립하고, 복귀 학생이 연착륙할 수 있는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교육부는 권고했다. 임상실험실 연구생 프로그램, 국내외 임상경험 제공, 봉사활동 인정 등이 예시로 제시됐다.

신입생에게는 수강 신청과 분반 우선권을 부여해 재학생의 휴학으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의대생의 집단 수업거부와 의사 국가시험 거부가 추후 배출될 의료인 수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주는 일이 없게 교육과정을 현행 6년(예과 2년·본과 4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방안 역시 검토한다.

현재 1학년 학생들이 대거 휴학하면 당초 이들이 의대 교육과정 6년을 마치고 졸업하는 2030년엔 의료 인력이 현 정원만큼인 3천명가량 배출되지 못한다.

그러나 집단으로 휴학한 1학년에 한해 교육과정을 1년 단축하면, 이들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수업을 듣더라도 5년 만에 교육과정을 마쳐 2030년에 의료 인력 배출에 크게 무리가 없어진다.

현재 의대 교육과정은 교양 강의 중심의 예과 2년과 해부학·생화학·병리학 등을 본격적으로 수강하는 본과 4년으로 이뤄져 있다.

의대 교육과정을 단축할 경우 교양 과정 위주인 예과 과정을 단축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의료인력 양성 공백을 방지하기 위해 검토하는 사안"이라며 "휴학 인원이 생기면 거기에 따른 의료인력 지연 배출이 예견되는 일이어서 탄력적인 학사 운영을 통해 (교육과정 기간을) 줄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년에 학생들이 복귀해서 정상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해 가는 과정에서 인력 양성의 공백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내년뿐만 아니라 제도화를 통해 학사운영 기간을 단축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방안은 추후 논의해서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반영할 예정이다.

의사 국가시험과 전공의 선발 시기도 유연하게 적용하기로 했다.

다만, 이런 대책에도 돌아오지 않는 의대생은 유급 또는 제적이 불가피하다고 못 박았다.


의과대 교정의 의료진


[ 자료사진]

◇ 꿈쩍 않는 의대생에 '특혜' 부정적 시선도…"의대교육 부실화" 우려

정부의 이번 대책이 의대생에게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그동안 정부와 대학이 의대생을 복귀시키기 위한 각종 '카드'를 내밀었지만, 의대생들은 요지부동이었기 때문이다.

의대생이 대거 유급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전국 의대 30여곳은 2학기가 시작하고 한달여가 지나도록 2학기 등록금 납부기한을 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출석 미달 유급'을 없애 시험에 응시하면 유급시키지 않겠다는 의대마저 나왔다.

그런데도 전국 의대 2학기 등록률은 3.4%(9월 2일 기준)에 그쳤다.

한 의대생은 "(대책이 나왔다고 해서) 내년 1학기에 복귀하자는 입장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며 "주변에 물어봐도 현행 유지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오 차관은 "개인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고 대학의 준비 상황까지 고려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의대생에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한다.

아무리 의사인력 공급이 중요하다지만, 의대생들에게만 온갖 '예외'를 적용하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다.

이미 복귀한 의대생에게는 '배신자' 프레임만 강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오 차관은 "복귀를 희망하는데도 들어오지 못하는 그런 전체적인 분위기가 있었다"며 "더 많은 학생이 같이 들어와서 같이 학습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거고, 그럴 여건은 대학과 협력해서 계속 만들겠다"고 말했다.

동맹휴학을 승인할 수 없다는 교육부가 기존 원칙을 저버렸다는 비판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기존 휴학계를 낸 학생을 대상으로 별도의 휴학 사유를 확인하고 복귀 시점도 내년으로 명기하라고 했지만, 이들은 애초에 의대 증원에 거부해 동맹 휴학 차원에서 휴학계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동맹 휴학에 동참한 학생들을 교육부가 구제해주는 셈이다.

의대 교육과정의 '6년→5년 단축' 검토 또한 의료계의 강한 반발을 부르고 있다.

의료계는 대규모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주요 명분의 하나로 '의대 교육의 부실화 우려'를 내세웠다.

보통 4년인 다른 대학과 달리 의대 교육과정 기간을 2년 더 둔 것은 의료 인력의 수준이 국민의 생명·건강과 직결되고, 이러한 인력 수준을 담보하기 위해선 의대 교육 과정의 양과 질이 모두 확보돼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6년간 커리큘럼이 빈틈 없이 빡빡하게 이뤄져 방학 기간도 짧고 시험도 많은 의대 교육 특성상 1년을 줄일 경우 의대 교육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의료계는 비판한다.

의료계는 "이것이야말로 의대교육 부실화 아니냐"고 반발하고 나섰으며, 이는 증원 반대에 또 다른 명분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강희경 서울의대 교수비대위 위원장은 "현재 본과 4년 교육도 힘들어 이 과정들이 예과로 내려가고 있는 상황인데, 5년제 시도는 의대 교육과 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 분명하다"며 "정부가 추구하는 것이 허울 좋은 '더 많은 의사'인지, 국민 건강을 담보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의사'인지 먼저 밝혀라"라고 질타했다.

교육부는 대책 발표 직후 비판이 나오자 "일률적으로 5년제로 전환하거나 단축 교육을 의무화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며 "6년제는 유지하면서 대학에서 학사 운영을 1년 단축할 수 있게 제도적인 길을 터주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인력 양성의 중요성과 시급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학에서 단축을 원하는 경우 현장과 협력해 교육과정을 단축하거나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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