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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안 설문 문항, 재정안정성 강조해 정부 입맛대로 바꿔"
기사 작성일 : 2024-10-18 11:00:01

연금개혁 관련 브리핑 하는 이기일 차관


최재구 기자 =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연금개혁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9.25

김병규 기자 =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면서 정부 개혁안에 찬성하는 답변을 유도하도록 질문 문항을 수정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8일 보건복지부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진숙 의원(더불어민주당)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8월 16∼29일 전국 20∼59세 국민연금 가입자 2천810명을 대상으로 '국민연금 제도 개혁에 대한 가입자 인식 및 동의 수준 조사'를 온라인으로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51.8%는 개혁 방향으로 '지속가능성 제고'를 택했다. 이는 '노후소득 보장 기능 강화'(45.6%)라는 답변을 웃돈다.

국민연금 개혁을 둘러싸고는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재정안정론과 노후소득보장을 중시하는 소득보장론이 맞서는데, 더 많은 사람이 재정안정론을 지지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논란이 되는 자동안정화(조정)장치에 대해서는 67.4%(반대 33.2%)가 찬성했고, 보험료율 세대별 차등 인상 방안은 65.8%(반대 34.2%)가 지지했다.

정부는 지난달 4일 보장성 강화보다 재정안정에 초점을 맞춘 개혁안을 내놓으며 이렇게 정부에 유리한 결과를 담은 설문 결과를 함께 발표했다.

전 의원은 이 설문조사와 관련해 "정부안에 대한 찬성을 유도하는 내용 중심으로 문항을 조작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노후소득보장 등 초안에 있던 설명은 삭제하고 재정안정성을 강조했다"고 지적했다.

전 의원이 설문 문항 초안을 입수해 최종안과 비교한 결과, 초안에는 국민연금 제도에 대해 '국민을 보호하고 빈곤을 해소하는 국가사회보장제도', '소득이 중단되거나 상실될 가능성이 있는 국민이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제도'라는 설명이 있었으나 최종안에는 빠졌다.

이런 보장성 강화의 근거가 되는 표현은 제외됐고, 대신 재정 위기를 강조하는 '2055년경 적립금이 소진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문장이 추가됐다.

정부 개혁안의 핵심인 자동안정화장치에 대한 설명도 초안과 최종안 사이 차이가 컸다.

자동안정화장치는 인구 구조나 경제 상황에 따라 내는 돈인 보험료율과 받는 연금액, 수급 연령 등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장치다. 기대 여명이 늘어나면 연금 수령액을 깎는 식이다

설문 조사에서 이 제도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었는데, 최종안에는 초안에 없던 '인구가 고령화되고 출생률이 낮아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년 자동으로 연금액을 조정해 줄이는 자동 안정화 장치를 일부 국가에서 도입하고 있다'는 설명이 질문의 전제로 추가됐다.

국민연금연구원의 연구용역 자료에는 자동안정화장치를 도입하면 생애 총급여가 17%가량 삭감된다는 내용이 있지만, 이런 설명은 질문에서 제시되지 않았다.

보험료율 세대별 차등 인상과 관련한 질문에서는 최종안에 '과거에는 보험료를 적게 내고 연금을 많이 받았지만, 현재 젊은 세대는 많은 보험료를 내고 적은 연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세대 간 형평성 문제를 강조하는 내용이 새로 담겼다.

전 의원은 "국민의 노후소득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연금개혁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편향적으로 진행한 것"이라며 "여론조사를 정부의 입맛대로 왜곡한 담당자를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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