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소장의 인터뷰 기사는 이번이 네 번째로, 교제 폭력 가운데 사이버 성폭력을 다뤘습니다. 생활 통제와 정서적 폭력을 담은 첫 번째 기사는 지난 11월 11일 [삶] "누굴 유혹하려 짧은치마냐? 넌 처맞아야"…남친문자 하루 400통이라는 제목으로 송고됐습니다. 물리적 폭력을 다룬 두 번째 기사는 같은 달 18일 [삶] "애인이 내 머리털 모두 잘랐다…내가 남들 앞에서 잘 웃는다고"라는 제목으로 송고됐습니다. 세 번째 기사는 같은 달 28일 [삶]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연인 불러 성추행하는 사람들도 있다"라는 제목으로 송고됐는데, 연인 간 성폭력을 다뤘습니다. [삶]은 자서전적 인터뷰여서 개인적 내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본인 제공]

윤근영 선임기자= 대학생 커플이 있었다.

남자가 물리적 폭행을 반복하자 여자는 헤어지자고 했다. 남자는 성행위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자꾸 그러면 유포하겠다고 했다. 여자는 당장 이 자리에서 지우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남자가 거절하자 여자는 신고하러 가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경찰서에 도착하기 전에 그 동영상이 유포됐다.

남자가 홧김에 여자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그곳에 저장된 연락처의 모든 사람에게 일괄로 동영상을 보낸 것이었다. 휴대전화에는 대학의 같은 학과 동기들, 교수님, 초중고 동창 등 지인뿐 아니라 부모님과 친척들의 연락처까지 들어 있었다. 그 동영상을 받은 사람은 500명도 훨씬 넘었다.

여자는 그 사건 이후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수치감에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남자를 만난 것 자체가 어리석었다는 자책감에 우울감도 깊어졌다. 수도 없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고, 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도 무너졌다.

이는 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소장이 지난달 4일과 29일 와의 인터뷰에서 전한 교제 폭력들 가운데 사이버폭력 사례다.

김 소장은 "동영상 유포, 딥페이크 등의 사이버 성폭력은 연인 사이에서도 종종 일어난다"면서 "그런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 자체가 정신적 살인에 해당된다"고 했다.

그는 "이런 협박을 받으면 고민할 것도 없이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면서 "전문가와 경찰의 도움 없이 가족들이 홀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상대방을 자극해서 오히려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했다.

김 소장은 "근원적으로는 교제폭력특별법을 제정해서 가해자를 엄중 처벌하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지원해야 한다"면서 "이런 법안은 2017년부터 국회에 제출됐지만 국회의원들은 관심이 없다"고 했다.

대학 학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보건소, 대학 병원 등에서 임상 경험을 쌓았다. 2014년에는 한국청소년자살예방협회를 창립해 정서적으로 힘든 청소년들을 도왔다. 2016년에는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를 만들어 교제 폭력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지원을 하고 있다.

연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모씨가 2023년 5월 28일 서울 남부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금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사진]

<김도연 소장의 인터뷰 1차 기사 요약>

-[삶] "누굴 유혹하려 짧은치마냐? 넌 처맞아야"…남친문자 하루 400통(11월11일 송고)

"너는 도대체 아이큐가 얼마냐", "너는 처맞아야 정신 차린다", "네 주제에 어디서 나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겠니", "입술은 누굴 유혹하려고 진하게 칠했냐", "치마는 안되고 무조건 바지만 입어라"

이는 교제 폭력 가운데 생활 통제와 정서적 폭력의 사례들이다. 교제 폭력은 교제 시작 단계, 교제 중, 이별 후에 발생하는 모든 폭력을 말한다. 심리적, 정서적, 언어적, 물리적, 경제적 폭력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하루에 욕설 문자를 300∼400통씩 보내기도 한다. 부재중 전화도 수백통씩 쌓이니 피해자의 일상이 마비된다.

경제적 착취도 교제 폭력 중 하나다. 돈을 빌려달라고 하고는 갚지 않는다. 연인에게 신용카드를 달라고 해서 그걸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금융기관 대출이나 사채를 이용해서라도 돈을 마련해달라고 한다.

정서적 폭력, 언어적 폭력 단계에서 피해자가 이별하지 못하면 살인을 포함한 물리적 폭력을 당할 수 있다. 이별할 때는 단독으로 행동하지 말고 가족과 친구 등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전문가와 상담하는 게 좋다.

<김도연 소장의 인터뷰 2차 기사 요약>

-[삶] "애인이 내 머리털 모두 잘랐다…내가 남들 앞에서 잘 웃는다고"(11월18일 송고)

교제 폭력 가운데 물리적 폭력은 다양하다. 여자가 늦게 귀가한다는 이유로 발길질하고 쓰러트리고는 목을 조르면서 뜨거운 다리미로 지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야구방망이나 골프채로 마구 때리고, 식칼을 집어 던지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잘 웃고 상냥하게 군다는 이유로 여친의 머리털을 모두 잘라버리는 사람도 있다.

물리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딱 한 번만이라도 있으면 빨리 헤어져야 한다. 그 사람이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하늘에 맹세하더라도 그걸 반복할 가능성이 높고, 심하면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제 살인은 잔혹하다. 발이나 손으로 마구 때려서 장 파열 등으로 숨지게 하기도 한다. 칼로 여러 번 찌르기도 한다. 이별을 통보받았을 때 상대방뿐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죽이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김도연 소장의 인터뷰 3차 기사 요약>

-[삶]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연인 불러 성추행하는 사람들도 있다"(11월28일 송고)

교제 폭력은 모든 직업군에서 일어난다. 정치인, 의사, 연예인, 변호사, 기업인, 프로운동선수 등도 교제 폭력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나이로는 전 연령대에서 일어난다. 70세 이상의 노인이 교제 폭력 가해자인 사례도 있다

연인 간에 성폭력도 발생한다. 폭행과 폭언을 한 뒤 화해한다는 이유로 성폭행하고, 상대방이 헤어지자고 했다는 이유로 성적(性的)으로 유린한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여친을 불러놓고는 자기 과시를 위해 성추행을 하기도 한다.

교제 성폭력을 당했다면 경찰 신고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증거 자료 확보에도 나서야 한다. 신고하고 싶지만 입증 자료가 없어서 포기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교제 폭력 가해자는 성격장애(personality disorder)를 가진 경우가 많다. 자기중심적이며 감정 통제가 안 되는 사람들이다. 공격성과 충동성을 조절하지 못한다. 성격장애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에 교제 초기에 파악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상대방의 통제나 지배, 폭력성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촬영]

다음은 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소장과의 인터뷰 4차 기사 일문일답.

-- 연인과의 성행위 장면을 동영상이나 스틸 사진으로 촬영하는 사람이 있는데, 왜 그러는 것인가.

▲ 소유 욕구가 강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그런 촬영물을 갖고 있어야 온전하게 상대방을 소유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성적 착취를 통해 우월성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나중에 연인이 떠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협박용으로 그런 영상물을 미리 찍어놓는 사람도 있다. 성격적으로 병리적인 것이다.

-- '리벤지 포르노' 가해자는 어떤 심리에서 그런 행위를 하나.

▲ 말 그대로 복수를 위한 것이다. 네가 나를 버렸으니 내가 모욕당했다. 네가 날 무시했다. 그러니 너도 똑같이 한번 당해봐라. 이런 복수 심리로 성행위 불법 영상물을 유포한다.

-- 피해자가 그 전에 동영상 촬영에 동의한 이유는 무엇인가.

▲ 거절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연인이 달콤한 말로 "나 혼자 볼게", "너를 너무 많이 사랑해서 기록물로 남기고 싶은 거야", "추억으로 간직하겠다"면서 간청하면 외면하기가 어렵다. 상대방이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런 요구를 들어주는 사람도 있다. 자기 몸을 스스로 촬영해서 연인한테 보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연인이 "나를 사랑한다면 증거를 보여달라"고 하니 거절하지 못한다.

-- 그런 가해자들은 주로 남자들인가.

▲ 가해자로는 남자가 상대적으로 많다. 그렇지만 여자인 경우도 있다. 30대 초반의 남녀 A와 B가 있었다. 두 사람은 1년 정도 만난 뒤 헤어졌다. 남자가 이별하자고 했다. B의 집착이 심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헤어진 후 다른 여자친구 C를 사귀었다. 4년이 지났고 자연스럽게 C와 결혼까지 생각하게 됐다. 이 때 갑자기 전 여친 B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시 사귀자는 것이었다. 그녀는 다른 남친을 만나봤지만 A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서 연락했다고 했다. A는 거절했지만 B는 매달렸다. A가 흔들리지 않자 B는 A의 여친 C에게 반복적으로 성행위 동영상을 보냈다. 그 영상에는 A와 B의 성행위 장면이 들어 있었다. 그 동영상을 본 C는 더 이상 A를 만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이별을 통보했다.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으로 촬영하고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가수 정준영이 2019년 5월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

-- 성행위 동영상 유포는 엄청난 고통을 초래할 듯한데.

▲ 동영상이나 사진을 유포하겠다는 협박 자체가 살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피해자는 그 동영상이 유포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 초긴장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 '디지털 장의사'를 통해 그런 동영상을 모두 제거할 수는 없나.

▲ 피해자들은 그런 전문가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그렇지만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동영상은 복제되고 양산되기 때문이다.

-- 연인한테 사이버 성폭력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성관계 장면을 기록으로 남기지 말아야 한다. 본인 스스로 촬영하려 하지 말고, 상대방이 찍자고 하면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 연인이 불법 동영상을 갖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삭제하라고 분명히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헤어지는 게 좋다. 불법으로 촬영했다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 상대방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유포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해자와 적당히 타협하면 또다시 협박당하고 평생 끌려다닐 수 있다. 상대방의 요구에 따라 돈을 주면 그다음에 더 많은 돈을 달라고 한다.

-- 한때는 연인이었는데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쉽지 않을 듯한데.

▲ 파트너를 성적 착취, 경제적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재고의 여지가 없다. 강력히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고통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딥페이크 대응 범정부 TF 단장인 김종문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이 2024년 11월1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딥페이크 성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 위장-비공개 수사를 실시하는 한편, 제작·유포자에 대한 처벌 강화, 검거 전 범죄수익 몰수 및 전담검사 확대 등 수사력 강화, 피해자 보호를 위한 삭제 지원 강화 등의 내용을 발표했다. [ 사진]

-- 딥페이크는 인공 지능을 이용해 만든 합성 동영상인데, 이런 피해자도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 딥페이크 동영상은 워낙 정교해서 조작물이라는 것을 눈치채기 어렵다. 그러니 피해자들은 그 동영상을 누가 보는 것은 아닐까 하고 공포에 떤다. 동영상이 모두 제거됐다고 하더라도 그걸 본 사람의 머릿속에는 그 장면이 남아 있으니 피해자의 고통이 매우 크다.

-- 다른 방식의 교제 성폭력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 음성 녹음을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여성은 커피숍에서 남친을 만나는 순간부터 헤어질 때까지 전체 5∼6시간의 모든 내용을 녹음했다. 거기에는 성적인 내용도 들어 있었다. 휴대전화에 녹음 기능이 있으니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집에 와서는 그 녹음을 반복해서 듣고 회사에서도 들었다고 한다.

-- 왜 그런 행위를 하나.

▲ 일종의 집착이다. 본인은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병리적인 것이다. 샤워할 때도 듣고, 화장실에서도 듣는다. 잠도 안 자고 밤새워 들으니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이런 기록물은 최악의 경우 협박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 학생들이 디지털 성폭력 예방 교육을 받고 있다. [세종교육청 제공]

-- 초등학생들이 사이버 성폭력을 당하는 일이 있나.

▲ 초등학교 고학년 여자아이들이 어른으로부터 그런 피해를 입는 경우가 생각보다 꽤 많다. 가해자는 전(全) 연령대다. 내가 파악한 사례 중 한 가해자는 50대 후반의 남자였다.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아내와 20대의 자식들을 두고 있었다.

-- 초등학생이 어떤 경로로 그런 피해를 보나.

▲ 아이들이 친구 문제나 가정 폭력 등으로 힘들 때 우울증 관련 사이트에 들어가는 일이 있다. 그때 어른들이 접근해온다. 그들은 부모와 달리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공감해준다. 그렇게 환심을 산 뒤에 아이에게 만나자고 해서 성추행 또는 성폭행하고 동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한다.

-- 이런 피해는 어떻게 발견되나.

▲ 부모가 자녀의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통해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 행태의 변화를 감지하고 추궁해서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아이는 방에서 잘 나오지 않고, 귀가 시간도 늦어져서 부모가 주시하다가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을 뒤져서 알게 됐다고 한다,

-- 아이가 피해를 입으면 부모한테 즉각 알려야 할 것 같은데.

▲ 가해자는 다정하게 보살펴주고 용돈도 주니 아이는 심리적으로 그 사람한테 의존하게 된다. 심지어 자기 부모보다 낫다고 생각해서 부모를 멀리하기도 한다. 사춘기 아이들은 잔소리를 많이 하는 부모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부모에게 알리지 말라고 협박하는 일도 많다. "부모가 알면 큰일 나고, 너도 나도 생활하기 어렵게 된다", "너희 부모도 회사에서 매장된다", "엄마 아빠한테 알리면 학교에 다 퍼트리겠다"고 협박한다.

-- 이런 일이 발생하면 부모도 매우 고통스러울 듯하다.

▲ 부모는 가해자에 대한 울분과 분노에 휩싸인다. 자식한테 소홀했다는 자책감으로 괴로워한다. 직장 생활과 일상생활을 못 하는 부모도 있다.

-- 자녀에게 이런 일이 없도록 하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나.

▲ 평소에 자녀와 대화를 많이 나눠야 한다. 그래야 아이의 사생활도 알고, 주변 관계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행동 변화도 잘 살펴봐야 한다. 위기의 징후로는 아이가 방에서 나오지 않고, 말이 없어지고, 귀가 시간이 달라지고, 성적이 떨어지고, 부모와의 관계가 멀어지는 현상 등이 있다. 의심되면 전문가와 상담하는 게 좋다. 피해 사실이 확인되면 당연히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아이에 대한 심리 치료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