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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성멈춘 가자] 불타고 벌집같은 총탄 자국…하마스의 살육·납치 현장
기사 작성일 : 2025-01-21 18:00:58

하마스 기습 피해 컸던 이스라엘 베에리 키부츠


(베에리= 김동호 특파원 = 2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남부 베에리 키부츠(집단농장)의 하마스 공격 피해 현장 설명하는 주민 닐리 바르시나이. 2025.1.21

(베에리= 김동호 특파원 = 어디선가 풍기는 축사 냄새가 코를 찌르는 이스라엘 남부 농촌 마을.

마을 입구 근처의 사람들 발길이 뜸한 주민센터를 지나 조금 걷다보니 부서지고 그을린 벽, 벌집같은 총알 흔적 등이 고스란히 남은 주택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는 살았지만, 누구는 죽임을 당하고, 누군가는 끌려갔어요…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요?"

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휴전 이틀째인 20일(현지시간) 오전 찾은 이스라엘 남부 베에리 키부츠(집단농장)의 모습은 471일 전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 하마스의 기습 표적이 되며 주민 101명과 군인·경찰 31명이 숨졌다.

이 마을에는 직선거리로 4㎞에 불과한 가자지구 경계로 이어지는 도로가 있다.

주민 닐리 바르시나이(74)는 도로 옆 한 2층집을 가리키며 "위로 올라가는 외부 계단이 있는데, 가자 출신 인부들이 공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마스 기습 피해 컸던 이스라엘 베에리 키부츠


(베에리= 김동호 특파원 = 2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남부 베에리 키부츠(집단농장)의 하마스 공격 피해 현장. 2025.1.21

이곳 사정에 훤한 하마스 대원들은 침입 후 가장 먼저 이 집 사람들을 살해한 뒤 지붕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본부로 썼을 정도로 계획적으로 움직였다고 한다.

닐리는 느린 걸음으로 키부츠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그날의 기억을 돌이켰다. 집마다 걸린 빛바랜 플래카드가 누가 죽거나 납치됐는지 사연을 상세히 알렸다.

하마스가 들이닥친 2023년 10월 7일, 마을 설립 77주년이자 유대교 안식일이 겹치며 이스라엘 전역에 흩어져 살던 가족과 친척들이 방문 중이던 탓에 피해가 컸다.

사람들은 각 집에 설치된 안전가옥으로 피신했지만, 하마스를 막지는 못했다.

한 안전가옥은 창문 주변 벽이 긁히고 부서져 철근 뼈대가 그대로 노출됐다.

하마스는 창문이 좀처럼 뜯어지지 않자 자동차 타이어에 불을 붙여 실내로 연기를 흘려보냈고, 견디지 못한 이들이 결국 밖으로 나와 그대로 납치됐다고 한다. 화재가 났던 장소에서는 아직 매캐한 냄새가 났다.

완전히 검게 불탄 한 주택 밖에는 자잘한 건물 잔해가 쌓여 있었다. 이스라엘 당국이 불길 속에서 형체를 알수 없게 된 유해를 마지막 한 점까지 찾으려고 한 흔적이다.


하마스 기습 피해 컸던 이스라엘 베에리 키부츠


(베에리= 김동호 특파원 = 2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남부 베에리 키부츠(집단농장)의 하마스 공격 피해 현장. 2025.1.21

텔레비전과 환풍기 등 집기류는 열기에 녹아 흘러내렸고, 후드티와 블록 장난감 같은 것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수류탄과 총알 자국으로 뒤덮인 한 집 입구에는 "정치인은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었다. 유발 바르, 마얀 바르 2명이 살해된 곳이다.

요르단강 서안 출신 이스라엘 군인 2명이 이 집을 차지한 하마스 대원들을 격퇴하는 과정에서 전사했는데,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 달라는 유족의 당부였다. 집안은 노부부 생전 자녀, 손주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때의 사진으로 장식됐다.

키부츠 주민은 사회주의적, 세속주의적 성향이 짙고 팔레스타인 공존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지만 정착촌에는 유대인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민족주의적 신념을 지닌 주민이 대다수다.

한 2층 주택은 안전가옥 통로를 감싼 철망이 뜯긴 채로 방치됐다. 그날 이곳에 숨었던 닐리의 딸 가족을 하마스가 납치하려다 실패한 흔적이다.


하마스 기습 피해 컸던 이스라엘 베에리 키부츠


(베에리= 김동호 특파원 = 2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남부 베에리 키부츠(집단농장)의 하마스 공격 피해 현장. 2025.1.21

하지만 남편 요람은 딸을 지키려 발코니에서 권총을 들고 하마스에 맞서다가 살해당했다. 그는 아랍 국가들을 상대로 한 제4차 중동전쟁, 이른바 '욤키푸르 전쟁' 참전용사였다.

좀처럼 개인사를 언급하지 않던 닐리는 기자를 마을 밖으로 배웅하던 차 안에서 "제 어머니는 50년 전 '로드 공항' 테러 때 죽었다"며 조금씩 말문을 열었다.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이 모집한 일본인 적군파 대원 3명이 공항에서 승객과 직원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해 26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닐리는 "어머니도 남편도 죽었지만, 나는 여기에 남았다"며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가자지구를 떠나지 않고, 유대인도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휴전에 대한 생각을 질문받자 "외국 언론에 이곳 현실을 알리는 것이 내 의무인 것 같다"며 "가자 사람들이 그 많은 외부 지원을 무기를 사는 것이 아닌 병원과 학교를 짓는 것에, 자신의 아이를 위해 쓰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하마스 기습 피해 컸던 이스라엘 베에리 키부츠


(베에리= 김동호 특파원 = 2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남부 베에리 키부츠(집단농장)의 하마스 공격 피해 현장. 202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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