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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서러운 전세사기 피해자…"어려운 형편에 가족도 못 봐"
기사 작성일 : 2025-01-26 09:00:18

서류 확인하는 전세사기 피해자


[촬영 황정환]

(인천= 황정환 기자 =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24일 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동 아파트.

아파트 출입문에는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를 알리는 현수막과 엘리베이터와 복도 벽 곳곳에는 '알고 이사 오시는 거죠?'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2017년 준공된 이 아파트는 이른바 '건축왕' 남모(63)씨 일당이 전세사기 범행에 사용한 아파트로 60세대 전체가 피해를 당했다. 이 중 절반가량은 경매에 낙찰됐고, 나머지는 아직 경매가 진행 중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대한 3차 경매가 다음 달 7일 이뤄지는 전세사기 피해자 50대 김모씨에게 이번 설 연휴는 의미가 없다.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김씨는 "여유 자금이 없어서 경매에는 참여를 못 했다"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우선매수권으로 집을 낙찰받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20년 3월 다른 곳보다 전셋값이 저렴해 대출을 받아 전세 보증금 7천300만원을 내고 2년 전세 계약을 맺었다.

2년 뒤 임대인이 전세금 1천만원을 올려 달라고 요청해 8천300만원에 재계약을 했다.

김씨는 당시 등기부등본에 경매개시 결정을 확인하고 계약을 종료하려고 했으나 공인중개사로부터 "임대인이 잠깐 재정난을 겪고 있을 뿐 큰 문제는 아니고 나가려면 들어올 다른 세입자를 직접 구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어쩔 수 없이 계약을 연장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세대도 줄줄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우편물을 발견하고 전세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렵게 마련한 전셋집은 김씨 부부에게 감옥으로 변했다.

김씨는 결혼한 딸에게 설 연휴에 집에도 오지 말라고 연락했다.

김씨는 "남편이 매일 편의점에서 야간 근무를 해서 하루도 쉴 수 없는 형편"이라며 "밥 한 끼도 마음 편히 못 먹으니까 다음에 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딸 시댁은 우리가 전세사기를 당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며 "지옥 같은 시간을 가족이 있어서 겨우 버틴다"고 토로했다.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


[촬영 황정환]

또 다른 전세사기 피해자인 김병렬(47)씨는 남씨 사기사건의 대법원 판결에 크게 분노했다.

김씨는 "남씨에게 당한 4명이 목숨을 잃고 수많은 피해자의 피눈물에 대한 죗값이 고작 7년이라니 이해할 수 없다"며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남씨와 같은 수법으로 사기를 치고 감옥에 다녀오자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지난 23일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남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남씨는 1심에서 사기죄의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7년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은 2심 판단을 받아들였다.

남씨 일당은 2021년 3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인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191채의 전세 보증금 148억원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이들의 전세사기 혐의 액수는 총 536억원(665채)에 달하며 이번 대법원에서는 148억원만 다뤄졌다.

추가 기소된 나머지 305억원대(372채)와 83억원대(102채) 전세사기 혐의는 각각 다음 달 선고 공판과 첫 재판이 열린다.

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장은 26일 "이번 판결로 다음 달 열리는 다른 피해사건의 선고 공판에서도 제대로 된 처벌이 안 나올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엄중 처벌을 촉구했지만...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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