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자 추방 항의 시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추방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포스터를 만들고 있는 시민들 [EPA . 재판매 및 DB 금지]
이신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불법 이민자 단속과 추방 정책에 미국 내 이주민 공동체가 공포에 떨고 있다.
특히 범죄자가 아니라도 체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백악관의 발표에 두려움에 휩싸인 이주민들은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을 꺼리고 지하로 숨어드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한 이후 29일(현지시간)까지 5천500여명 이상의 이주민이 체포됐다.
대규모 단속은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이뤄졌다.
공익 로펌 '퍼블릭 카운슬'에서 이민자 권리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변호사 지나 아마토 로프는 BBC에 "임기 첫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이 정도 규모는 처음"이라며 단속 규모가 이례적으로 크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는 명백히 충격과 공포를 조장하려는 의도"라며 사람들이 이제는 병원에서 치료받는 일조차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법 이민자들에게 무료 법률 지원을 제공하는 아미카 이민자 권리센터의 마이클 루켄스는 "백악관이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떠나는 것"이라며 "사람들이 겁에 질려있다"고 했다.
이주민 사회를 특히 얼어붙게 만든 것은 단속 대상이 범죄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은 적이 있는 이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NBC 방송은 지난 26일 당국자를 인용해 체포된 사람 중 48%가 비폭력 전과가 있거나 어떤 범법행위 기록도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보도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28일 언론 브리핑에서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의 법을 어긴 사람은 누구나 범죄자"라고 밝혔다.
범죄 이력이 없더라도 미국에서 형사 사건이 아닌 민사, 행정 사건에 해당하는 불법 체류 자체만으로 체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셈이다.
20여년 전 미국에 온 볼리비아 출신 이주민 가브리엘라는 처음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범죄자만 단속할 것으로 생각해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 활성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지만, 지금은 "많은 이웃이 두려움에 떨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멕시코 출신의 또 다른 불법 이민자 카를로스는 일부 이주민들은 지하로 숨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범죄자들이 체포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잡혀가고 있다는 소식을 계속 듣고 있다"며 "무섭다"고 호소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불법 이민자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피부색이나 인종 등으로 용의자를 특정하는 이른바 '인종 프로파일링'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NBC방송은 미국 원주민인 나바호족은 물론 참전용사들도 인종이나 피부색 등으로 인해 신분증을 제시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뉴저지주에서 ICE 단속 대상이 됐던 한 해산물 도매업체 직원은 미국 시민권자이자 참전용사였다.
이 업체 대표는 단속당한 직원이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출신이었으며 백인 직원은 서류 제시 요구를 받지 않았다며 "그들(ICE)은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노리는 것처럼 보였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취해진 불법체류자 추방 면제 조치도 취소하는 등 이민자 단속에 속도를 내고 있다.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불법체류자 임시보호지위(TPS·Temporary Protected Status) 연장 결정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60만명에 달하는 베네수엘라 국적의 불법 이민자들이 이르면 두 달 안에 추방될 위험에 처하게 됐다.
국토안보부는 또 이주민을 돕는 비정부기구(NGO)에 대한 보조금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