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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시선] '추방 위험' 이민가정 아이들에게 배포된 '빨간 카드'
기사 작성일 : 2025-02-02 08:01:01

LA 공립교육구 LAUSD가 학생들에게 배포한 기본권 안내 카드


[LA 이민법지원센터(Immigrant Legal Resource Center)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로스앤젤레스= 임미나 특파원 = 지난 2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통합교육구의 다네이카 왓슨 교육감은 학부모들과 소통하는 온라인 사이트에 "이민자 학생과 가족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올렸다.

왓슨 교육감은 "연방 정책의 최근 변화는 이민을 단속하는 공권력이 학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며 "하지만 모든 학생은 자신의 이민자 지위에 상관없이 학교에 가서 배우고 안전하게 느낄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학교들은 모든 학생과 가족, 교직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다"며 "우리 교육구는 학생이나 가족의 이민자 지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거나 노출하지 않고 비밀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왓슨 교육감은 기자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포함해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내 글렌데일 지역의 공교육을 총괄하는 관리자다.

기자는 미 정부가 외국 언론사 특파원에게 발급하는 비자를 받고 체류 중이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단속 대상이 아니지만, 교육감의 이런 메시지는 묘한 안도감을 줬다.

무장한 이민세관단속국(ICE) 단속 대원들이 초등학교에까지 들어와 어린아이들을 잡아가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서다. 그런 장면을 눈앞에서 보게 되는 다른 아이들 역시 큰 충격을 받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지난 20일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 ICE를 통한 대대적인 불법 이민자 단속이 시작되면서 이민자 인구가 많은 LA 일대에는 긴장감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벤저민 허프먼 국토안보부 장관 대행은 지난 21일 ICE 요원이 교회, 학교와 같은 "민감한 구역"에서 단속 활동을 하는 것을 허용하는 지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31일(현지시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ICE의 불법이민자 단속에 항의하는 시위자들


[AFP=. 재판매 및 DB 금지]

LA 공립교육구 교육감이 보낸 메시지는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남미계와 아시아계 인구 비중이 큰 데다, 트럼프 대통령이 배척한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를 중시하는 캘리포니아에서는 특히 불법 이민자 자녀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학교 안에서는 당국이 불법 이민자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외부인이 학교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등 ICE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해도 학교를 벗어나면 아이들이 쉽게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LA 시내 공립학교를 관할하는 LAUSD 통합교육구는 최근 명함 크기의 빨간색 종이에 학생들이 주장할 수 있는 기본권에 대한 내용을 인쇄한 카드를 제작해 학생들에게 배포했다.

이 카드에는 판사의 서명이 기재된 적법한 영장 없이는 누구도 집 안에 들어올 수 없으며, 미 수정헌법 4조에 따라 개인의 물품을 함부로 수색할 수 없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전문가들은 이런 권리를 주장할 때 당국의 임의 체포나 구금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지역 일간지 LA타임스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인 레나 곤살레스는 학생들에 대한 보호를 학교 캠퍼스에서 반경 1마일(1.6㎞) 떨어진 곳까지 확대하는 법안 발의를 추진 중이다.

미국의 비영리기관 네트워크에서 운영하는 '고등교육 이민자 포털' 사이트에 따르면 미국의 고등교육기관(대학)에 재학 중인 서류 미비(불법) 이민 학생은 총 40만7천899명이다.

초·중학생에 대한 관련 통계는 없지만, 공교육이 대부분 무상으로 이뤄지는 만큼 대학생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불법 이민자 추방 공약은 외국의 사악한 범죄자들이 미국에 몰래 들어와 활개 치고 다니면서 미국인들에게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주장으로 지난 대선 과정에 적지 않은 지지를 받은 게 사실이다.

지난 22일 연방 의회를 통과한 불법 이민자 구금 법안은 미국에 불법 입국한 베네수엘라인에 의해 작년 2월 살해된 미국인 여성의 이름을 따 '레이큰 라일리 법'으로 명명됐다.

이런 불법 이민자 관련 법과 정책의 취지를 살린다면 단속의 화살이 ICE의 체포 건수 실적 높이기보다는 실제 중범죄자들을 잡아들이는 데 집중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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