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aily

민중가요 '저 평등의 땅에'·'선언 1,2' 만든 류형수씨 별세(종합)
기사 작성일 : 2025-02-04 19:01:10


[유족 제공]

이충원 기자 = "우리의 긍지 우리의 눈물 평등의 땅에 맘껏 뿌리리"(류형수 작사·작곡 '저 평등의 땅에' 중에서)

'저 평등의 땅에', '선언 1, 2' 등 민중가요를 만든 작곡가 겸 컴퓨터 프로그래머 류형수 전 셀인셀즈 기술이사가 지난 3일 오후 8시34분께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4일 전했다. 향년 58세.

1967년 9월1일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대구 덕원고를 졸업하고, 1985년 서울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와 '민중문화운동연합'(민문연, 나중엔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 노래패 '새벽'에서 활동했다. 1988년 6·10 민주화 항쟁 1주기를 맞아 '새벽'이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개최한 공연 '저 평등의 땅에'를 주도했다. 서울대에서 제적당한 후 한양대 작곡과에 입학했으나 졸업하진 않았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게임 '용쟁화투'나 초창기 안드로이드폰에 아이폰과 같은 터치감을 제공한 앱 '하이퍼터치'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빅데이터와 AI에 관심을 쏟았고, 바이오벤처 셀인셀즈의 기술이사로 일하기도 했다.

'저 평등의 땅에', '선언 1, 2', '철의 기지', '너를 위하여' 등을 작사·작곡했다. '저 평등의 땅에'는 1988년 '새벽' 12집의 가수 윤선애와 1989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2집의 권진원 목소리로 널리 알려졌다. 노찾사 3집에도 실린 '선언2'는 "가자! 가자! 저 자유의 땅에! 억센 팔과 다리로/수천 년 이어온 생산의 힘으로 새 세상 만들어내리"라는 가사로 시작된다.


다큐멘터리 '나의 노래:메아리'에 출연한 고인


[영화평론가 이안씨 제공]

대부분의 '운동권 가요'가 행진곡풍이었던 것과 달리 고인이 만든 노래는 클래식 기법을 따랐고, 신시사이저 등을 이용해 여러 변주를 시도했다. 고인은 2018년 메아리 창립 40주년을 맞아서 나온 다큐멘터리 '나의 노래:메아리'에서 "(1987년 이후) 많은 노조가 생기면서 '우리한테 맞는 노래는 어디 있느냐'는 요구가 생겼지만, '새벽(이 만든) 노래는 부르기 어렵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노동) 현장에서 사용되는 말들, 감정을 어떻게 노래에 담아내면서 노래답게 만들거냐가 딜레마였다. 좋은 음악이 뭘까 지금도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그가 작곡한 노래들은 어깨를 걸고 신나게 가두행진할 때 어울릴 만한 노래들은 아니었다"며 "거리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온 뒤 조용히 생각을 가다듬으며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절로 그 음악에 스며들 수 있을 만큼 곡의 구성들이 뛰어났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적당한 거리를 두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곡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노래들은 당시 내가 들었던 민중가요 중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음악이었다"고 썼다.

최근에는 가수 윤선애가 부른 '낭만아줌마'(2017)를 만들고,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래 '숨'을 발표했다. 2020년부터는 유튜브 '류형수 테레비'를 통해 자신이 만든 곡을 발표했다. 2023년 6월 자신의 곡으로 공연하고 음반을 냈다. 공연과 음반 제목은 '하루'였다.

콘텐츠 기획자 채희태씨는 브런치에 쓴 글에서 "개인적으로 민중가요 음반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은 '노찾사'도, '꽃다지'도, 그리고 '조국과 청춘'의 음반도 아닌 노래모임 '새벽'의 1988년 공연 실황을 담은 '저 평등의 땅에'라고 생각한다"며 "류형수가 만든 곡은 구성이나 코드 진행이 모두 보편적 틀을 벗어나 있으면서도 치밀하고 논리적이다. 그래서 내가 류형수의 노래를 김호철이나 윤민석의 노래와 다르게 가슴도, 배도 아닌 머리로 불러야 한다고 느끼는지도 모르겠다"고 적었다.

'메아리' 동료인 영화평론가 이안씨는 "'286 컴퓨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 '테트리스'나 '핑퐁' 같은 게임이 너무 어렵다고 불평했더니 일주일 만에 훨씬 느리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준 적도 있었다"며 "음악뿐만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등 다방면에 걸쳐서 '천재'라는 말이 어울리는 친구였다"고 말했다.

역시 '메아리' 활동을 함께 한 가수 윤선애씨도 "추운 겨울에 신시사이저나 컴퓨터 앞에 앉아서 몇시간이고 뭔가 작업을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며 "보통 사람과는 많이 다른 친구였다"고 기억했다.

유족은 부인 전미정씨와 사이에 2남(류광민·류경필)이 있다. 빈소는 보라매병원 장례식장 5호실, 발인 6일 오전 8시30분, 장지 청아공원. ☎ 02-830-6900

※ 부고 게재 문의는 팩스 02-398-3111, 전화 02-398-3000, 카톡 okjebo, 이메일 유족 연락처 필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