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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판문점서 김정은과 만나는 트럼프
[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워싱턴= 조준형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복귀 이후 1개월 남짓한 기간에 북한에 대해 자신만의 '색깔'과 미국의 오랜 '기조'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취임 첫날인 지난달 20일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칭하는 파격을 보였고, 그로부터 사흘 뒤 방송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연락하겠다"며 북미간 정상외교 재가동 의지를 드러냈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력 진전을 현실로 인정한 채 완전한 비핵화보다는 핵군축 등 상황 악화 방지에 주력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김위원장과 "관계를 맺을 것"이라면서도 공동성명에 "완전한 북한 비핵화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명기했다.
또한 공동성명에서 "북한에 대응하고 지역 평화와 번영을 수호하는 데 있어 한미일 3자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결국 집권 1기때 세차례 만났던 김정은 위원장과 다시 만날 용의는 있으나 그것을 위해 북핵 문제 해결의 '기준'을 낮추지는 않을 것이며, 한미일 간에 대북정책을 조율해 나갈 것임을 시사한 것이었다.
외교가에서는 대북 문제를 바둑판에 비유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포석', 그것도 초반 몇 수를 둔 것이라고 평가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협상에 다시 나설 수 있는 진용도 어느 정도 구축했다.
집권 1기 북미 정상회담 준비와 실행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사 중 앨리슨 후커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을 국무부 정무차관으로 지명했고, 알렉스 웡 전 국무부 대북특별 부대표를 NSC 수석 부보좌관으로 기용했다.
여기에 더해 자신의 외교분야 책사인 릭 그리넬 전 주독일대사를 북한 문제를 포함한 각종 난제를 다루는 '리베로' 성격의 특사로 기용했다.
북미대화가 재개되면 즉각 투입할 수 있는 '베테랑'들을 확보해 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북한이 북미대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도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외교와 가자지구 개발, 파나마운하 운영권 회수 등 취임 이후 벌려 놓은 북한 이외의 다른 현안들을 우선 순위에 올려 놓은 듯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북한이 북미대화에 전향적 신호를 보일 때까지 실무자들을 통해 구체적인 대북정책을 준비하면서 기회를 볼 것으로 관측통들은 예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시작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한 중재외교의 향배가 북미대화의 여건을 만들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지난 12일 통화에서 미러 관계 개선에 대한 상호 의지를 확인함으로써, 동맹에 준하는 수준으로 결속된 러북관계에 일부 '김'을 뺐다.
미러관계가 개선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대러 파병과 미사일·포탄 제공의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받게 될 첨단 군사기술이 미국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푸틴 대통령에게 제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거기에 더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당장 종전으로 직행하진 않더라도 휴전 협상이 진행되고, 그 기간 교전이 중단된다면 러시아로서는 북한의 효용이 지금만큼 크지 않게 될 수 있다.
결국 미러관계 개선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을 위한 외교 국면은 북한으로 하여금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 현재의 대외관계에 변화를 모색할 필요를 느끼게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 시나리오대로 된다면 북한이나 미국 모두 자국 외교·안보상의 필요에 따라 북미대화 추진에 관심을 갖게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단 북한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한 상황에서 앞으로 몇 달 안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구체적인 대북 정책에 그 목표를 재차 명기하고, 대북 협상의 실질적인 원칙으로 유지할 것인지도 지켜봐야 할 포인트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의 목표와 원칙을 명목상으로는 유지하더라도 그것을 장기적 목표로 돌린 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중단과 같은 '부분적' 합의를 '북핵 문제 해결'로 간주하지 않도록 한미, 한미일 차원의 긴밀한 대북정책 조율이 필요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 하에서 사실상 정상외교의 공백기를 보내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트럼프발 관세 전쟁'의 파고를 넘어가면서 미국의 한반도 정책 추진 과정에서 '한국 패싱' 우려를 불식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