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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푸틴-트럼프-젤렌스키
[EPA·AP=. 재판매 및 DB 금지]
임화섭 기자 = 1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고위급 회담을 열고 우크라이나전 종전 방안 마련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이 각각 수석대표인 양국 대표단은 이날 원만한 분위기 속에 서로의 입장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양측의 기본적 입장 차이가 큰 탓에 결과를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쟁을 치르는 직접 당사국이면서도 초기 협상에서 배제된 우크라이나의 동의가 실제 휴전에 필수적인 데다가 부수적으로 유럽 국가들의 입장까지 감안해야 하는 점도 변수다.
18일(현지시간) 미국과 유럽 언론매체와 각국 지도자들의 최근 발언을 살펴보면 각 주체들의 입장과 쟁점이 드러난다.
◇ 러 "국경선 다시 긋자"…우크라 내 서방세력 퇴출 요구
러시아는 침공을 통해 장악한 지역을 자국 영토로 반영해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선을 새로 긋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러시아가 병합했다고 선언한 루한스크·도네츠크·자포리자·헤르손 등 동부와 남부 4개 주에 대한 러시아의 영유권을 서방 측이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4개 주 중 상당히 많은 부분은 우크라이나가 통제권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러시아든 우크라이나든 이들 주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고스란히 관철하기는 무리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경선이 어떻게 그어지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친(親)러시아 정권이 들어서기를 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영구적으로 중립화해야 한다며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이나 서방 측 군대의 우크라이나 배치는 절대 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에 가해 온 제재조치는 종전과 함께 종결돼야 하며 나토 확장도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가 평화조약 조건으로 우크라이나가 보유할 수 있는 병력의 규모나 무기의 종류를 제한해야 한다고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2022년 3월 튀르키예에서 양국이 직접 평화협상을 벌였을 때 러시아가 이런 요구를 한 전례가 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사이에 이뤄져 온 군사정보 공유를 중단하라고 러시아가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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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리야드 로이터= 2025년 2월 18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왼쪽) 러시아 외무부 장관과 무함마드 빈살만 알사우드(오른쪽)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만나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를 통해 배포된 러시아 외무부 제공 사진. (Russian Foreign Ministry/Handout via REUTERS ATTENTION EDITORS - THIS IMAGE HAS BEEN SUPPLIED BY A THIRD PARTY. NO RESALES. NO ARCHIVES. MANDATORY CREDIT. REFILE - QUALITY REPEAT) 2025.2.19.
◇ 미국은 친러시아 성향…대러시아 제재 해제까지 검토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가 주권국가로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조건으로 평화조약이 체결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것으로 전해졌다. .
유럽에서 러시아가 자국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른바 '러시아 세력권'을 인정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가 중국, 북한, 이란 등과 동맹을 더욱 강화하는 일이 없도록 미국도 어느 정도의 양보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비현실적" 등 표현을 써가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미국은 러시아의 제재 해제 요구도 전향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광범위한 제재를 해제하기 위해 어느 시점에 유럽이 협상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정확한 의도는 불투명하지만 미국은 전후 계획과 관련해 젤렌스키 정권에 부정적인 인식을 내비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저조한 지지율을 거론하며 전쟁으로 보류된 대선을 빨리 치르라고 압박했다.
서방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내에 친러시아 정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까지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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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리야드 UPI= 2025년 2월 18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만나 대화하는 마코 루비오(왼쪽) 미국 국무부 장관과 무함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UPI를 통해 배포된 사우디아라비아 외무부 제공 사진. (Photo by Saudi Arabia Foreign Ministry/ UPI) 2025.2.19.
◇ 우크라 "협상배제·일방적 조건 강요 절대 안된다" 배수진
우크라이나 내 여론조사를 보면 러시아에 점령된 영토를 모두 되찾지 못하더라도 러시아와 평화조약 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의견이 최근 들어 많아지고 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개시된 우크라이나전은 제2차세계대전 이래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 중 최대 규모다.
정확한 집계치는 없으나 양측을 합해 전사자가 10만명 이상 나온 것은 확실해 보인다.
전사자나 부상자 수의 절대적 규모는 러시아 측이 많은 것으로 보이지만, 인구가 러시아보다 적은 우크라이나가 더 큰 압박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전쟁터가 우크라이나 영토 내이므로, 민간인 피해는 대부분 우크라이나 측에서 나온다.
최근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집계에 따르면 침공 이래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사망자 수는 4만명을 넘어섰다.
러시아를 상대로 한 전쟁 수행의 구심점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완전히 몰아내는 것은 무리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우크라이나 영토의 러시아 합병을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게 젤렌스키 대통령의 입장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과 유럽 강대국들의 안전보장이 없이는 지속 가능한 평화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추진해왔으나 미국과 일부 유럽 국가들이 이에 반대하고 있다고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직면한 난제는 미국과 러시아의 양자회담이 골자를 이룬 협상에서 자국의 요구가 의제에 오를 가능성이 작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는 방법에 관한 결정은 우크라이나 없이 내려질 수 없으며 어떤 조건도 강요될 수 없다"며 자국이 배제된 회담 결과는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