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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90년대 유전공학 붐 주역…박상대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기사 작성일 : 2024-04-21 14:01:10

2013년의 고인


[촬영 안정원]

이충원 기자 = 한국 유전공학('생명공학') 연구는 1983년 유전공학육성법이 제정되면서 본격화했다. 1985∼1998년 정부 유전공학심사평가위원장을 맡아 한국 유전공학 연구를 이끈 박상대(朴相大) 서울대 명예교수가 20일 저녁 '폐렴으로 인한 급성 호흡 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87세.

경남 김해생인 고인은 부산고,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했고, 1974년 미국 세인트존스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인의 초기 연구 주제는 '선천성 이상질환에서 이질염색질 및 염색체의 이상과 DNA 합성 이상'이었다. 연구 과정에서 방사선자동사진법(Autoradiography)을 국내 최초로 활용했고, 이는 훗날 표적치료제 연구의 실마리가 됐다. 또 염색체의 DNA 합성을 정량화할 수 있는 최첨단 현미자기방사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1966년 한국 최초 염색체 수준의 연구인 '터너증후군의 성염색체 이상에 관한 자기방사법적 연구' 논문을 썼다.

1967년 만 29세 때 최연소 서울대 교수가 됐다. 2002년까지 서울대 동물학과, 분자생물학과, 생명과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발암성 유전병 연구를 통해 국내 분자세포생물학 연구를 이끌었다.

한국에서 유전공학이 논의된 것은 1980년 한국생물과학협회가 주관한 유전공학 심포지엄이 처음이었다. 정부는 1982년 1월 생명공학을 국책과제로 선정해 지원하기로 했고, '유전공학연구조합'과 '유전공학학술협의회'를 만든 데 이어 1983년 유전공학육성법을 제정했다. 고인은 1984년 서울대에 '분자생물학 대학원 협동과정'을 개설해 석·박사 인력을 양성하기 시작했고, 1985년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를 만들어 초대 소장을 맡았다. 여기서 20여종의 DNA 복제 및 회복 관련 유전자를 분리해 특성을 밝혔다. 특히 재조합회복 관련 유전자 Rhp51 의 구조와 발현조절기전을 최초로 규명하는 등 1980∼1990년대 'DNA 손상 회복'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선두 주자로 활약했다.

교육부는 유전공학심사평가위원회를 구성해 연구비를 대학 부설 유전공학연구소를 통해 지원했고, 고인은 1985∼1998년까지 13년간 유전공학심사평가위원장을 맡아 지원 연구과제를 선정하고 연구비 배정을 이끌었다. 1989년 한국분자생물학회(현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를 설립했고, 우리나라 생명과학 분야 최초의 과학기술인용색인(SCI) 등재 학술지인 'Molecules and Cells'를 창간하고 초대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퇴직 후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 대한민국학술원 부회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회장 등을 역임하며 과학기술정책 개발과 추진에 참여했다. 한국에 본부를 둔 최초의 국제기구인 국제백신연구소(IVI) 한국 유치를 주도했다. 이런 공로로 제1회 한국과학상 생명과학 분야 대통령상(1987), 대한민국학술원상(1998), 한국과학기술한림원상(2007년)을 받았고, 2021년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로 추대됐다. 사재를 출연하여 '올해의 여성생명과학자상'을 해마다 시상하고 있다.

유족은 부인 유경자(연세대 의대 명예교수)씨와 사이에 아들 박경렬(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씨, 며느리 김윤하(마드리드대 경영대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 발인 24일 오전 11시. ☎ 02-2258-5940.

※ 부고 게재 문의는 팩스 02-398-3111, 전화 02-398-3000, 카톡 okjebo, 이메일 유족 연락처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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