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폭주 일으키며 폭발하는 리튬 배터리
(대구= 윤관식 기자 = 27일 대구 서구 가드케이 대구공장에서 열린 '리튬 배터리 화재 전용 소화 장치 시연'에 앞서 원통형 리튬 배터리에 열폭주 현상을 일으키는 모습. 2024.6.27
(전국종합= 지난 24일 경기도 화성의 일차전지 공장 화재로 배터리에 대한 위험성이 새삼 확인됐지만 여전히 폐배터리가 곳곳에 방치돼 있고 이로 말미암은 화재도 잇따르고 있다.
완전히 방전되지 않은 리튬 배터리의 경우 작은 충격에도 폭발해 화재를 일으킬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 곳곳서 지뢰처럼 터지는 폐배터리
지난 18일 오후 5시께 부산 강서구 대저동의 한 폐가구 야적장에서 불이 나 지게차를 태우는 등 1시간 40여분 만에 진화됐다.
불은 폐가구 더미에 있던 리튬폴리머 배터리팩이 직사광선에 장시간 노출돼 폭발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소방 당국은 추정했다.
앞선 지난 9일에는 충남 공주시 우성면 한 고물상에서 불이 나 폐기물 600t 중 약 400t을 태우고 9시간여만에 꺼졌다.
소방 당국은 진화 인력 130여명, 헬기 4대, 장비 33대 등을 투입해 불길을 잡았으나 고무 등 각종 폐기물도 불에 타면서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화재 역시 폐기물 속에 있던 폐배터리가 손상돼 발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폐배터리를 싣고 달리던 차에서도 불이 나는 아찔한 일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4일 오후 5시 울산 북구 매곡동의 한 도로에서 폐리튬배터리를 운반하던 5t 트럭에서 갑자기 불이 나 폐배터리 5t과 트럭을 태운 후 약 3시간 30분 만에 꺼졌다.
소방 당국 조사 결과 적재 칸에 쌓여 있던 배터리 중 한 개의 분리막이 부서져 열폭주가 발생하며 발화했다.
소방 당국은 물을 뿌리는 대신 모래를 끼얹고 배터리를 임시 수조에 담가 진화했다.
폐배터리 추정 화재는 증가 추세다.
지난해 충북에선 총 6건의 폐배터리 관련 화재가 발생해 17억3천만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올해도 벌써 3건이 발생, 1억700만원의 피해가 났다.
부산도 최근 3년간 3건, 전북에서는 2020∼2023년간 8건의 폐배터리 화재가 발생하는 등 전국적으로 폐배터리로 인한 불이나 폭발 사고가 늘고 있다.
고물상 화재
[ 자료사진]
◇ 폐전지 수거량 급증…폐기물업체 대형 화재도 증가
현재 폐전지를 포함한 폐배터리는 주택이나 아파트 등에서 분리수거 방식으로 모아져 지자체와 계약한 전국 4개 재활용업체에 보내져 처리된다.
한국전지재활용협회에 따르면 2019년 3천560t, 2020년 3천824t, 2021년 4천874t, 2022년 4천495t, 2023년 5천16t 등으로 매년 폐전지와 폐배터리 수거량이 늘고 있다.
하지만 수거 과정에서 일부는 일반쓰레기 봉투에 담겨 버려지기도 한다.
쓰레기봉투를 하나하나 뜯어보기도 어려워 이렇게 개별적으로 버려진 폐배터리는 외부 환경에 노출돼 폭발 화재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렇게 분리수거돼 재활용업체에 보내지지 않고 폐기물 업체로 흘러간 폐배터리는 충격을 받거나 수분과 접촉해 화재로 이어지는 일이 빈번하다.
실제 지난해 2월 3일 밤 경북 안동시 풍천면 경북도청 신도시의 광역 폐기물 처리시설 화재로 근무자 1명이 다쳤고 시설 2천288㎡가 불에 타 18억9천만원의 피해가 났다.
당시 인력 248명과 장비 51대가 동원돼 무려 32시간 만에 불길을 잡았다.
화재 원인은 트럭에서 쏟아부은 폐기물 속에 섞인 폐배터리 폭발로 추정됐다.
지난해 6월 15일엔 대구 서구 중리동의 한 재활용 공장에서 불이 나 동원령 1호, 대응 3단계까지 발령된 끝에 9시간 만에 불길이 잡혔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공장 건물 13개 동이 탔다.
폐쇄회로TV 분석 결과 폐배터리 파쇄 작업 2시간 후 불이 나 폐배터리로 인한 화재의 가능성이 컸다.
다량의 폐기물이 쌓여있는 폐기물처리시설 특성상 한번 불이 나면 불길을 잡기 쉽지 않고 대형 화재로 연결되기 쉽다.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폐기물처리장에서 발생하는 화재 원인이 대부분 건전지나 폐배터리로 인한 것"이라며 "리모컨, 장난감 등에 들어있는 작은 건전지는 모두 분리 배출돼야 하는데 그대로 버려지면 압축되는 과정에 불이 날 수 있다"고 말했다.
폐기물 화재 진압하는 소방대원
[ 자료사진]
◇ 폐배터리는 반드시 분리 배출해야
대구과학수사연구소 조영진 이공학과장은 "원통형 배터리 등은 이동·배출·파쇄 과정에서 작은 충격으로 손상될 수 있고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며 "무분별하게 버려진 폐배터리는 일반 폐기물 업체에서 걸러지지 않아 위험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성호 전북 자치도소방본부 화재조사관은 폐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지 않았을 경우 화재 위험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폐배터리 처리 과정에서 극과 극이 접촉하거나, 폐배터리 내 음극과 양극을 나눠주는 분리막이 손상돼 화재가 날 가능성이 있다"며 "남은 전류가 없도록 폐배터리를 염수 등을 이용해 완전히 방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폐배터리 화재를 막으려면 올바른 폐배터리 배출 방법을 홍보하고 수거함 보급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남도는 따로 수거함 설치가 어려운 단독주택 밀집 지역에는 폐배터리 수거 파우치를 제공하고 있다.
대구시를 포함한 일선 지자체는 폐건전지 10개를 반납하면 종량제 봉투나 새 건전지 2개를 주는 등의 인센티브 정책을 펴고 있지만 폐배터리의 100% 수거는 쉽지 않은 현실이다.
이시정 한국전지재활용협회 사무국장은 "모든 제품에 리튬 계열 전지 사용량이 늘고 있는데 리튬 전지의 특징은 수분, 충격에 약해 화재 위험성이 높다는 점"이라며 "폐기물 화재를 막기 위해서는 가정에서 폐전지나 폐배터리를 버릴 때 반드시 분리 배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관식 장지현 정종호 이성민 정다움 나보배 이영주 김상연 김선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