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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원의 헬스노트] "소현세자의 석연찮은 죽음…법의학 관점은 타살일까?"
기사 작성일 : 2024-09-17 07:00:32

소현세자가 묻힌 소경원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길원 기자 = 조선시대 소현세자(昭顯世子.1612~1645)를 일컬어 흔히 '비운의 왕세자'라고 한다.

왕자의 신분으로 청나라에 끌려가 7년여를 인질로 생활하다 조선으로 돌아온 지 불과 3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사망 당시 왕자는 34살이었다.

인조실록에는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온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鮮血)이 흘러나오므로…(중략)…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빛을 분별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藥物)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고 기록돼 있다.

이런 소현세자의 죽음을 두고 일부에서는 독살설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독살의 주범으로는 부왕인 인조 또는 정적들이 거론된다.

그런데, 만약 소현세자에게 현대의학 중 하나인 법의학적 관점에서 사망 원인 조사가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이 같은 궁금증에서 출발해 소현세자의 죽음을 면밀히 관찰한 논문(소현세자의 독살설에 대한 의학적 고찰)이 대한법의학회지 최신호에 발표됐다.

주인공은 부검을 통해 죽은 자의 한을 풀어주는 법의학자로 잘 알려진 서울의대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 유 교수는 20여년에 걸쳐 2천여건의 사체 부검을 담당했다.

유 교수는 우선 5개의 문헌(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심양일기, 소현을유동궁일기, 심양장계)을 토대로 숨진 소현세자의 피부가 검게 변해 있었다는 기록에 주목했다.

피부색의 변화가 사망 원인을 독살로 추정하는 첫 번째 단서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피부색의 변화가 독살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봤다.

유 교수는 "그동안의 많은 부검 사례를 종합해볼 때 피부색의 변화는 독살보다는 사망 과정에서 질식 과정에 동반되는 청색증을 중독으로 인한 피부 반응으로 여겼거나, 음식에 들어있는 독을 검출하는 데 쓰였던 은수저 속 은(Ag) 성분이 다른 화학물질과 반응한 것을 두고 오해한 결과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코와 입, 귀 등에서 선혈(혈성액·bloody discharge)이 흘러나왔다는 기록에 대해서도 독살이라기보다는 시신의 부패로 인한 사후 변화의 가능성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유 교수의 분석이다.


유성호 서울의대 법의학교실 교수


[ '더건강' 제공]

그는 "사망 후 부패균의 작용으로 인한 부패 가스 압력 상승으로 혈액이 용혈하고, 혈색소가 혈관 밖으로 번지면서 코와 입 및 귀 등에서 출혈로 오인할 수 있는 부패 혈성액이 보이는 건 부검을 담당하는 의사가 흔히 경험하는 소견"이라고 했다.

소현세자 독살설의 두 번째 쟁점인 '병증 확인 후 사흘 만의 사망'에 대해서도 유 교수는 기왕증(병력)의 상태가 지속되다가 사망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는 소견을 냈다.

그는 "기록을 보면 소현세자는 귀국 전부터 비뇨기 또는 소화기, 호흡기 질환으로 추정되는 증상으로 치료받았다는 내용이 다수 확인된다"면서 "기존의 질병 증상이 지속되면서 호전과 악화를 반복했고, 이에 대한 치료를 받다가 사망한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유 교수는 최종적으로 소현세자의 직접사인으로 패혈증을, 그 선행사인으로는 폐렴일 가능성을 각각 추정했다. 또 최종 선행사인인 '원사인'으로는 자가면역질환이나 대사성 질환일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피부 변색을 동반한 코, 입, 귀 등의 혈성액 유출, 조기 부패로 추정되는 소견을 종합한다면 폐렴을 앓다가 패혈증이 온 것으로 보인다"면서 "원사인의 경우 전신증상을 동반한 지속적인 목마름, 식후 혼곤증(춘곤증) 등과 함께 조기 부패 소견을 보면 자가면역질환인 성인 발병 자가면역성 당뇨병이나 남성 쇼그렌증후군 등을 유추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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