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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희망이다] '공업도시' 울산에 정원문화 꽃피운다
기사 작성일 : 2024-10-27 08:01:14

[※편집자 주 = 지방에 터를 잡고 소중한 꿈을 일구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젊음과 패기, 열정으로 도전에 나서는 젊은이들입니다. 자신들의 고향에서, 때로는 인연이 없었던 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새로운 희망을 쓰고 있습니다. 이들 청년의 존재는 인구절벽으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사회에도 큰 힘이 됩니다. 는 지방에 살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청년들의 도전과 꿈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합니다.]


신정훈 그린컬쳐리스트 대표


[촬영 김근주]

(울산= 김근주 기자 = "밤에 우리를 웃게 만드는 것이 술이라면, 낮에 미소 짓게 만드는 것은 꽃이죠."

'그린컬쳐리스트'는 울산에서 활동하는 청년 정원문화단체다.

꽃집을 운영하는 신정훈(35) 대표를 비롯한 플로리스트, 조경기능사, 조경산업기사 등 30대 5명이 지난해 5월 비영리법인으로 시작했다.

단체를 만든 이후 3주마다 1회씩 20∼30대 젊은 층을 상대로 '원예·정원 원데이클래스'를 열어 왔는데, '힙한' 수업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경쟁률이 어마어마하다.

4명 모집에 100명이 넘게 몰리는 것은 보통이고, 많게는 1천 명 넘게 신청할 때도 있다.

수강료가 무료인 영향도 있겠지만, 단순히 꽃바구니나 부케를 만드는 것을 넘어 꽃과 식물 그리고 수강자가 어우러진 순간을 기억하도록 하는 수업 방식이 인기 비결이다.

함께 숲이나 공원을 걸으면서 주변에 자라고 있는 식물 특징과 얽힌 이야기 등을 공유하고,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도 함께 들으며 작품을 만든다.

작품 제작이 끝나면 '울산대공원 메타세쿼이아 숲길에 있는 두 번째 벤치에서 작품을 들고 사진 찍기'와 같은 구체적인 과제도 주어진다.

신 대표는 "수강생이 만든 작품과 가장 어울릴 만한 장소를 제안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들어야 할 음악을 추천하기도 한다"며 "이 과정에서 숲과 정원 속에서 보낸 그날의 분위기가 그대로 수강자에게 각인된다"고 27일 설명했다.

수강생들이 작품을 만들고 사진을 찍으면서 태화강 국가정원, 송정박상진호수공원, 울산대공원 등 울산 속 자연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이 수업의 중요한 목적이기도 하다.


신정훈 그린컬쳐리스트 대표


[촬영 김근주]

신 대표는 "수강생 중에는 혁신도시로 공공기관이 이전하면서 직장을 따라 울산에 온 청년들이 상당수다"며 "이분들이 수업을 들은 후 '이전에는 주말이면 서울로 돌아가기 바빴는데 이제는 울산 곳곳을 둘러보게 됐다'고 말해 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흐뭇해했다.

그는 "울산 하면 제조업 공장뿐이고, 타지역에서 손님들이 와도 회를 먹는 정도에 그친다는 인식이 많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울산의 아름다운 자연을 소개하는 것이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신 대표가 처음부터 정원문화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울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2008년 경남 지역 한 법대에 들어갔으나, 전공이 자신과 맞지는 않았다.

결국 1년만 다니고 군대에 다녀온 후 자퇴했다.

이후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면서 마주치는 다채로운 자연환경과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매력에 푹 빠졌다.

'여행을 더 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부모님과 함께 고깃집을 차렸다.

장사는 꽤 잘돼 월 매출 3천만∼4천만원을 올릴 정도로 바빴지만,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태화강 100리 길을 둘러보며 자연을 찾았다.

고깃집을 하면서 정신없이 보낸 시간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결국 가게 문을 닫게 된 것이다

무엇을 할지 몰랐던 그는 지역 청년들이 모이는 독서동아리에 참가하게 되고,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 정원 문화에 관심을 두게 된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가 플로리스트였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다양한 꽃과 식물로 작품을 만들고 누군가의 희로애락에 상징이 되는 일을 하는 그녀를 보면서 제가 그동안 자연 속을 여행하면서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 대표는 조경기능사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면서 동아리에서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또래들을 모았고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산업이 주류인 울산에도 아름다운 자연과 꽃, 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려보자'는 취지로 단체를 만든 것이 그린컬쳐리스트다.


그린컬쳐리스트 활동 모습


[신정훈 대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됐지만,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재료 가격이 문제다.

신 대표는 "올해 여름은 무더위가 길어지면서 꽃 가격이 3∼4배 오르기도 하고, 아예 꽃을 구할 수가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린컬쳐리스트가 울산시 '청년 활동 경험 지원 사업'에 선정돼 수업 재료비를 지원받기는 하지만, 꽃값이 폭등하면 사비를 털어 수업한다.

그는 "한 번을 하더라도 수강생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려면 좋은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신 대표의 꿈은 울산 문화유산과 결합한 대규모 정원 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그는 "대한광복회 박상진 의사 고택,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외솔 최현배 선생 생가, 충렬공 박제상 유적지, 조선시대 3대 누각으로 꼽혔던 태화루 등에 각 장소와 어울리는 정원을 꾸며 울산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일상이 꽃 한송이만으로 특별해지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라며 "울산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울산 청년들과 함께 화사하게 펼쳐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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