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 (PG)
[윤해리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세종= 이준서 송정은 기자 = 가뜩이나 저성장과 내수부진에 고전하며 트럼프발 충격에 긴장하던 한국 경제가 '탄핵 정국'이란 어두운 터널에 갇히게 됐다.
과거 노무현·박근혜 정부 탄핵정국 때에 비해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더욱 취약하다는 점에서 경제적 파장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트럼프 2기' 출범과 맞물려 보호무역주의 파도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국내 리더십 공백이 현실화한 것이어서 경제적 후폭풍 정도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당 국민의힘 불참으로 탄핵안 가결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경제 측면에서는 불확실성이라는 최대 악재가 장기화하는 결과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금융시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우려된다. 국내외 투자자들의 한국 증시 이탈을 더 부추기고, 원/달러 환율을 유례없는 고점으로 밀어 올릴 수 있다.
이미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한국 주식에 대한 투자 의견과 성장률 눈높이를 잇달아 끌어내리고 있다.
일부 IB는 탄핵 및 대통령 교체 가능성을 거론하며 자산 매도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경제관계장관회의 참석하는 최상목 부총리
신현우 기자 =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두번째)이 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최 부총리,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김완섭 환경부 장관. 2024.12.5
◇ '비상 사령탑' 중심 경제운용…예산안부터 '시계 제로'
8일 경제당국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사실상 2선으로 후퇴하면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 '비상 사령탑'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상목 부총리가 중심이 돼서 각종 필수적인 경제정책 현안을 챙기고 위기관리에 주력하는 것이다.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거나 기존 정책 기조를 변경하는 굵직한 의사결정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체로 입법 또는 예산과 맞물린 정책보다는 임시 위기 대응을 최우선 순위를 두고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탄핵 정국 전개 상황에 따라 중장기적인 정책 로드맵뿐만 아니라 내년도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도 쉽지 않을 수 있다.
당장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급선무다.
지금은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단독 감액예산안 의결을 강행하면서 여야 협상이 전면 중단된 상태이다. 그러나 이 감액안만으로 각종 사업 수요를 감당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탄핵 여론이 분출하는 상황에서 여야 간 정상적인 협상 테이블이 마련될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일각에서 준예산 시나리오를 거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준예산은 직전 회계연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까지 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할 경우 최소한의 정부 기능 유지를 위해 전년도에 준해 편성하는 예산이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정치적 긴장과 불안이 경제적으로도 파장을 일으키면서 혼돈의 경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새롭게 추진하는 사업이나 긴급 현안 대응력이 약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영업자 4명 중 3명꼴 한달에 100만원도 못벌어…
김인철 기자 = 22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텅 빈 매장앞에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지난 2022년 개인사업자 종합소득세 신고분 1천146만4천368건 가운데 860만9천18건(75.1%)이 월소득 100만원(연 1천200만원) 미만으로, 개인사업자 4명 중 3명꼴로 한 달 소득(종합소득세 신고분)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4.9.22
◇ 2016년 朴 탄핵정국 데자뷔…연말대목 지갑 닫는다
경제적 혼돈은 소비심리를 위축시키면서 영세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어려움이 한층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역대 탄핵정국에서도 내수 소비가 고꾸라지면서 직접적인 후폭풍을 맞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탄핵정국'이 시작된 2016년 10월부터 소비 지표는 낮은 증가세를 기록했다.
2016년 4분기 소매판매액(불변) 지수는 전년 동기보다 2.2%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해 1분기(4.7%), 2분기(5.5%), 3분기(3.2%)에서 큰 폭으로 둔화한 것이다.
이듬해 3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결정되면서 소비 지표는 더 꺾였다. 2017년 1~2분기 소매판매액지수는 1%대 증가율로 추락했다.
2016년 3%대를 유지했던 국내총생산(GDP) 민간소비 증가율도 탄핵정국에 들어선 4분기부터 1%대로 떨어졌다.
지난 2004년 3∼5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부터 기각까지 기간에도 소비심리는 위축됐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2004년 1분기(-0.5%)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4분기에 들어서면서 1%대를 회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 트럼프 2기 대응 급한데…정상급 경제외교 '올스톱'
무엇보다 내년 초 미국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경제외교가 사실상 중단될 상황에 관한 우려가 나온다.
우리로서는 트럼프 2기에 대응할 연말·연초 골든타임을 '계엄사태 후폭풍'에 날리게 되는 결과가 된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관련된 핵심 의제들은 대부분 정상급 외교에서 조율된다는 점에서, 탄핵정국 장기화는 향후 한국경제에 깊은 주름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 역시 초비상이다. '트럼프 리스크'에 투자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중에 탄핵정국까지 더해지면서 설상가상에 놓인 형국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달 13∼25일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조사한 결과, 국내 대기업 10곳 중 7곳가량은 내년 투자 계획을 아직 세우지 못했거나 계획이 아예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돌발적인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정국이 숨 가쁘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신규 투자계획은 고사하고 기존 계획마저 보류할 우려가 커진 셈이다.
서울대 안동현 교수는 "미국의 관세 인상에 따른 대외적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것만 해도 만만치 않은데 대내적 불확실성까지 얹힌 것"이라며 "우리 수출기업들이 교역조건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