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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과 12·3] ① 44년 만에 되살아난 악몽…트라우마 남긴 광주의밤
기사 작성일 : 2024-12-23 09:00:36

[※ 편집자 주 = 2024년 세밑 대한민국을 뒤흔든 12·3 비상계엄이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전 세계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내란죄 혐의로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정국은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는 한국 민주화의 토대를 마련한 44년 전 5·18 민주화운동의 경험과 교훈을 바탕으로 한 기사 2건을 송고합니다.]


이야기하는 이정덕 오월어머니집 사무총장


(광주= 김혜인 기자 = 지난 18일 광주 남구 양림동 오월어머니집에서 이정덕 사무총장이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024.12.19

(광주= 김혜인 기자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인간이다.", "'폭도'라는 그 공포스러웠던 눈빛만 거둬줬으면 좋겠다."

이정덕 오월어머니집 사무총장은 암으로 투병하다 2008년 세상을 등진 남편의 오랜 노트를 꺼냈다.

노트에는 남편이자 지역 대표 예술인이었던 고(故) 이강하 작가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을 자필로 적은 메모가 적혀있었다.

이 작가는 1980년 5월 광주 민중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했다가 옥고를 치렀다.

폭도가 돼 숨죽이듯 지내야 했던 삶은 지난해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으며 43년 만에 마침표를 찍었지만, 그녀와 남편에게 박힌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었다.

평생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남편을 뒷바라지했던 이 사무총장은 지난 3일 저녁 선포된 계엄 포고령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을 걷어찼던 군홧발, 광주 시민을 향해 들이댔던 총구가 서울 한복판에서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

잠을 잘 수 없었던 것은 물론, 또 누군가 폭도라는 이름으로 끌려가는 것은 아닐지 노심초사했다.

이 사무총장은 23일 "불의 앞에서 참지 못했던 남편마저 트라우마 때문인지 절대 그날의 이야기를 입 밖에 꺼내는 일이 없었다"며 "계엄이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일인 것을 알기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그날 울분이 차올랐다"고 말했다.

이어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숨어지내며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남편을 생각해 용기를 내서 집회 현장에 나갔다"고 말했다.


광주시민들, 윤석열 퇴진 촉구


(광주= 정다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이 이뤄지는 14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즉각 퇴진 광주비상행동'의 집회에서 시민들이 퇴진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12.14

12·3 사태로 비상계엄의 공포가 되살아나자 5·18을 겪지 않았던 세대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부모님과 함께 집회에 참석한 김모(25) 씨는 생중계되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둔 국회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탄핵소추안 안건을 상정하면서 "한국 민주주의는 광주에 빚졌다"는 내용의 연설이 전파를 타고 광주 금남로에 들려오자 김씨는 훌쩍거리는 어머니를 토닥였다.

김씨는 "부모님은 5·18 민주화운동 때 학생이어서 피 흘린 사람들을 보며 항상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다. 5·18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라서 그 심정을 알기가 어려웠는데 그 연설을 듣고 당시 광주시민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생각하니 덩달아 울컥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이번 비상계엄 사태는 3시간 만에 끝났지만 1980년 몇 날 며칠을 계엄군에게서 모진 일을 당했을 광주시민들의 상처가 다시 벌어지진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5·18 민주묘지 참배하는 오월단체


(광주= 정다움 기자 = 9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5·18 3단체(부상자회·공로자회·유족회), 오월어머니집 장들이 오월 영령에 참배하고 있다. 2024.12.9

실제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날부터 광주 트라우마 센터에는 정서불안, 불면증 등을 호소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980년 당시 계엄군에게서 성폭행당한 이들은 자신을 위협했던 군복과 땀 냄새까지 생각난다면서 되살아난 고통에 온몸을 떨었다.

서울 상공에 헬기가 뜨고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를 진입하는 모습을 보며 마치 시민군을 옥죄여온 계엄군을 보는 것 같아 평소보다 수면제 양을 늘리는 어르신도 있었다.

12·3 사태 이후 지난 13일까지 트라우마센터에는 방문 상담 84건, 전화 상담 42건이 접수됐다.

이미현 광주 트라우마센터 치유재활팀장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은 국가가 우리를 보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가한 상황이 굉장히 무섭고 두렵게 느껴졌을 것"이라며 "죽은 가족들이 생각나서, 고문과 구타를 당했던 기억 때문에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 상황을 재경험할수록 트라우마가 크게 일어나기 때문에 계엄 사태 이후 평소보다 많은 이들의 상담 문의가 쏟아졌다"며 "트라우마가 일어날 때는 안정을 찾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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