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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교 60년] 차별 뚫은 재일동포…방적왕·야구전설·국회의원 '우뚝'
기사 작성일 : 2025-01-02 08:00:57

(도쿄= 박성진 특파원 = 올해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일본에서 민족 차별을 뚫고 일본 사회의 당당한 주역으로 선 인물들이 눈길을 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징용되거나 가난을 견디지 못해 일본으로 건너간 동포들은 일본 사회 밑바닥에서 차별받으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각 분야에서 성공 신화를 썼다.

이들은 성공한 뒤 한국 최초 수출산업공단인 구로공단 건설을 주도했고,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15억 달러(약 2조2천억원)를 송금하는 등 조국을 잊지 않았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SBG) 회장


[교도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AI 미래 이끌어

일본 최고 부자인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 마사요시) 일본 소프트뱅크그룹(SBG) 회장은 한국에 가장 잘 알려진 교포 3세 기업인이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당선인 자택인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일본 기업인으로는 처음으로 만나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소프트뱅크그룹이 미국에 1천억 달러(147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최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손 회장은 1974년 일본에서 고교를 중퇴하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대학 졸업 뒤 귀국해 1981년 소프트웨어 유통 등을 하는 소프트뱅크를 설립했다.

소프트뱅크는 1990년대에는 인터넷 기반 사업을 하다가 2000년대 후반에는 모바일 사업에 힘을 쏟았다. 2017년 비전펀드 운용 개시 이후에는 투자사업에 주력하며 일본을 넘어 전 세계 벤처기업 생태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현재 자회사로 세계적인 반도체 설계업체 Arm(암)을 보유하고 있으며 챗GPT 개발사 오픈AI에 투자하는 등 인공지능(AI)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일본에 귀화한 손 회장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일본 성명인 야스모토 마사요시(安本正義)가 아니라 한국 성인 손(孫)을 쓰고 있다.


주일 한국대사관저 기증자 호 따서 '동명재'로 명명


(도쿄= 박성진 특파원 = 주일 한국대사관저가 대사관 부지를 정부에 기증한 고(故) 서갑호(1915∼1976) 방림방적 설립자의 아호를 따서 12일 동명재(東鳴齋)로 명명됐다. 7월 12일 일본 도쿄 주일 한국대사관저에서 열린 명명식에 참석한 윤덕민 당시 주일 한국대사(왼쪽 두번째)와 유족들이 제막 행사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7.12

◇ 소득세 납부 1위 방적왕 서갑호…주일 대사관 부지 무상 기증

일본에서 온갖 역경을 이겨낸 뒤 고국 발전을 위해 막대한 재산을 내놓는 대표 인물로는 '방적왕'으로 불린 서갑호(1915∼1976) 방림방적 설립자를 꼽을 수 있다.

고인은 1929년 14세 때 일본으로 건너와 자수성가한 입지전적 재일 사업가였다. 한때 일본에서 소득세 납부 1위를 기록했다.

일본에서 사카모토 방적을 설립했으며 1963년 한국 경제개발계획에 발맞춰 해외 동포로는 처음으로 고국에 거액의 외자를 투자해 방림방적과 윤성방적을 설립했다.

이를 통해 한국 섬유산업 발전과 수출입국 초석을 다지는 데 큰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62년 도쿄 중심지인 미나토구 미나미아자부에 있는 금싸라기 땅 8천264㎡를 한국 정부에 무상 기증했다.

이곳은 옛날부터 일본 왕실 친인척과 권력자들이 살던 곳으로 현재 부지 가치는 수천억원에 달한다.

기증 부지에는 주일 한국대사관과 대사관저가 건립됐다.


야구의 전설 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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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프로레슬링계 신화 역도산…3천 안타 '야구 전설' 장훈

스포츠계에서도 온갖 차별 속에 최정상에 올라 일본인에게 사랑받은 재일동포가 적지 않다.

1924년 함경남도에서 태어난 역도산은 일본으로 건너가 스모선수로 뛰다가 1951년 프로레슬러로 전향해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신화 같은 존재가 됐다.

역도산은 자신보다 큰 서양인들을 꺾으면서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에 패한 일본인들의 열등감을 잊게 해줬다.

1963년 사망하기까지 역도산은 생전 한반도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리지는 않았다.

일본의 국민 스포츠인 프로야구에서는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이 야구 전설로 기억된다.

장훈은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1959년∼1981년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며 일본 프로야구 최다안타 기록(3천85개)을 세웠다.

다만 장훈은 최근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몇 년 전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고 밝혔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3회 우승에 빛나는 '야구의 신' 김성근 전 SK 와이번스 감독과 아시아 유도 최강자에서 종합격투기 선수로 전향한 추성훈(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 독립유공자 고(故) 허석 선생의 후손으로 파리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인 허미미 등도 모두 재일동포 출신 스포츠 스타이다.


허미미, 올림픽 메달 들고 활짝


(대구= 박세진 기자 = 2024 파리올림픽 유도 여자 57kg급에서 은메달, 혼성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딴 허미미 선수가 8월 6일 오전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수리에 조성된 독립운동가이자 현조부인 허석 지사의 기적비를 찾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4.8.6

◇ 재일동포라고 밝히고 국회의원 당선된 백진훈

일본에서 재일동포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지만 가장 진입 장벽이 높은 분야 중 하나는 정치를 들 수 있다.

이 벽을 넘은 대표 인물이 민주당 전 참의원(상원) 의원을 지낸 백진훈(白眞勳·일본명 하쿠 신쿤)이다.

백 전 의원은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재일동포 2세 출신으로 일본 국적을 취득한 뒤 2004년 민주당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그는 당시 이례적으로 선거 포스터에 '아버지는 한국인, 어머니는 일본인'이라고 밝혔다.

이후 2010년과 2016년 선거에서 연속으로 당선됐고 대북 정책과 해방 후 여전히 일본에 남아 있는 한국인 유골 수습 문제 등에 관심을 두고 의정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2022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낙선했다.

다른 한국계 일본인 국회의원으로는 대장성 관료 출신인 아라이 쇼케이가 자민당 중의원(하원) 의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백진훈 전 일본 참의원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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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친코 업계 평정한 정동필·한창우…재일교포 기업, 골프장도 천하통일

재일동포들은 국적 문제로 평범한 일본인이 선호하는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공무원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막히면서 파친코 사업이나 야키니쿠(한국식 불고기) 식당 등 자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많았다.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 속 인물처럼 파친코 일을 하면서 큰 부를 일군 대표적인 인물은 헤이와(平和)의 정동필(일본 이름 나카지마 겐키치·1921~2012) 회장과 마루한그룹의 한창우 회장을 들 수 있다.

정 회장이 세운 헤이와는 파친코에서 골프업계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헤이와는 148개의 골프장을 가진 일본 2위 골프장 운영사 PGM을 자회사로 두고 있으며 지난달 173개 골프장을 운영하는 최대 골프장 운영사인 아코디아 골프를 5천100억엔(약 4조8천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주식 취득은 이달 말 완료될 예정으로 성사되면 세계 최대 골프장 운영사가 탄생한다.

이밖에 문화계에서는 영화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피와 뼈' 등 재일동포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낸 재 최양일 감독과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소설가 유미리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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