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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도시와 함께 숨 쉬는 수원화성
기사 작성일 : 2025-01-15 10:01:16


수원화성 설경 [사진/조보희 기자]

(수원= 김정선 기자 = 오랜 역사를 지닌 문화유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아 친숙함을 준다.

그 때문인지 가까운 곳에 있어도 오히려 큰마음을 먹어야 방문하게 되기도 한다.

새해를 맞아 웅장한 문화유산이 보고 싶어져 발걸음을 옮겼다.

◇ 설레는 여정의 시작



도심에 있는 장안문 [사진/조보희 기자]

경기도 수원이라고 하면 상징물처럼 떠올려지는 곳이 있다.

조선시대 성곽의 꽃으로 불리는 수원화성이다.

이곳은 정조의 재위 기간 중인 1794~1796년 조성됐다.

정조의 효심이 바탕이 됐고, 그의 꿈과 이상이 담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총길이 5.7㎞의 성곽에는 4개의 성문과 여러 방어시설 등 견고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 갖춰져 있다.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필자는 차를 타고 수원 시내를 지나가다가 본 적은 있어도 직접 성곽을 걸어본 적은 없었다.

사도세자가 묻힌 융릉은 2023년 연말 다녀온 적이 있다.

화려하고 섬세한 왕릉을 보고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정조의 효심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당대 계획한 신도시의 모습은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이번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이동한 뒤 기차를 타고 수원역에 도착했다.

역 내부에는 '사통팔달 정조의 꿈 수원역'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명실상부한 수도권 교통중심이라는 설명에 머리를 끄덕였다.

근처 정류장을 찾아 13번 시내버스를 탔다.

15분 정도 걸려 관공서, 팔달문, 화성행궁 정류장 등을 지나 장안문 근처에 도착했다.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시내 풍경은 수원화성 건축물들이 도시의 중심을 이루는 듯한 느낌이었다.

◇ 도시 속에서 빛나는 세계유산



용연과 동북각루 [사진/조보희 기자]

이곳에서 하차한 이유는 수원화성을 출입하는 동서남북 4개의 주요 관문 중 장안문이 정문이라는 설명글을 미리 읽고 왔기 때문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장안문으로 이동했다.

문을 보자마자 입이 벌어졌다.

겉모습은 웅장했고 들어가 보니 화려하다는 인상도 받았다.

문밖에는 반원형의 옹성이 둘러싸고 있었고, 그 앞을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수원화성의 다른 관문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을 지나고 성곽을 따라 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전부터 그래왔다는 듯 사람들과 성곽 사이에 괴리감이 없어 보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을 때 장안문과 인근 성밖 연못 '용연'의 풍경도 함께 눈에 들어왔던지라 연못 근처로 갔다. 땅에는 최근 내린 눈이 쌓여있고 나무에는 아직 잎이 남아있었다.

그 뒤로 높고 낮은 성곽이 길게 이어져 있고 곳곳에 파란색 깃발이 걸렸다.

여기까지 봤을 뿐인데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성곽을 따라 걷다



봉화 연기를 올려 신호를 보내는 봉돈 [사진/조보희 기자]

용연 주변에선 폭설로 부러진 굵은 나뭇가지를 정리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현장을 보고 나니 이 지역의 폭설 피해가 걱정됐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하고 둥그런 윤곽이 예뻐 보이는 북암문으로 들어갔다.

북암문은 화성 북쪽에 있는 비상 출입문이다.

암문은 후미진 곳에 설치해 적이 모르게 출입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던 문이라고 한다.

이곳을 지나니 동북쪽 감시용 시설인 동북각루가 보였다.

별칭은 방화수류정이다.

그 앞에서 화가 1명이 캔버스에 눈 쌓인 방화수류정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뒤에서 바라보니 그러한 풍경 자체가 그림 같았다.

방화수류정 옆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용연이 보였다.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많이 쓰였다는 안내판 설명이 바로 이해가 됐다.

좀 더 걸으면 동북쪽 망루인 동북공심돈이 나온다.

원통형의 3층 벽돌 건물인데, 주변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시설이라고 한다.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墩臺)라는 뜻이다.

창룡문 쪽에 다다르니 근처에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눈사람이 보여 미소가 지어졌다.

수원화성에는 관광안내소가 여러 곳 설치돼 있다.

인근에 있는 안내소에 들어갔다.

문화관광해설사가 유명한 건축물만 보지 말고, 시간을 들여 성곽을 따라 찬찬히 걸어볼 것을 권했다.

또한, 성 안쪽으로만 걷지 말고 때로는 성문 밖으로 나가 걸어보면 또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당일치기 여행으로 왔는데, 봐야 할 것과 보고 싶은 것들이 갑자기 많아진 느낌이었다.

근처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봉화 연기를 올려 신호를 보내는 봉돈, 태극 무늬가 그려진 동남각루의 외양도 인상적이었다.

동남각루를 지나니 아래쪽에 남수문(南水門)이 보였다.

◇ 사람들 옆에 있는 수원화성



팔달문의 입체적인 모습 [사진/조보희 기자]

남수문을 지나자 팔달문 이정표는 나오는데, 성벽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길을 헤매는 사이에 이색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왼쪽을 바라보면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남수문과 동남각루가 보였고, 중간에 상가 건물들을 지나면 오른쪽에는 순대로 유명한 '지동시장' 현판이 보였다.

두 개의 풍경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자 과거와 현재가 함께 있는 것 같았다.

팔달문 방향으로 걷는 동안 수원 남문시장이라고 적힌 안내판을 봤다.

남문시장은 지동시장을 포함해 인근 9개 시장으로 이뤄져 있다.

시장에선 도넛, 떡, 뻥튀기 등 주전부리에 눈길이 갔다. 잠시 후, 오전에 버스를 타고 지나쳤던 팔달문이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위용이 느껴졌다.

근처에 있는 팔달문 관광안내소에 이르자 길 건너편에 '미복원 서쪽 성벽'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보였다.

안내판에는 "1920년대 도로를 넓히기 위해 팔달문 좌우 성벽이 철거되면서 사라졌다"고 적혔다.

필자가 손에 쥐고 다닌 수원화성 팸플릿을 찾아보니 남문시장에 관해선 "220년 전통을 자랑하는 왕이 만든 시장"이라고 소개돼 있다.

관광안내소 인근 오르막길에 다시 성벽이 보였다.



늠름한 화성장대 [사진/조보희 기자]

올라가는 동안 폭설 여파로 부러진 듯한 나뭇가지가 몇군데 보였다.

좀 더 평탄한 길을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길을 내려갔다.

도중에 깔끔한 산책로가 보여 따라가니 고대하던 서장대(화성장대) 안내판이 나왔다.

경사가 심한 데크 길을 헉헉거리며 올라가자 늠름한 건축물이 풍채 좋게 서 있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는 군사 지휘소다.

정조가 썼다는 화성장대 현판이 걸려 있다.

원본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수원 시내가 저 멀리까지 보였다.

이제 내리막길을 지나니 비교적 간결한 느낌의 화서문과 유연한 곡선의 옹성이 나왔다.

성벽이 꺾이는 곳에는 서북공심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출발점이었던 장안문으로 돌아왔다.

◇ 찾아보는 문화유산의 묘미



유네스코 세계유산 화성 표지석 [사진/조보희 기자]

수원화성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며 파손됐지만 '화성성역의궤'에 따라 보수, 복원됐다.

현장에 가보니 이러한 설명에 머리가 끄덕여졌다.

정조가 행차할 때 머물렀던 화성행궁 역시 일제강점기 이후 제모습을 대부분 잃었지만, 복원공사를 거쳐 2003년 일반에 공개됐다.

눈 내린 직후의 수원화성은 고요한 이미지였다.

눈이 그쳤을 때는 건축미가 돋보였다.

방어시설의 기능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석축 위 담에 있는 구멍만 해도 수평으로 보여 먼 곳을 향할 수 있는 원총안, 아래쪽으로 뚫려 가까운 적을 공격할 수 있다는 근총안으로 나뉜다.

웅장한 문화유산을 찾아본 이후에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건축물과 용어 등에 대해 천천히 알아가는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 기사는 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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