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에 붙들려 있다가 풀려나는 이스라엘인 인질들
(칸유니스 AP= 30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에서 무장정파 하마스에 붙들려 있던 이스라엘인 인질 가디 모셰 모제스 등이 적십자에 인도되는 모습 2025.1.30
황철환 기자 =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인 인질 석방을 조직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한 일종의 '쇼'로 활용하면서 가뜩이나 위태롭던 양측의 휴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마스는 임시 휴전 발효로부터 12일째인 30일(현지시간) 세 번째 인질 교환에 나섰다.
이스라엘 여군 아감 베르거(19)와 민간인인 아르벨 예후드(29·여), 가디 모셰 모제스(80·남) 등 이스라엘인 3명과 태국인 5명을 풀어주고, 이스라엘 감옥에 있던 팔레스타인인 수감자 110명을 돌려받은 것이다.
문제는 석방을 앞두고 이스라엘 입장에선 모욕적일 수밖에 없는 정치적 퍼포먼스가 진행됐다는 점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예후드와 모제스 등 이스라엘 민간인 두 명이 풀려난 장소는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공격을 주도해 전쟁에 불을 붙인 하마스 전 최고지도자 야히야 신와르의 집 앞이었다.
하마스는 이들을 태워 이스라엘로 갈 적십자 차량도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배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장이라도 공격해 올 것 같은 기세의 군중에 둘러싸인 두 인질은 한참 뒤에야 간신히 귀환길에 오를 수 있었다.
군인 신분인 베르거는 이와 별개로 가자 전쟁 최대 격전지 중 한 곳인 자발리야 난민촌으로 끌려가 이스라엘을 겨냥한 선전전에도 이용됐다.
자발리야 난민촌에 마련된 무대에 오른 이스라엘 여군 아감 베르거
(자발리야 UPI= 30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붙들려 있던 인질 중 한 명인 이스라엘 여군 아감 베르거가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 난민촌에 마련된 무대에 올라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2025.1.30
하마스는 그를 폐허가 된 자발리야 난민촌 한가운데에서 풀어줬다.
주변 건물에는 거대한 팔레스타인 국기와 함께 '자발리야는 기바티(이스라엘 정예 보병여단의 이름)의 무덤'이란 현수막이 내걸렸고, 마스크를 쓴 카메라맨은 베르거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라고 지시했다.
하마스는 이후 배포한 성명에서 인질을 같은 날 두 차례로 나누어 석방한 까닭에 대해 "전 세계에 우리 민족이 우리의 땅에 남아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서 "엄청나게 많은 팔레스타인인이 나온 건 결의와 힘, 저항의 메시지"라고 주장했다.
하마스 측은 지난 19일 첫 인질 석방 당시에도 주변 인파를 통제하지 않아 여성 인질들이 몰려든 군중을 피해 달아나듯 차에 오르는 모습을 연출했다. 25일 2차로 여군 4명을 풀어줬을 때는 군복 느낌의 녹색 옷을 입히고 무대에 올라 웃으며 손을 흔들게 했다.
이처럼 하마스 측의 인질 석방 '쇼'가 갈수록 도발적인 양상으로 전개되는 건 하마스가 벌인 전쟁으로 1년여간 막대한 고통을 겪고도 가자지구 주민들이 여전히 하마스를 지지한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목적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야유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둘러싸인채 풀려나는 인질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졸이는 이스라엘인들
(텔아비브 UPI= 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 시내에 마련된 이른바 '인질 광장'에서 중계 영상을 통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붙들려 있던 인질들이 석방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스라엘인들. 2025.1.30
가자지구에서 병력을 물렸기에 즉각 대응할 방안이 없는 이스라엘은 인질을 구경거리로 삼는 하마스의 행태에 격분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30일 예후드, 베르거 등과 교환할 예정이던 팔레스타인 수감자 110명의 석방을 유보했다가 미국을 비롯한 중재국의 설득을 받아들여 석방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때 이스라엘 군정보기관을 이끌었던 요시 쿠퍼르바서는 "모두가 그들이 인질을 대하는 무례한 방식을 지켜보고 있다"면서 이러한 행태가 하마스에 역풍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소멸을 목표로 하는 하마스는 물론 이들을 지지하는 팔레스타인인과의 공존도 불가능하다며 전쟁 재개를 주장하는 이스라엘내 극우진영의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릴 수 있어서다.
6주간의 휴전에 합의한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내달 3일부터 영구적인 휴전에 들어갈지를 놓고 협상에 들어간다. 쿠퍼르바서는 "지금은 매우 취약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