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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하늘이법, 또 이름이 법이 된다
기사 작성일 : 2025-02-13 17:00:38

추모객 마음이 눈비에 젖지 않게[ 자료사진]


대전 초등학생 피살사건이 발생한 학교 정문에 12일 오전 추모객들이 놓고 간 꽃과 편지 위에 우산이 씌워져 있다.

최재석 선임기자 = 정부가 12일 정신 질환을 앓던 교사가 살해한 대전 초등학생 김하늘양의 이름을 딴 '하늘이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정신건강 문제로 직무 수행이 어려운 교사에 대해 일정한 절차를 거쳐 직권 휴직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겠다는 것이다. 여야 정치권도 하늘이법 제정에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앞서 김 양의 아버지는 언론 인터뷰에서 "앞으로 제2의 하늘이가 나오지 않도록 정부가 하늘이법을 만들어 심신미약 교사들이 치료받을 수 있게, 하교하는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부에서는 하늘이법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신속히 대책을 마련하는 데 치우쳐 졸속 처방을 하거나 다수의 교사를 선의의 피해자로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그동안 대중이 크게 분노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근본적인 대책을 차분히 논의하기보다는 눈에 띄는 문제만을 건드리는 입법을 시간에 쫓기듯이 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교사의 정신건강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 대책이 주로 논의되고 학교 돌봄교실의 안전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난 듯하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돌봄교실을 대폭 확충하면서도 학생들의 안전 귀가를 보장할 만한 규정 마련이나 인력 보강에는 소홀했다.

2018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정신과 임세원 교수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환자가 흉기를 들고 진료실로 찾아가 의사를 살해한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당시 사건 며칠 후 고인의 절친을 통한 유가족의 입장 표명이 있었는데 지금도 감동으로 남아있다. 유족은 "임세원 의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의료진의 안전이 지켜지고,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적절한 정신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런 '안전한 진료 환경과 정신건강 치료 지원' 당부가 발판이 돼 사건 발생 7일 만에 발의된 '임세원법'이 제정됐다.

우리 사회에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법이 너무나 많다. '김용균법' '태완이법' '구하라법' '민식이법' '사랑이법' '종현이법' 등 두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로 계속 생기고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타인의 이름에 많은 빚을 지고 살고 있는 셈이다. 하늘이양 사건을 비극으로만 끝내지 말아 달라는 게 유족들의 바람이다. 여덟살 짧은 생을 마감한 하늘이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우리 사회의 몫이다. 심신미약 교사들이 적절한 때 적절한 치료를 받고, 학생들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있는 법과 제도가 하루빨리 만들어져야 한다.

"한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법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기억되지 않은 수많은 이름들이 있었다"(책「이름이 법이 될 때」)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 국민으로부터 입법 권한을 위임받은 국회의 책임이 무겁다. 정치권은 여론을 등에 입은 반짝 관심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하늘이 덕분에 학생들이 더 안전해졌다'는 이야기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물론 우리 사회가 또다시 한 이름에 빚을 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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