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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좌)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혜림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이 미국과 러시아의 주도로 급속히 전개되고 있다.
미국은 이번 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러시아와 고위급 회담을 연다고 밝히면서 종전안 도출을 위한 본격적인 실무 협상을 예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이르면 이달 말 열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가 배제되는 듯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유럽 등 주변국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16일(현지시간) 폭스뉴스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백악관 중동특사,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러시아 측과의 회담을 위해 이날 밤 사우디 방문길에 오른다.
이들은 사우디에서 현재 중동 지역을 방문 중인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소식통 2명을 인용해 미국과 러시아 당국자들의 회담이 오는 18일에 열린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측 참석자 면면이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한 소식통은 이 매체에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번 고위급 회담은 지난 12일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통화를 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에 즉각 착수하기로 합의한 것의 후속 조치다
이번 논의에서 어느 정도 성과가 도출될 경우, 이르면 이달 말 양국의 정상 회담이 개최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푸틴 대통령과 회담 시점에 대해 "시간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조만간(very soon)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면 논의에서 양측은 종전의 세부 조건들을 조율할 예정이다.
일단 미국 측이 생각하는 대략적인 청사진은 트럼프 대통령과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을 통해 일부 공개된 바 있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차단하고, 미국을 제외한 다국적군의 주둔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전후(戰後)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미국은 2014년 러시아가 병합한 크림반도 등 일부 영토를 포기할 것을 우크라이나에 압박할 수 있단 점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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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모습
[AP=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이같은 구상은 우크라이나보다는 러시아의 입장을 유리하게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러시아가 조 바이든 전임 미 행정부 때와는 달리 협상에 적극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러의 이번 논의에서는 껄끄러운 쟁점들도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각에선 이번 협상이 원유 생산 이슈와 연계돼 진행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달 23일 다보스 포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이 늦어지는 탓 중 하나로 고유가를 꼽으며, 사우디를 비롯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유가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원유 수출이 러시아의 주요 수입원인 만큼, 가격을 억제해 타격을 주면 러시아가 종전 협상에 응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이와 관련, 로이터 통신은 이 이슈가 "잠재적인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러시아 지원을 위해 파병된 북한군 철수 문제가 이번 회담에서 논의될지 역시 주목된다.
이런 가운데 이번 고위급 회담에서 우크라이나가 배제되면서 '불공정' 종전안에 대한 우려는 더욱 증폭하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는 자국이 이번 회담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텔레그램에 올린 글을 통해 "지금까지 진행된 회담도, 계획된 회담도 없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방영된 미 N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그 누구도 푸틴을 믿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종전 논의에서 사실상 배제된 유럽도 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유럽은 러시아에 유리한 조건으로 전쟁이 봉합될 경우 향후 역내 안보 위협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이를 경계해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7일 파리에서 영국·독일·이탈리아·폴란드 등 유럽 주요국 정상들과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이 참석하는 비공식 긴급회의를 열기로 했다.
유럽의 우려를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종전을 위한 대화에 젤렌스키 대통령도 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어느 시점에 어떻게 협상에 참여할지, 우크라이나의 목소리를 얼마나 반영할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NYT는 이번 고위급 회담이 예비적인 성격을 띠지만, 적어도 현재로서는 러시아와만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를 보여주는 듯하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