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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협상 배제에 속타는 유럽 '최후수단' 우크라 파병안 고민
기사 작성일 : 2025-02-18 12:01:02


속타는 유럽…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AFP . 재판매 및 DB 금지]

장재은 기자 =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커진 유럽이 최악 시나리오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에 유리한 조건으로 전쟁이 끝나면서 직면할 안보 위기에 미국 없이 대처할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지만 국가간 견해차가 커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럽 주요국 정상들의 비공식 회동에서는 구체적이지 않지만 일단 우크라이나 파병안이 거론됐다.

이는 우크라이나전 종식 후 러시아의 재침공을 막기 위해 유럽이 미국의 외면 속에 독자적으로 꺼내 들 수 있는 궁극적 안전보장책이다.

이 같은 최후 수단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우크라이나 종전과 연계돼 유럽에 닥칠 수 있는 안보위기가 심각하다는 점을 방증한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을 비롯한 유럽 주요국들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위협을 일차적으로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해왔다.

그 때문에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유럽의 안보위기로 규정해 그동안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러시아에 경제적 제재를 가했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유리한 조건으로 러시아 침공을 선방하고 러시아에 외국 주권침해 책임을 호되게 묻는다는 희망이 반영된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구상은 대러시아 전략을 주도하던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서 바로 백지화했다.

친러시아 성향을 지닌 트럼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종전을 위한 사실상 양자담판을 예고했다.

그 과정에서 유럽뿐만 아니라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마저 협상에 목소리를 내지 못할 위기에 몰렸다.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들은 전날 뮌헨안보회의에서 유럽 당국자들에게 우크라이나 종전협상에서 유럽의 직접적인 역할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8일로 예정된 미국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종전협상을 미국에서 통보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친러시아 성향을 지닌 데다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같은 독재자에 대한 선망까지 내비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유럽으로서는 전후 우크라이나 논의에서 배제돼 우크라이나에 극도로 불리한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결국 파병안을 꺼내들게 됐다.

우크라이나가 최선으로 여기던 종전 후 안전보장책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가입이었다.

회원국 하나가 공격당하면 전체가 공격당한 것으로 간주해 대응하는 나토의 집단방위 체제에 편입하면 러시아 재침공이 예방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집단방위 약속도 주저해 나토 동맹국이 공격받아도 방관한다는 입장까지 내비쳤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이 꺼내든 평화유지군 파병안은 우크라이나에 나토 병력이 주둔해 러시아 재침공시 자동 참전하는 인계철선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유럽 각국의 견해차가 큰 것으로 전해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파리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어떤 안전보장책을 제공할지 구체적으로 이뤄진 논의가 거의 없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덴마크, 폴란드 등 8개국은 유럽의 방위비 증액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의견을 함께했다.

그러나 평화유지군 파병을 두고 영국, 프랑스, 스웨덴이 찬성하고 독일, 폴란드가 반대해 패가 갈렸다.

WSJ은 막후 논의에서 인계철선 역할이 너무 위험하다며 주둔군의 역할이 우크라이나군 훈련 정도로 제한되는 게 적절하다는 주장도 있었다고 전했다.

유럽을 주도하는 독일과 프랑스 정세가 혼탁하다는 점도 파병안 논의가 차질을 빚는 원인으로 꼽힌다.

올라프 숄츠 총리의 독일 사회민주당 정권은 23일 총선에서 퇴진이 유력하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작년 7월 조기총선에서 참패해 레임덕이다.



유럽 내 나토 병력 [EPA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우여곡절 끝에 결국 유럽군이 파병된다고 하더라도 그 규모가 얼마나 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간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억제에 20만명 정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더타임스는 이는 투입에 대기하는 20만명, 업무 후 회복 병력 20만명을 포함해 60만 대군이 운용돼야 한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럽국들의 저조한 병력 투자를 고려할 때 젤렌스키 대통령이 원하는 수치를 유럽이 맞춰낼 가능성은 없다고 지적했다.

싱크탱크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매슈 사빌 군사과학 국장은 가디언 인터뷰에서 재침공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병력을 10만∼15만명으로 추산했다.

사빌은 미국 없이 유럽에서 그런 병력을 공급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며 전선 일부에 수만명을 투입해 인계철선을 구축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현재로서는 상황은 불확실하다.

유럽이 어느 규모의 병력을 파견할지는 둘째치고 러시아가 종전협상에서 유럽군의 우크라이나 주둔 자체를 거부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결국 유럽 주요국 정상회의의 공감대는 종전 후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안전보장은 미국 없이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미국의 안전보장이 러시아의 재침공을 효과적으로 막을 유일한 방안"이라며 정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요국 정상들은 미국의 지원 수준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안전보장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는 원칙적 입장만 재확인한 채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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