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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대 교수, '참의사' 악플에 "할말 못하면 그게 지식인인가"
기사 작성일 : 2025-02-19 07:00:35

김재현 선임기자 = 의대증원이 불러온 의료계 파업사태 1년을 맞아 공공의료 전문가인 권용진(55) 서울대 의대 교수를 찾아갔다. 권 교수는 집단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을 향해 SNS에 "의사로서 직업윤리, 전공의로서 스승에 대한 예의, 근로자로서 의무를 고려할 때 성급한 행동"이라며 복귀를 촉구하는 글을 올렸던 인물. 그의 거침 없는 '쓴소리'에 국민들은 "이 시대의 진정한 의사"라며 박수를 보냈지만, 동료 의사집단에선 "참의사 나셨네"라는 조롱이 이어졌다. 할 말을 한 죄로 그 무섭다는 블랙리스트의 한편에 이름을 올렸는데도 권 교수는 "선생으로서 할 일을 한 것"이라며 더 단단해진 모습을 보였다. 의사들의 행태에 분노하다 이제는 체념 상태에 빠진 국민의 심정을 대변해 날 선 질문을 던졌지만, 권 교수의 답변은 의외로 솔직했고 거침이 없었다.


전공의 집단행동 중단 촉구 손팻말 든 의료인


김성민 기자 =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서울대병원분회가 27일 개최한 '공공병원 및 의대정원 확대 요구 기자회견'에서 한 의료인이 전공의 집단행동 중단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4.2.27

-- 1년 전 전공의들에게 돌아오라 호소했지만, 아직도 반응이 없다.

▲ 돌아올 때라는 표현은 이젠 적절하지 않다. 돌아올 사람은 눈치 보지 말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결국 자신이 선택할 일이다.

-- 그동안 욕 많이 먹었는데 상처받지 않았나.

▲ 전공의들 사이에서 악평이 좀 있더라. 의료계 일 하다 보면 욕하는 사람은 늘 있는데,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의협에서 일했던 선배로서, 선생으로서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지식인이라 하면서 악플이 두려워서 할 말 못하면 그게 지식인인가. 지식인인 척도 하지 말아야지.

--의사집단은 왜 국민들과 타협하지 않고 반발만 하나.

▲ 급속성장의 후유증이다. 그 정점에 교육과 의료 문제가 있는데, 둘이 복합적으로 꼬여 문제 해결을 막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공공재 성격을 띤 전문직이라면 의사, 법조인, 교수, 언론인 정도인데, 대부분 급속성장 과정에서 내부 질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도덕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 법조와 대학, 언론은 전면 개방된 지 오래다. 의사만 유일하게 경쟁을 거부하고 있으니 국민이 납득하지 못한다.

▲ 다른 전문직들은 환자가 없지 않나. 의사 앞에 한 줄로 쭉 늘어선 환자들이 있기에 의사집단이 끝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의사집단 내부가 질 관리에 실패하고 전공별, 직역별 수익 불균형도 심화되면서 직업윤리에 위배되는 것들까지도 서로 눈감고 봐주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 의사들이 돈을 너무 밝힌다는 게 국민 인식이다.

▲ 너무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의사들이 돈을 안 밝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사 집단 스스로 제도적으로 직업윤리를 강화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 한국엔 의료행위 리스트라는 것 자체가 없다. 정부가 건강보험에서 주는 급여 리스트가 있을 뿐이다. 가령 '마늘 주사가 효과 있다, 없다' 이런 걸 정하려면 의료계가 연구를 해서 증명해야 하는데, 정부는 그런 걸 의료계에 맡길 뜻이 없다. 마늘주사를 원가에 200%, 300% 더 올려 받고 놔주는데 관리할 방법이 없는데도 말이다.

--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 정부가 동네 의원 수가의 협상 파트너를 의협으로, 병원 수가 협상 파트너를 병원협회로 정해놔서 안 된다. 그래서 의원협회를 만들어 달라고 20년 전부터 복지부에 얘기하고 있다.

-- 정부는 왜 안들어주나.

▲ 지금처럼 관리하는 게 편하니까 안 들어주는 것이다. 관료들이 자기들의 권한을 내려놓고 싶겠나. 필요한 조직은 안 늘리고 불필요한 조직은 계속 늘리고 있다. 왜 그러겠는가? 내부 정치 논리다. 의약품과 의료기, 임상 결과를 다루는 식약처만 봐도 의사 출신 공무원이 없다. 개혁이 되겠는가.

-- 정치권에 요구하면 되지 않나.

▲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요구하는데 들어주지 않는다. 국회의원 되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이 동네 약사들 무시할 수 있나. 정치권이 약사들에게 포섭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나마 포섭되지 않았던 사람이었는데 복지부에 포섭돼버렸다.


서울의대 권용진 교수


-- 정부가 뭐라고 변명해도 필수의료 문제를 증원과 경쟁으로 풀려는 의도가 보인다. 피부미용 시장을 포화상태로 만드는 게 해법이 될 수 있을까?

▲ 시장이 포화되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건 경제학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의료에서의 공급 확대는 또 다른 오남용을 낳고 비급여를 만들 것이다. 의사는 얼마든지 검사를 할 수 있고 한 번 올 사람 두 번 오라고 할 수 있다. 공급을 늘려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면 오만가지 이상한 의료행위들이 생겨나 보편화될 것이다.

-- 정부와 정치권에선 지방에 의사 수를 대폭 늘리자는 입장인데.

▲ 대구를 예로 들면 대학병원만 5개 있다. 저출산으로 선천성 심장병 환자가 줄었으면 심장센터를 하나로 합쳐 일을 같이 하도록 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나. 나는 전북대를 나와 누구보다 지방 의료 문제에 밝다고 생각한다. 환자 수요가 없어지는 판에 지방 국립대 병원을 확충해 서울대병원 수준으로 늘리겠다니 어이가 없다.

-- 지방에 공공의대 신설, 공공병원 확충에는 어떤 의견인가.

▲ 그것은 기본적으로 민주당 식 (지역균형) 발상이다. 이제는 여야 할 것 없이 그렇게 하고 있다. 지역 국회의원들이 표를 얻으려고 '우리도 의대 하나 만들자', 이런 수준의 요구를 하는 것 아닌가. 포퓰리즘이 이것뿐인가. 보훈병원, 경찰병원, 군병원, 원자력병원 등 공공병원이 몇십 개가 있다. 그들이 어떤 기능을 하고 얼마나 돈을 잡아먹는지 한번 보길 바란다. 국가가 공공병원이 없어서 필수의료 역할을 못 하는 건지 돈을 허튼 데 쓰고 있는 건지 금방 알 수 있다. 정치권이 얼토당토않은 공약을 만들며 포퓰리즘으로 여론을 만드니 정부도 어려운 일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 차라리 필수의료 전담대학을 만드는 건 어떤가.

▲ 의사들의 웰빙 풍조를 고려해 국군 의무사관학교를 만들자는 게 내 소신이다. 군인의 건강과 국방 의료는 국가의 기본 의무이기도 하다. 학생들에게 군인과 의사로서 사명감을 심어주고 유학 기회를 부여하는 등 질 관리를 잘하면 국가 안보와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 국방의대 설립은 의사들이 20년 넘게 반대하는 정책이다. 기껏 예산 들여 키워놓으면 개원의로 빠지는 의무장교가 많다.

▲ 의무사관학교 설립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지금도 군의관 인력도 모자란 상태다. 더구나 의대생의 절반가량이 여자라서 여차하면 그들도 군의관으로 가야할 수도 있다. 의무사관학교를 만들면 학생들도 군의관 안 가도 되니 굳이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현행 의대 구조가 유지되는 한 필수의 양성은 어렵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의대 학생들에게 강의 중인 권용진 교수


[서울의대 권용진 교수 제공.무단배포 금지]

-- 필수의료 기피는 의사들의 웰빙 풍조 탓도 크다는데, 교단에서 보면 어떤가.

▲ 대학은 꿈을 이루기 위해 가는 곳인데, 의대는 진학 자체가 꿈이 됐다. 우리 교육 제도가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어놨다. 서울대 병원에 들어온 명문대 출신 직원들한테 앞으로 꿈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서울대 취직으로 꿈을 이뤘다고 하더라.

-- 돈이 최고라지만 의사라면 달라야 한다는 게 국민들의 생각이다.

▲ 부모들이 내 자식 의대 보내려고 초등학교 때부터 과외시켰다. 자식이 의대 가서 편하게 살기 바라는 부모 마음이 잘못됐다고 할 수 있겠나. 지금도 자기 자식 의대 보내려고 과외시키는 사람이 수천, 수만명이다. 어떤 수험생 학부모가 의대생 학부모를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다 큰 의대생에게 학부모 단체가 있더라.

▲ 스무살 넘은 대학생이라면 자기 인생을 자기가 결정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의대생 부모 모임이라고 (시위에) 나타나 정말 깜짝 놀랐다. 그 엄마들은 아이들이 결혼할 때까지도 쫓아다닐 거라 한다. 이상한 현상이지만, 대한민국의 자화상, 우리 사회의 단면으로 봐야 한다.

-- 미국에선 의사 소질과 사명감을 가진 아이들을 잘도 뽑던데 왜 안 되나.

▲ 의학 교육이 정상화되려면 학생 선발이 가장 중요하지만, 입시제도가 가로막고 있다. 성적으로 안 뽑으면 학부모들이 몰려나와 난리치지 않겠나. 수능 점수 하나 갖고 모든 인생이 판가름 나는 세상이다.

-- 그래도 교수들에게 사람 볼 안목이 있을 텐데.

▲ 부모들이 어릴 적 봉사활동부터 자식들의 스펙을 쫙 만들어 놓는다. 서울대에선 그런 걸 걸러내기 위해 '멀티플 미니 인터뷰'라고 윤리의식을 보는 테스트를 실시하는데, 심지어 그런 것에도 과외가 있다고 한다.

-- 의학전문대학원 제도를 다시 활성화하는 것은 어떤가.

▲ 의전원 제도를 의과대학으로 돌리자고 할 때 의대학장협의회 사무총장으로서 그 일에 앞장선 사람이다. 전공과 직역별로 의대생을 뽑아 다양성을 제고하려는 의도였는데,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의전원 합격을 노리고 자연계 관련 학과에 진학하는 사람 수만 늘렸다.

-- 의전원이 사교육을 크게 줄이는 효과는 있지 않았나.

▲ 이공계 교육이 황폐해졌다. 의전원 학생 성적을 봐도 특출나게 뛰어난 애들이 없고 다 고만고만했다. 그들이 졸업하고 어디 가나 봤더니 대부분 필수 의료는 안 하고 편한 쪽으로 가더라. 피부미용 시장만 커졌다.

-- 의대공화국이란 말도 생겨났다. 전세계에서 한국만 왜 이리 극성일까.

▲ 선진국은 아이 특성에 맞게 창의적 교육을 한다. 반면 우리나라 엄마들은 아이를 의사 만들려는 일념으로 처음부터 자기들 뜻대로 키운다. 전세계에 한국 같은 나라는 없다. 급속성장에서 비롯된 천박한 자본주의인데, 학술적으로는 '주변 국가'의 특성이라고 말한다.


2014년 서울북부병원장 시절 의료 취약지 찾은 권용진 교수의 모습


[권용진 서울의대 교수 제공.무단배포 금지]

-- 의료계 파행은 누구 탓이 가장 크다고 보는가.

▲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권에 있다. 물론 의료계 스스로 집단의 자율성을 갖추려는 노력을 소홀히 한 탓도 있지만, 의사들만 비난할 수 없다. 모든 규제와 권한은 정치권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포퓰리즘과 편향된 이념으로 의료정책을 다뤄왔는데 이제는 멈춰야 한다.

-- 슬하에 아들만 넷인데, 의사의 길을 권할 생각인가. 자식들 의대 보내려고 하는 의사 많던데.

▲ 자식을 두고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자식들에게 자기가 원하는 걸 하라고 한다. 자기 적성에 맞아 의사 하겠다면 다른 나라에 가서 하라고 하겠다. 중동에서 일해봤는데 지구는 넓고 의사는 모자라더라. 세상엔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

※ 권용진 교수는 누구?

자타가 공인하는 의료정책 및 행정 분야 전문가로, 전북대 의대를 나와 서울시립북부병원장과 국립중앙의료원 기획조정실장,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을 지냈다. 의대 졸업 후 법학 박사 학위를 딴 이색 경력의 소유자로,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당시 대한의사협회의 투쟁위 총괄간사로 대정부 투쟁을 이끌었다. 공공의료단장을 마치고 나서 중동으로 파견돼 아랍에미리트(UAE) 왕립병원에서 부원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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