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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3년 키이우에서] "트럼프, 다른행성 사람?"…종전 원하지만 불안감 팽배
기사 작성일 : 2025-02-19 08:00:56

키이우 시민들


(키이우= 신창용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독립광장에서 리디아 씨(오른쪽)와 올렉산드라 씨가 와 인터뷰 뒤 사진촬영에 응하고 있다. 2025.02.18

(키이우= 신창용 특파원 = 오는 24일 전쟁 발발 만 3년을 맞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결짓기 위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선 반가워하는 분위기를 찾기 어려웠다.

18일(현지시간) 키이우 현지에서 만난 시민들은 혼란스러워하고, 또 두려워했다. 이날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고위급 회담에 착수한 날이었다.

시민들은 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토록 중요한 협상에 전쟁 당사자이자 이번 전쟁의 최대 피해자인 우크라이나를 배제하고 가해국인 러시아와 종전 방안을 놓고 협상을 시작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전쟁의 고통을 모두 뒤집어쓰고도 그 희생이 보답받지 못한 채 러시아에 유리한 조건으로 전쟁이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들을 짓눌렀다.

전쟁 발발 이후 항전, 또 추모 공간으로 재탄생한 키이우의 중심부 독립광장에서 만난 리디아(26) 씨는 "트럼프는 마치 다른 행성에 있는 사람 같다"며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길게 전쟁을 이어왔는지 우리 입장에서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함께 인터뷰에 응한 올렉산드라(28) 씨도 "사람들은 남의 것을 가지고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노리갯감이 우리 자신, 우리나라가 된다면 그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키이우 독립광장에서 만난 시민들


(키이우= 신창용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독립광장에서 안드리이 씨(오른쪽)가 와 인터뷰 뒤 연인인 예브게니아 씨와 사진촬영에 응하고 있다. 2025.02.18

직업을 기자라고 밝힌 안드리이(31) 씨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우크라이나에 외교·국방 장관이 아닌 재무장관을 급파해 희토류 지분의 절반을 미국에 양도하라고 요구했다는 언론보도를 언급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는 "전쟁은 결국 정치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모든 걸 잃거나 목숨을 잃는다. 결국 누군가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사람들의 죽음이 이용당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키이우 독립광장에서 만난 퇴역군인


(키이우= 신창용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독립광장에서 퇴역군인인 유리이 씨가 와 인터뷰 뒤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02.18

키이우 시민들은 전쟁의 끝을 갈망하면서도 그 끝이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퇴역군인인 유리이(56) 씨는 "전쟁은 반드시 끝나야 한다. 이 전쟁 때문에 나는 장애를 입었고, 사위는 목숨을 잃었으며, 딸은 군인이 됐다. 나는 2015년부터 제36여단에서 복무했다. 마리우폴과 엘레노우카에서 잔혹한 전투를 겪었고, 포위망을 뚫고 나올 때 부상 때문에 장애자가 됐다. 이제는 은퇴했지만, 나는 이미 늙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내 두 손주는 아버지를 잃었고, 나는 딸이 너무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이 난국을 잘 해결해서 결국에는 우크라이나가 갈망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끌어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 근거를 묻자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 때 나라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함께하고 있다"며 "지금은 그를 중심으로 모두가 하나로 뭉칠 때"라고 강조했다.


키이우 세브첸코 공원에서 인터뷰하는 올렉시이 씨


(키이우= 신창용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세브첸코 공원에서 올렉시이 씨가 와 인터뷰 뒤 사진촬영에 응하고 있다. 2025.02.18

키이우의 세브첸코 공원에서 만난 올렉시이(38·예술가) 씨는 우크라이나가 배제된 종전 협상에 대한 의견을 묻자 역으로 필자에게 질문을 했다.

"만약 한국이 중국과 전쟁을 벌이는데 미국이 어느 날, 중국과 모종의 협상을 하게 된다면 한국인은 어떤 기분이 들까요? 중국에 해당하는 존재가 우크라이나에는 러시아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한국의 안전을 보장하는 국가이기도 하죠. 지금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다만 그는 이번 전쟁이 미국과 러시아의 직거래로 그렇게 쉽게 끝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전쟁이 그렇게 빨리 끝날 거라고 믿지 않는다. 그런 생각은 너무 순진하다"며 "지금 언론은 '트럼프가 결정했다', '트럼프가 말했다' 같은 제목을 내보내고 있지만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단독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세계적으로 너무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평화를 원하지만, 동시에 자존심을 가진 민족이다. 우리 영토와 자유를 요구하는데, 왜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나"라며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 트럼프의 정책이 평화를 가져올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정책은 심지어 동맹국들 사이에서도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리아와 니나 씨


(키이우= 신창용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세브첸코 공원에서 마리아 씨(오른쪽)와 니나 씨가 와 인터뷰 뒤 사진촬영에 응하고 있다. 2025.02.18

러시아의 점령지인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의 토레츠크 출신인 마리아(84) 씨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 있다는 전망에 불안해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전날 종전 협상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점령지 등 '영토'를 양보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의에 "그런 생각을 하길 원하느냐. 어떻게 양보하겠느냐"고 일축했다.

그는 "내 고향은 러시아의 미사일에 완전히 파괴됐고 집도 잃었다. 이 나이에 집 한 채도 없이 떠돌고 있다"며 "라브로프가 점령지를 양보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고향으로 못 돌아갈까 봐 정말 불안하다"고 말했다.

함께 있던 니나(84) 씨는 "트럼프의 결정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모든 정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구체적인 계획이 제시된 것도 아니고, 언론에 나오는 몇 마디 말뿐"이라며 섣부른 전망을 자제했다.

그는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믿는다. 1991년 구소련에서 독립하던 시기의 우크라이나는 강한 나라였다. 언젠가 다시 우크라이나가 도약할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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