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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연구 이끈 '위당의 사위'…강신항 교수 별세
기사 작성일 : 2025-02-19 12:01:20

2008년의 강신항 교수


[촬영 전수영]

이충원 기자 = 국내 훈민정음 연구의 선구자 강신항(姜信沆)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지난 18일 오전 4시30분께 서울 한양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19일 전했다. 향년 94세.

1930년 5월 충남 아산 도고면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고(1949년 1회 졸업생), 서울대 국문과(49학번)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대학에서 국문과 동기생인 위당 정인보(1893∼1950) 선생의 셋째딸 정양완 여사를 만나 결혼했다. 위당은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터지자 밀물같은 대한독립만세"로 시작되는 '삼일절 노래'를 작사한 국어학자로 1950년 납북됐다.

대학에서 이른바 '7인방'(이기문<1930∼2020>, 김완진<1931∼2023>, 이승욱<1931년생>, 정연찬<1929∼2003>, 안병희<1933∼2006>, 강신항, 김열규<1932∼2013>)을 만나 교류했다. 덕성여대를 거쳐 1964∼1995년 성균관대 국문과에서 강의했다. 1985∼1988년 국어학회장, 1993∼1995년 성균관대 대학원장을 지냈다.



오른쪽은 2003년 수정증보판 '훈민정음연구' 표지. 왼쪽은 [국립한글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오른쪽은 [성균관대 출판부 홈페이지 캡처]

고인은 국내에서 훈민정음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선구자였다.

대학원 석사 과정이던 1956년 이희승(1896∼1989) 선생의 '훈민정음 강독' 수업을 들은 것을 계기로 1957∼1967년 10년에 걸쳐 조선 후기 실학자 신경준(1712∼1781)의 '훈민정음 운해'를 번역했다. 1963년부터 서울대에서 '훈민정음 해례 연구' 강의를 하며 국내 훈민정음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자음을 통해서 국어사를 연구하겠다는 생각으로 '훈몽자회'를 분석하는 등 음운사 연구에도 획을 그었다.

1987년 대표 저서 '훈민정음 연구'를 저술했다. 2016년 국립한글박물관 구술 채록 당시 "(1986년 독일에 갔더니) 23개국 학자들이 모여서 재구(在歐)한국학회라는 걸 (조직해서 해마다 발표를 하는데 이것을) 악세(AKSE)라고 해요. 거기서 러시아의 꼰체비치(레프 라파일로비치 콘체비치)라는 사람이 '훈민정음'이라고 하는 (두툼한 책을) 세계 최초로 1979년에 (낸 것을 알았지). 그 책을 보고 어찌나 화가 났던지. 부랴부랴 이듬해인 1987년에 성대 출판부에서 '훈민정음 연구'를 처음 낸 거예요"라고 저술 계기를 설명했다.

한글 전용보다는 획일적이지 않고 융통성 있게 국한문 혼용을 주장했다. 구술 채록 당시 "우리는 모든 것을 획일적으로 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중략) 예를 들면 한국 명시 감상, 한시(漢詩) 감상도 한글로 전부 써 놓으면 어떻게 하냐는 말이야"라고 했다.

세종문화상, 동술학술상, 용재학술상, 대한민국 학술원상(2008)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정양완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자녀(강석희<명동성당 오르가니스트>·강석란·강석진<아이기스랩 연구실장>·강석화<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 발인 21일 오전 7시30분, 장지 아산시 도고면 선영. ☎ 02-2258-5979

※ 부고 게재 문의는 팩스 02-398-3111, 전화 02-398-3000, 카톡 okjebo, 이메일 유족 연락처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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