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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교수들 사직서 강행에 초조한 환자들…"수술 적기 놓칠라"(종합)
기사 작성일 : 2024-03-25 16:00:34

사직서 제출하는 의대 교수들


윤동진 기자 = 25일 오전 서울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열린 ‘고려대학교 의료원 교수 총회’에서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2024.3.25

(전국종합=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추진에 반발해 전국 의대 교수들이 '무더기 사직'을 예고한 25일 예정대로 사직서 제출이 시작되면서 의료 공백에 따른 환자 불안감은 한층 고조되고 있다.

대통령실이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에 대해 '유연 처리를 모색하라'고 지시하면서 대화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전공의들과 교수들의 반감이 거센 상황이라 실질적인 접점을 찾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의료진 부족'


(대구= 윤관식 기자 = 전공의 집단행동이 이어지며 의료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22일 대구 한 대학병원 접수대 앞에 의료진 부족으로 진료가 지연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4.3.22

◇ "수술 적기 놓칠까 불안" 환자들 전전긍긍

"2차 병원에서 신생아를 데리고 대학병원에 가보라는데, 전공의와 교수가 없어 수술 적기를 놓칠까 봐 불안합니다."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이 시작된 25일, 대구의 한 2차 병원에서 이달 출산한 A(39)씨가 탄식했다.

A씨는 출산 병원으로부터 의뢰서를 써주면 신생아를 데리고 대학병원에 가 검사를 받아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A씨는 "계명대 동산병원은 오늘 교수들이 사직서를 낸다는 보도가 나와서 경북대병원으로 가려고 한다"라며 "정말 수술실에 들어갈 확률은 낮다지만 예후가 좋지 않아서 그저 마음이 힘들다"고 불안해했다.

간질성 방광염의 정보를 교환하는 한 인터넷 카페에는 전공의가 없어 병원 예약을 할 수 없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남원에 산다는 이 누리꾼은 "방광염을 앓은 지 3년 정도 됐는데, 미세 혈뇨가 계속 보인다고 종합병원에 가라고 했다"며 "가까운 전남대 병원에 전화했더니 비뇨기과 의사가 없어서 '예약 불가'라고 하고 전북대병원에 전화했더니 '무기한 대기'하라고 한다. (갈 병원이 없어) 곤란하다"고 토로했다.

안과 질환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에서도 교수들의 집단 사직으로 수술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는 반응이 잇따랐다.

다음 달 수원 아주대 병원에서 4세 자녀의 사시 교정 수술이 예정돼 있다고 밝힌 한 누리꾼은 "교수님들도 사직서를 낸다는 소식을 들으니 너무 걱정이다. 최근 병원에 문의했을 때 수술을 대부분 정상 진행할 예정이라는 답변을 듣긴 했지만, 집도의가 사라지면 수술이 취소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1년 동안 기다려온 수술이다. (자녀를 치료하려면) 수술밖에 답이 없다고 했는데…"라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부산에 거주하는 30대 정모씨는 "아기의 귀에 염증이 생겨 대학병원에 문의했지만 현재 의사가 없어 수술이 어렵다고 했는데, 교수까지 사직서를 쓴다고 하니 환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된다"며 "의료계와 정부 모두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호 외치는 참석자들


윤동진 기자 = 25일 오전 서울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열린 ‘고려대학교 의료원 교수 총회’에서 교수를 비롯한 전공의 및 의대 학생들이 정부 의료 정책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3.25

◇ 무더기 사직 시작되나…충북대·연세대 의대 사직서 제출

전국 의대 교수들은 예정대로 이날부터 사직서를 던지고 있다.

충북 유일 상급종합병원인 충북대병원에서는 현재까지 20여명이, 충북대 의대에서는 교수 30여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장환 충북대병원·의대 비대위원장은 "합당치 못한 의대 증원 규모를 철회하지 않으면 문제는 영구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환자 스케줄을 조정해 중증 환자 위주로 진료를 볼 준비를 마치면 주 52시간제 근무에도 돌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원 지역에서도 일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교수평의회에 따르면 교수 정원이 10명인 일부 필수 의료과목에서 8명이 지난주 사직서를 제출했다.

원주의대 교수평의회는 사직결의문을 내고 이날부터 27일까지 순차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결의문을 통해 "대한민국 의료를 바로 세우는 것이 의사이자 교육자, 그리고 국민의 한 사람인 우리 교수들의 책무이기에 원주의대 교수들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를 거부한 정부의 독선을 저지하고 다가올 정부의 폭압에서 전공의와 학생을 보호하고자 25일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자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선대 의대 교수들도 오전까지 전체의 10% 정도가 교수평의회에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이후에도 상당수가 사직서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이달 초부터 대학별 긴급 설문조사를 해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의견을 모은 충남대와 건양대, 아주대, 부산대, 전남대, 원광대, 전북대, 울산대 의대 교수들도 이날부터 예정대로 사직할 것으로 보인다.

울산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오늘 울산의대 수련병원 교수 433명은 사직서를 제출한다"며 "파국을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교수직을 포기하고 책임을 맡은 환자 진료를 마친 후 수련병원과 소속 대학을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전북대 의대 및 전북대병원 비대위도 이날 낸 성명서에서 "최선을 다해 환자의 곁을 지키려 노력하겠지만 정부의 무능한 불통 정책으로 인한 피해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며 "각자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교수의 직을 걸고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대학 의대 교수 비대위는 이날 오후 회의를 열어 사직서 제출 시기 및 방식과 함께 진료 축소 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또 충북대병원·의대 비대위 교수들은 김영환 도지사와 의대 증원 문제와 관련해 간담회를 갖고, 충북대 의대 해부학 교실에선 한 기초의학 교수가 기자들을 불러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전공의 복귀 호소 영상


박동주 기자 = 24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K컬처 스크린에 전공의 복귀 호소 영상이 나오고 있다. 2024.3.24

◇ 사직서 제출 후에도 당장 진료 중단 없을 듯…"2천명 증원 철폐" 불변

다만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뒤에도 당분간 병원에 남아 진료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보인 만큼 당장 환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광주의 한 3차 병원 관계자는 "교수들이 집단사직하더라도 당장 진료를 중단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52시간 준수에 따른 근무 시간 감소에도 긴급 수술을 중단하거나 거부하는 교수들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선 '2천명 증원 백지화'를 주장하는 교수들의 반발이 여전히 거세다.

아주대 의대 비대위 관계자는 "유연 처리를 모색한다는 정부의 입장 변화는 '3대 때릴 것을 1대 때리겠다'는 격"이라며 "근본적인 변화가 없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진 것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원광대 의대 비대위 관계자 역시 "대통령이 전공의들의 면허취소를 유연하게 한다고 하지만, 애초부터 면허취소는 겁이 나지 않았다는 게 전공의들의 분위기"라며 "2천명 증원을 철폐하고 재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또 전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전국의대 교수협의회 회장단이 간담회에서 유의미한 접점을 찾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충남대 의대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한 위원장의 의정 중재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나 2천명 증원에 대해 변화가 없다"며 "오늘부터 계획대로 교수 각 개인이 자율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의주 김상연 권준우 강태현 이강일 박정헌 백나용 박성제 형민우 장지현 이성민 김솔 우영식 정찬욱 나보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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