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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꼬 트나 vs 소용없다'…대통령·전공의 만남에 반응 엇갈려(종합)
기사 작성일 : 2024-04-03 16:00:33

(전국종합= 윤석열 대통령이 의과대학 증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공의들과 직접 만나 대화할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해 전국 의료계에선 엇갈린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의정 갈등 해소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기대와 만나봐야 양측의 입장차만 확인할 것이라는 회의가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 공백 사태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필수 의료 분야의 진료 및 수술이 차질을 빚는 등 의료 현장의 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외래 진료 단축으로 인한 환자들의 불편은 물론, 일부 병원은 사태 장기화로 인해 심각한 경영난에 내몰리고 있다.

전공의 집단이탈 장기화로 병원에 남은 교수들의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병원들은 '응급실 순환 당직제'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계속되는 의정갈등


[ 자료사진]

◇ 대통령·전공의 대화 두고 반응 엇갈려

대통령이 전공의와 대화 의사를 밝힌 데 대해 경상국립대는 의대 관계자는 3일 "병원에서 교수들만으로 버티는 것은 이제 정말 한계에 다다랐다"며 "이번 대화 의지가 정치적 고려든 아니든 사태가 꼭 수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산의 한 의료계 관계자는 "해결책이 어떠한 방법으로든 나와야 할 때"라며 "전공의가 돌아와야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직접 대화하려는 시도 자체는 매우 중요하다"고 긍정적으로 봤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사는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수원 아주대 병원의 한 교수는 "지난 1일 대통령 담화는 의사들을 카르텔 집단으로 몰아가고 '2천명 의대 증원'에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는 데 그쳤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는 전공의와 대화에 나서겠다니, 윤 대통령의 진의가 명확하지 않아 혼란스럽다는 게 많은 의대 교수의 반응"이라고 말했다.

충북대학교 의대 겸직교수는 "정부는 의료계에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하라고 하지만 그동안 과학적으로 접근해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의견을 줄곧 내왔다"며 "정치적으로 총선 전에 그림을 만들려는 것인지, 실제로 대화할 의사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전라북도의사회 관계자는 "정부에서 유연하게 대처를 한 점은 조금 변했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지난 대통령 담화에서 2천명 증원에는 변함이 없었다. 2천명을 못 박아둔다면 대화가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부산대병원 한 교수는 "양측이 감정의 골이 이미 깊어진 상황에서 정부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전공의들은 대화 테이블에 앉지 않을 것"이라며 "교수들조차 대화를 중재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공의·교수들 사직 결의 잇따라

전공의와 교수들의 사직 결의가 잇따르면서 의정 갈등이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충북대병원과 의대에선 교수 200여명 중 100여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제주대병원에선 10여명이 사직 의사를 밝혔고 인하대병원 교수회는 교수 66명의 사직서를 모았으나 이번 주 내로 타협안이 나올 가능성을 열어두고 실제 사직서 제출은 하지 않은 상황이다.

전공의들의 업무 복귀 또한 요원하다.

전날까지 인턴 임용 등록이 마감됐지만, 대전·충남지역 대학병원에서 수련 접수를 한 인턴은 충남대병원 한 명 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충북 유일 상급종합병원인 충북대병원에서도 임용 예정이었던 인턴 35명 전원이 상반기 수련을 포기한 것으로 파악됐다.

강원대학교병원 역시 28명이 모두 등록하지 않았고,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의 경우 14명이 등록을 거부했다.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관계자는 "인턴 임용자들이 없다고 해서 교수 진료에 무리가 가는 상황은 아니지만, 인턴을 마치고 레지던트로 올라가면서 병원의 일손이 되는 거라 내년부터는 인력난이 생길 수 있어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강원대병원 관계자는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되느냐에 따라 대응책도 달라질 수 있어 상황을 지켜보고자 한다"며 "이후 인턴 임용 추가 등록 또는 특별 지침을 건의하는 방식으로 대책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전공의 이탈에 병원들 경영난…'응급실 순환 당직제' 논의도

전공의 집단이탈 장기화로 병원에 남은 교수들의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는 가운데 광주의 상급 종합병원들은 응급실 순환 당직제에 대한 논의에 들어간다.

전남대병원, 조선대병원, 기독교병원 등 3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이날 오후 4시 병원별로 응급실을 번갈아 가며 운영하는 방안에 대해 머리를 맞댄다.

순환 당직제가 시행되면 응급환자를 당직 병원이 맡아주고, 다른 병원은 담당 의료진에게 휴식을 부여할 수 있다.

광주시 관계자는 "전공의 이탈 장기화로 병원들이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순환 당직제 시행 여부는 논의를 거쳐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탈 전공의들 대부분이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진료 축소로 인한 의료 공백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전성모병원 응급실은 소아과·성형외과 진료가 불가능하고 산부인과·안과 응급 수술도 어려운 상황이다.

충남대병원은 최근 이비인후과 병동을 폐쇄, 안과랑 통합하는 한편 내과와 정형외과 병동의 병상수를 줄여 운영하기로 했다.

제주대병원 교수들은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회 결정에 따라 근무 시간을 법정 근로시간인 주 52시간으로 맞춰 진료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전남대·조선대 의대 교수들도 자율적으로 주 52시간 근무에 참여하기로 했다.

성남 분당서울대병원에서는 소속 다수 교수가 외래 진료 일정을 뒤로 연기해달라고 병원 측에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대병원 한 교수는 "의사들이 모두 자율적으로 근무 시간을 조정하고 있다"며 "긴급 환자가 생기거나 여러 과가 협진해야 하는경우 불협화음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진료 축소에 따른 병원들의 경영난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모습이다.

비상 경영체제 3단계 중 2단계를 유지하고 있는 부산대병원은 지난 2월 20일부터 지난달 20일까지 150억원가량의 손실액이 발생했다.

약 40개 병동이 있는 양산부산대병원은 지난달 중순부터 3개 병동을 폐쇄하고 다른 병동과 통합 운영하고 있다.

전북대병원은 지난달 5층 1개 병동의 운영을 중단했고, 의료진 대상 무급휴가도 시행하고 있다.

전북대병원 관계자는 "병원 지출 중 인건비 비율이 상당히 높다. 진료비를 벌어서 지출하는 구조인데, 수입이 줄었으나 지출은 그대로니 병원 경영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아마 다른 병원도 모두 마찬가지 상황일 듯하다"고 말했다.

(박주영 강태현 나보배 고성식 김솔 이강일 김상연 박성제 박정헌 장지현 천경환 이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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