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aily

여당 참패에 '의정대화' 본격화하나…정부-의사 모두 '신중모드'
기사 작성일 : 2024-04-11 14:00:33

출구조사 여야표정


신준희 한종찬 기자[공동취재]

김병규 성서호 기자 =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여당의 참패로 마무리된 가운데, 선거 결과가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어떤 결과를 미칠지 주목된다.

개표가 완료된 11일 오전 11시 현재 민주당은 지역구에서 161석,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서 14석 등 총 175석을 석권했다. 국민의힘은 지역구 90석, 비례정당 국민의미래 18석 등 총 108석에 그쳤다.

여당의 참패에 의사들은 "의대 증원 강행이 선거 참패를 불렀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신중 모드'를 보이고 있다. 보수 진영의 몰락이 자신들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복잡한 '셈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입법 과정이 필요치 않은 의료개혁을 강행하며 집단사직 전공의에 대한 행정·사법 절차에 착수할 수 있다. 하지만 선거 참패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당분간 유화책을 이어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관건은 사태의 주역인 전공의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다.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만을 고집하는 이들을 설득해 타협안을 만들 수 있느냐에 대화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는 얘기다. 국회에 8명이나 진출한 의사 출신 의원들이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선거일에도 병원 지키는 의료진'


김성민 기자

◇ 출구조사 직후 환호성 지르던 의사들 "마음이 복잡하다"

전날 저녁 총선 출구조사에서 여당의 참패를 예측하는 결과가 나오자 의사들은 환호성을 지르는 듯한 분위기였다.

의사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올린 글마다 '2천명 의대 증원 강행'이 총선 참패의 중요 원인이 됐다는 주장과 함께 의대 증원의 백지화 요구가 분출했다.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 1기 위원장을 지낸 분당서울대병원 정진행 교수는 "(여당 참패는)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고 개인 기본권을 침해한 것을 용서하지 않은 국민 심판"이라고 질타했다.

주수호 전 의협 회장은 "가장 강력한 보수우파 전문가 단체인 의사집단을 건폭(건설현장 폭력배) 다루듯 한 용산과 그걸 말리지 못하고 수수방관한 국힘당이 자초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사들의 반응도 달라지는 모습이다.

임현택 차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이날 오전 새벽 1시께 별다른 설명 없이 SNS에 "마음이 참 복잡합니다"라고 남겼다.

의협 내 대표적인 강경파로 분류되며 총선 전 여당에 대한 '심판'을 역설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정부에 대한 강경 발언을 쏟아내던 노환규 전 회장도 "이런 선거 정말 처음. 국힘의 패배를 바라면서도 대패를 바라지 않는, 개헌선은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남겼다.

이어 이날 오전에는 "의사들을 괴롭히던 정당이 참패했음에도 의사들의 마음이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 외면하거나 또는 바꾸거나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의사들은 이 같은 의외의 '신중 모드'는 보수 진영의 몰락이 자신들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셈법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주수호 전 회장이 "가장 강력한 보수우파 전문가 단체인 의사집단"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의사들은 기본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하다.

의대 증원을 놓고 틀어지기는 했지만,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전통적으로 보수 진영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다.

더구나 대규모 증원을 주장해온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가 야권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진보 진영은 의사들의 기득권 제한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왔다.

보건의료노조 등 야당의 지지 기반을 이루는 노동·시민단체는 의대 증원과 의료개혁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해온 진영이기도 하다.

의대 증원을 추진한다는 이유만으로 보수 여당과 '척지는' 것이 의사들로서는 별로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투병도 막을 수 없는 '투표'


(대구= 윤관식 기자

◇ 정부, 강경노선 택할 수 있지만 당분간 '유화책' 이어갈 듯

총선에서 참패했다고 하지만, 정부가 의료개혁을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미 막바지에 있는 의대 증원 추진은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지, 법률 개정 등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지는 않다.

더구나 의대 증원의 필요성은 정부와 여당은 물론 야당과 시민단체, 환자단체 등도 모두 동의하고 있다.

이에 선거 참패 후 더 큰 레임덕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민적 지지가 큰 의료개혁과 의대 증원 추진에 공을 들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부가 의료공백의 장기화를 막기 위해 이탈 전공의에 대한 면허 정지 등을 강행할 가능성도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탈 전공의들에게 3개월 의사면허를 정지하겠다는 사전통지서를 보내 3월 26일부터 면허를 정지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유연한 처리' 방침에 따라 면허정지 본통지를 하지 않고 송달 절차도 중단했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대화 노력을 계속하겠지만 국민과 환자들을 생각하면 계속 기다릴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며 "의대 증원은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정책이며, 추진 여부가 선거의 이슈도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총선 참패 후 정국을 수습해야 할 정부 여당의 입장에서 강경노선으로의 전환은 현실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장 윤 대통령은 이날 "총선에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야당과 긴밀한 협조와 소통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되느냐'는 기자 질문에는 "네, 그렇게 해석하면 (된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러한 국정 기조를 반영한다면 정부가 의사들과 본격적인 대화를 모색하는 등 유화책을 이어갈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의협 전현직 지도부가 말을 아끼는 것도 섣부른 대정부 맹공으로 인해 정부의 강경노선 회귀를 자극하기보다는, 유화 기조를 이용해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셈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비대위 참석하는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


김인철 기자

◇ '전공의 설득' 등 의료계 목소리 단일화가 관건

정부가 총선 후 의료계와 대화에 나서려고 해도 정작 의료계 내부의 문제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바로 강경 자세를 굽히지 않는 전공의들을 설득해 의료계의 단일한 목소리로 정부와의 협상에 임할 수 있느냐다.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전면 백지화' 등 7대 요구의 수용 없이는 의료 현장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강경 자세를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의 면담이 성사됐지만, 박 위원장은 면담 후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습니다"라는 짧은 메시지로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이는 정부로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정부가 '백기투항'을 하라는 얘기이지만, 의대 증원과 의료개혁 자체는 국민의 지지가 높은 정책이어서 정부가 이를 전면 백지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의료계로서는 강경 자세를 굽히지 않는 전공의들을 설득해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고, 이들에게 타협안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난제'가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최근 의료계가 한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 엇박자를 내는 등 '자중지란' 양상을 보여 이러한 난제 해결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의사 출신 당선자들이 중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는다.

의사 출신 당선자들은 4선에 성공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개혁신당 비례대표 1번 이주영 전 순천형대천안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등 모두 8명에 달한다.

이들이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면서 양측이 접점을 찾아가도록 하는 데 일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이러저러한 대화 노력이 모두 무위로 돌아가면 의료계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대 증원은 확정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대학별 준비 작업을 거쳐 다음 달 말 '2025학년도 대입전형 수시모집요강'에 증원 규모가 최종 반영되면 의대 증원은 말 그대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