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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honey] 섬진강변 달리는 낭만 기차…곡성 증기기관차
기사 작성일 : 2024-04-17 08:01:09


섬진강변을 달리는 증기기관차 [사진/조보희 기자]

(곡성= 김정선 기자 = 겨울에서 봄으로 바뀐 시기의 자연을 느긋하게 관조하고 싶다면 이곳을 떠올려 봐도 좋을 것 같다.

번잡함이 덜해 산과 강의 계절 풍경을 호젓하게 바라볼 수 있다.

전남 곡성의 섬진강 기차마을에서 덜컹거리는 증기기관차에 올라 차창 밖 섬진강과 주변의 자연을 살피다 보면 뜻하지 않게 상념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 곡성의 자연환경

구례군 바로 옆에 위치한 곡성군은 주변 자연환경이 뛰어나 조용히 둘러보기가 좋다.

곡성팔경도 대부분 산과 강의 풍경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동악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해돋이 풍광(동악조일), 산자락에 있는 사찰 도림사의 새벽 종소리(도림효종), 순자강이라고도 부르는 섬진강 상류 주변의 풍광(순강청풍) 등이다.

곡성의 3개 계곡도 유명하다.

신라 무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도림사 주변 계곡, 임진왜란 때 의병들의 훈련장소였던 청계동 계곡, 태안사로 들어가는 계곡 등은 여름철 피서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곡성군을 흐르는 큰 물줄기는 섬진강과 대황강(보성강)이다.

대황강은 압록유원지 근처에서 섬진강과 합쳐진다.

강을 따라 펼쳐진 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 꼽힌다.

계절마다 피는 꽃과 강물에 비치는 나무의 빛깔이 풍경을 이룬다.

봄철에는 국도 주변이나 산비탈 등에 군락을 이뤄 핀 매화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섬진강 둘레길을 걷거나 강줄기를 따라 자전거 하이킹 코스를 이용하는 관광객들이 많다.

◇ 옛 곡성역 보이는 섬진강 기차마을



옛 곡성역 [사진/조보희 기자]

곡성의 명소 중 하나가 섬진강 기차마을이다.

이곳에서 운행하는 증기기관차에 탑승할 수 있고, 페달을 밟고 기차마을 내에서 레일바이크를 탈 수도 있다.

증기기관차의 반환점인 가정역에선 섬진강 레일바이크가 운영된다.

폐선이 된 옛 전라선 구간과 폐역이 된 옛 곡성역을 활용한 이곳은 2005년 개장했다.

폐선 구간은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17번 국도와 나란히 달렸던 구간이다.

맞배지붕의 옛 곡성역은 일제 강점기인 1933년에 지어졌다.

안내판에는 이 건물이 섬진강의 모래를 운반하는 기능을 했던 간이역이었다고 적혀있다.

1999년 전라선 복선화로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면서 폐역이 됐다.

하지만, 건물이 유지· 관리되면서 지금은 국가등록문화재로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섬진강 기차마을은 이곳을 중심으로 조성됐다. 옛 곡성역에 들어가면 기다란 의자, 천장의 나무 구조가 보인다.

기차마을 후문 근처에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러브 트레인'(Love Train)이라고 앞부분에 적힌 기차 모형이 전시돼 있다.



현재의 곡성역 [사진/조보희 기자]

하천에 비치는 기차의 모습과 파란 하늘이 잘 어우러졌다.

왼쪽을 바라보면 현재의 곡성역이 보인다.

외관이 독특하게도 성(城) 모양이다.

곡성(谷城)의 '성'자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 모양을 띤 역사는 현재의 곡성역, 경기 양평군 용문역, 경북 의성군 탑리역이 꼽힌다.

곡성역에는 KTX를 포함한 여객열차가 정차한다.

기차마을에는 다양한 장미를 볼 수 있는 정원이 있다.

중국,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프랑스, 영국장미원을 거쳐 평화장미원, 현대장미원으로 구성됐다.

안내판에는 장미의 시대별, 나라별 특성을 살려 조성했다는 설명이 담겼다.

이곳에선 매년 5월 곡성세계장미축제가 열린다.

풍성한 잎에 탐스러운 꽃을 피우려면 아직 시간이 있어야 한다.

취재팀이 방문했을 때는 무릎보다 키가 약간 작은 나무에 잎이 보였다.

이 나무들이 성장해 5월이 되면 1천4개 품종의 장미꽃을 피워낸다고 한다.

봄이라지만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다.

이미 꽃이 피고 잎이 난 식물도 있지만, 완연한 봄의 풍경을 이루기에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

딱 이맘때 느낄 수 있는 계절감이다.

이런 시기에 기차마을에서 다른 나무를 눈여겨보는 재미도 있었다.

전정하지 않아도 수형이 아름답다는 측백나무 과의 문그로우는 큰 키에 녹회색의 삐쭉삐쭉한 잎과 줄기가 인상적이었다.

같은 측백나무 과의 에메랄드 골드는 원추형의 수형에 황금빛 잎을 갖췄다.

기차마을에는 조그마한 온실도 있어 서양 봉선화, 카카오나무 등을 보며 잠시 쉬어갔다.

◇ 수증기 내뿜고 기적 울리는 증기기관차



섬진강 기차마을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증기기관차 [사진/조보희 기자]

옛 곡성역 인근 철도에 증기기관차가 대기 중이다.

단출하게 객차 3량이 붙어있다.

아담하다고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는데, 앞뒤 기관차에서 흰 수증기가 내뿜어진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하나둘 기념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요즘 보기 드문 광경이다.

탑승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어 옛 곡성역을 다시 한번 둘러본 뒤 증기기관차에 올라탔다.

취재팀이 탄 객차는 앞뒤 의자가 서로 마주 보는 배치였는데, 다른 객차에 갔더니 지하철처럼 양옆으로 기다랗게 의자가 놓여 있다.



섬진강 증기기관차 내부 [사진/조보희 기자]

출발 몇분을 남겨두고 승차권 확인이 이뤄졌다.

증기기관차는 덜컹덜컹 소리를 느릿느릿 내더니 출발하기 시작했다.

옛 전라선 철도 10㎞를 시속 30∼40㎞로 달렸다. 편도 운행 시간 30분 동안 귀에 들리는 의태어가 하나씩 늘어갔다.

증기기관차는 칙칙폭폭, 삐걱, 끼익하는 소리를 여러 번 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들어봤을 소리다.

그러다가 점차 현실감이 느껴졌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기차 소리도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삑'하는 기적이 간간이 울렸다.

몇 분 후에는 이미 오랜 시간 기차에 타고 있었던 듯 이러한 소리에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국내에서 일반적인 증기기관차는 1967년 마지막 운행을 했다.

섬진강 기차마을 증기기관차는 디젤엔진을 이용해 제작, 운영하는 것이다.

◇ 섬진강·국도·철길이 어우러진 길

차창 밖으로 꽃이 핀 매화밭과 푸릇푸릇한 파밭이 지나갔다.

봄 준비를 하듯 수없이 많은 얇은 가지를 머리카락처럼 길게 늘어뜨린 느티나무가 스쳐 지나갔다.

아직 잎이 나지 않았는데도 느낌 탓인지 연두색의 기운이 곧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먼 산에는 아직 운무가 끼어 있었다.

기차가 건널목을 지날 때면 경보음이 들렸고 차단기 앞에는 주변 차량이 멈춰 서 있었다.

기차 안에선 운행 거리와 시간을 설명해주는 것부터 시작해 지역의 설화, 섬진강의 유래 등에 대한 안내 방송이 간간이 흘러나왔다.

증기기관차를 타고 가정역 방향으로 가다 보면 왼쪽으로 섬진강이 보인다.

그 옆으로 자동차가 오가는 17번 국도가 나란히 펼쳐져 있다.

이때쯤 안내방송이 나왔다.

섬진강과 국도 그리고 그 위로 열차가 달리고 있는 철길이 있다면서 "전국에서 이 세 가지가 나란히 활처럼 휘어져 어우러져 가는 곳은 곡성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얼마쯤 지나니 역시 진행 방향 왼쪽에 뿔 두 개 달린 돌도깨비가 보일 것이라는 안내방송에 눈을 크게 뜨고 창밖을 살폈다.

건너편에 우뚝한 돌 조각상이 확연히 보였다.

여기에는 곡성의 역사 속 인물인 마천목 장군과 도깨비 설화가 담겨 있다고 한다.

설화는 마천목 장군의 효심에 감동한 도깨비들이 섬진강에 고기를 잡을 수 있는 어살(고기를 잡기 위해 강이나 해안가에 쌓아 놓은 돌담)을 만들어 줬다는 내용이다.

근처 섬진강에 있는 어살은 이런 연유로 '도깨비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바깥 풍경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지니 꽤 알찬 여행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환점인 가정역에 도착해선 15분 동안 정차했다.

가정역에서 내리면 그 앞에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건너편까지 뻗어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사람이 다니는 길이 200m의 교량이다.

탑승객들은 이곳에서 다시 수증기를 내뿜는 증기기관차나 교량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다시 증기기관차를 타고 기차마을로 돌아왔다.

가정역에선 왕복 순환 방식으로 3.6㎞ 구간의 섬진강 레일바이크가 운행된다.

섬진강 기차마을을 이번에 이틀간 방문했다.

첫날은 흐리다가 비가 왔고, 둘째 날에는 날씨가 맑았다.

흐린 날은 흐린 대로 운치가 있어 호젓한 분위기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맑은 날에는 차창 밖을 스치는 나무들이 좀 더 생기있어 보였다.

◇ 감칠맛 나는 대표 음식 참게 매운탕



기차마을 전통시장 음식점의 참게탕 [사진/조보희 기자]

참게와 은어는 곡성군 대표 음식의 주요 재료다.

이곳에선 참게탕과 참게장, 수제비, 은어 튀김과 구이, 회가 유명하다.

참게 음식은 깔끔하고 개운한 맛을 자랑한다.

은어 요리는 살점에서 은은한 수박 향이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근 도로를 달리다 보면 지역의 대표 음식 재료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볼 수 있다.

조형물은 여러 마리의 은어가 힘차게 도약하는 형상, 참게의 집게를 단면적으로 부각한 형상을 보여준다.

곡성군 오곡면 압록리에는 '참게·은어 거리'가 조성됐다.

취재팀은 곡성 기차마을 전통시장 근처 식당을 찾았다.

출입구에 참게탕 전문점이라고 쓰여있었다.

참게탕은 참게, 우거지, 수제비가 양념과 어우러져 매콤하면서도 단맛이 나고 감칠맛이 돌았다.

반찬으로 나온 무 생채 무침, 콩나물무침, 버섯볶음, 야채전 등은 간이 강하지 않아 참게탕의 맛을 방해하지 않고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지역의 특색 있는 요리와 평범해 보이는 반찬이 조화로웠다.

※ 이 기사는 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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