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aily

경찰서 앞 '찰칵'…사진으로 본 데라우치 조선총독의 경주 방문
기사 작성일 : 2024-07-16 09:00:38

사진첩 '조선 고(古)사진'에 실린 경주경찰서


(경주= '조선 고(古)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온라인 경매에 올라온 사진첩에 실린 경주경찰서 앞에 걸려 있는 일장기와 제복을 입은 일행의 모습.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에 따르면 사진 속 인물들은 데라우치 조선총독과 수행원들이다.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경주= 김예나 기자 = 일제강점기 초대 조선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1852∼1919)는 1912년 11월 7일 경북 경주에 도착했다.

당시 환갑이었던 그는 수행원들과 경주군청, 경찰서 등 곳곳을 둘러봤다.

그간 조선총독부 기록과 언론 기사를 통해 알려졌던 데라우치의 '경주 순시' 모습이 여러 장의 사진으로 확인됐다.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최근 일본의 한 온라인경매에 '조선 고(古)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사진첩을 입수해 살펴보니 1912년 11월 경주를 방문한 데라우치 당시 조선총독의 모습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고 16일 밝혔다.


사진첩에 실린 사진


(경주= '조선 고(古)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온라인 경매에 올라온 사진첩에 실린 일제강점기 경주군청으로 쓰인 경주 동헌의 일승각 앞에 모인 제복 차림의 일행.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에 따르면 사진 속 인물들은 데라우치 조선총독과 수행원들이다.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첩에는 24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

함 관장은 "사진첩 주인은 당시 군 병원과 같은 의료기관의 원장으로 추정된다"며 "총독의 경주 순시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사진첩을 만들어 판매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진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쪽에는 신라 제29대 왕인 태종무열왕(재위 654∼661) 무덤 앞에서 세워진 국보 '경주 태종무열왕릉비'를 비롯해 불국사, 석굴암 등 경주 일대 문화유산 사진이 담겨 있다.


사진첩에 실린 사진


(경주= '조선 고(古)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온라인 경매에 올라온 사진첩에 실린 경주를 방문한 일행 너머로 금관총 모습이 보인다.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에밀레종'으로도 잘 알려진 성덕대왕신종의 옛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사진들은 조선의 예술과 문화에 애정을 쏟은 일본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가 소장했던 자료와 비슷하다고 함 관장은 전했다.

사진첩은 데라우치 총독의 경주 방문 당시 행적도 비중 있게 다룬다.

데라우치와 수행원들이 경주 시내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경주경찰서를 방문한 모습, 당시 경주군청으로 쓰인 옛 경주 동헌의 일승각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등을 볼 수 있다.


사진첩에 실린 데라우치 추정 사진


(경주= '조선 고(古)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온라인 경매에 올라온 사진첩에 실린 제복 차림의 인물.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에 따르면 사진 속 인물들은 데라우치 조선총독과 수행원들이다.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함 관장은 "봉황대 앞 신작로에서 이루어진 환영 사열 등은 이미 알려진 사진이지만, 경주군청에서의 기념사진과 경주경찰서 방문 사진은 처음 본다"고 설명했다.

경주군청 앞 사진은 당대 주요 인사의 행적을 연구할 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데라우치가 일제 강점기 한반도 통치 방식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점을 고려하면 그의 방문이 경주에 박물관이 들어서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신라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겠다는 명분을 내건 조선총독부 관변 단체 '경주고적보존회'는 데라우치가 경주에 다녀간 다음해인 1913년 5월 설립됐다.


사진첩 '조선 고(古)사진'에 담긴 경주의 주요 문화유산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들이 문화유산을 전시하겠다며 만든 진열관은 경주 최초의 박물관으로 여겨진다.

경주고적보존회 진열관에 있던 소장품은 1926년 문을 연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으로 흡수됐고, 광복 이후에는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첩은 일제강점기 경주에서 실시된 조사·발굴사업이나 박물관 설립 배경을 파악하는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함 관장은 "총독이 직접 경주를 둘러본 다음해 경주고적보존회 설립도 본격화한다"며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려져 있던 사실을 한 권의 사진첩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자료"라고 밝혔다.


사진첩 '조선 고(古)사진'에 담긴 경주의 주요 문화유산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함 관장은 경주박물관과 관련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경북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同) 대학원에서 신라 금관을 비롯한 삼국시대 금속 장신구 분야를 전공한 그는 경주 출신의 박물관 인(人)이기도 하다.

함 관장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지금의 국립경주박물관이 있기까지 여러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를 모으는 중"이라며 "지금까지 모은 자료만 약 1천건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료를 토대로 '일제강점기 경주의 박물관'을 주제로 한 책을 펴낼 예정이다.


사진첩 '조선 고(古)사진'의 모습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