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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사실혼 동성부부' 법적 권리 첫 인정한 대법원
기사 작성일 : 2024-07-18 18:00:34

승소 후 손잡고 법원 떠나는 동성 커플


서대연 기자 = 동성 연인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과 관련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한 소성욱씨와 김용민씨(오른쪽)가 손을 잡고 밝은 표정으로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떠나고 있다. 2024.7.18

사실혼 관계에 있는 동성 동반자에게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처음으로 인정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8일 동성 커플인 소성욱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보험금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항소심 결과를 확정했다. 동성이더라도 사실혼 관계에 있다면 이성간 사실혼 부부처럼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라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 2019년 동성인 김용민씨와 결혼한 소씨는 건보공단이 자신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자 소송을 냈다. 1심은 동성 간의 결합을 사실혼 관계로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항소심은 본질적으로 사실혼과 같다며 소씨의 주장을 인용했다.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소씨의 들어준 것은 민법상 허용되지 않았던 동성 부부의 법적 권리를 일부나마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 파장이 작지 않다.

헌법 제36조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兩性)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민법과 대법원 판결, 헌법재판소 결정도 성별이 다른 남녀 간의 결합만을 혼인으로 인정한다. 국민건강보험법 역시 법률혼상의 배우자만이 피부양 자격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시행기관인 건보공단은 행정적 재량권을 사용해 실질적인 결혼 관계를 유지하는 사실혼 배우자도 피부양자로 인정해오고 있다. 대법원은 소씨 커플을 '부부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공동체'로서 본질적으로 사실혼 관계에 있다고 봤다. 따라서 건보가 합리적 이유 없이 소씨의 피부양 자격을 거절한 것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행위로서 헌법상의 평등원칙을 위배한 것이라는 게 사법부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피부양자 제도의 본질에 입각하면 동성 동반자를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동성 부부의 사실혼 지위 자체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사실혼과 다름이 없는 동성 커플에게 행정적 차별을 하지 않는 것과 현행 가족법·민법에 따라 사실혼으로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라는 게 사법부의 판단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로 인해 동성 부부의 법적 권리가 곧바로 다른 사회보장제도로 확장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궁극적으로 동성 부부의 법적 지위 허용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올해 초 2심에서 소씨의 승소 판결이 있은 뒤에도 우리 사회 내 의견은 극명히 엇갈렸다. 동성 부부의 평등한 권리를 인정한 최초 판결이라는 환영 입장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 위헌이라는 주장과 극심한 반발도 터져 나왔다. 그렇지만 혐오나 갈등만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종교계의 반대 등으로 동성혼은 물론 동성애를 공론장에 올리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강한 것이 사실이다. 동시에 동성혼 법제화와 동성 커플의 권리 확대는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이기도 하다.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면서도 전통과 국민 정서를 세심하게 고려하는 충분하고 건강한 공론화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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