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간 사다리 (PG)
[강민지 제작] 일러스트
(세종= 민경락 박재현 기자 = 계층 간 소득 격차가 일부 완화되고 있지만 자산 불평등은 더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획기적인 개선 없이 오랜 기간 소득 불평등이 누적되면서 부동산·주식 등 자산가격 상승세에 올라 타 자산 양극화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높은 사교육비 탓에 교육의 '계층 사다리' 기능이 퇴화했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지도 오래다. 소득·자산 격차가 사회적 불평등으로 깊게 뿌리내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 중점 과제로 '소득·교육 불균형 등 양극화 타개'를 내세운 것도 이런 상황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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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 깊은 소득 불평등…노인·자영업 등 취약계층에서 더 커
14일 통계청 등 관계 당국에 따르면 소득 격차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최근 완만하게 개선되는 모습이다.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2022년 0.324로 전년보다 0.005 하락하며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1년 이후 가장 낮았다. 지니계수는 0부터 1까지 수치로 표현되며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정도가 크다는 의미다.
하지만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202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이 제출한 최근 자료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한국은 26위로 중하위권에 그쳤다.
특히 노인·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일수록 소득 불평등은 더 심각하다.
OECD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보고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Pension at a glance 2023)을 보면 한국의 66세 이상 노인의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0.376으로 전체 인구(0.331)보다 높았다. 노인 인구의 소득 불평등 수준이 다른 계층보다 더 심하다는 뜻이다.
OECD 회원국 평균 노인 인구의 가처분소득 지니계수(0.306)가 전체 인구(0.315)보다 낮은 점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자영업자 역시 팬데믹 기간 빚이 늘어난 상황에서 고금리 직격탄을 받아 불평등이 심화한 취약계층으로 꼽힌다.
2022년도 귀속분 소득신고 현황을 보면 사업소득 '상위 10%'의 1인당 평균 소득은 1억1천49만원으로 평균(1천614만원)의 7배에 달했다.
상위 10% 근로소득 평균(1억3천509만원)이 전체 평균(4천214만원)의 3배를 조금 웃도는 것과 대비된다.
폐업한 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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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지 않는 '영끌' 대출…'자산 불평등'의 단면
해묵은 소득 격차는 부동산·주식 등 자산 불평등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총자산에서 부채를 제외한 순자산 기준으로 작성된 한국의 지니계수는 2011년 0.619에서 2017년 0.584까지 하락했다가, 2018년부터 5년 연속 상승했다.
2022년 0.606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0.605)에는 사실상 전년과 같은 수준에 머물렀다.
폭증하는 가계부채는 이런 '자산 불평등'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의 몸부림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는 주춤하고 있지만 주택 구입을 위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대출은 여전히 가파르게 늘고 있다.
올해 9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1천135조7천억원으로 전달보다 5조7천억원 늘었다.
9월 증가 폭은 8월(9조3천억원)보다 40% 가까이 줄었지만 영끌과 직결된 5대 은행 하루 평균 주택 구입 목적 개별 주택담보대출은 3천451억원으로 역대 최대(추석 연휴 제외)였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산을 형성하려면 잉여 소득이 있어야 하는데 저소득층은 그런 잉여 소득이 없다"라며 "소득보다 자산이 커지는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불평등이 심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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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교육 장벽에 막힌 '계층 이동' 사다리
소득·자산 불평등이 '기회 불평등'에 가로막혀 개선될 기회조차 찾기 쉽지 않다는 점은 더 우려스럽다.
교육은 공교육 부실화, 과도한 선행학습과 맞물린 사교육 등으로 인해 계층 사다리 역할을 제대로 못 한다는 것이 대한민국 사회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27조1천억원으로 1년 전보다 1조2천억원 늘며 3년 연속 최고 기록을 갈아 치웠다. 정부가 지난해 제시한 목표(24조2천억원)를 한참 웃돈다. 사교육에 참여하는 서울지역 고 2∼3학년 학생의 한 달 평균 사교육비가 처음으로 100만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갈수록 거세지는 '의대 광풍'이 사교육비를 밀어 올린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사교육 의존도가 과해진 배경에는 공교육의 역할이 제한된 상황도 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부모 재력 등 가정 환경 영향 없이 아이들의 '성장 사다리'가 돼야 하는 학교가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선별'하는 기능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강지나 교사가 지난해 발간한 책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에서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을 '사다리를 걷어차는 제도'라고 지적한 것도 이런 배경과 관련이 깊다.
강 교사는 "빈곤층 아이들은 교육비를 지원받는다고 해도 교육 자본을 성공적으로 형성하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 사회의 교육제도가 이미 기본적 교육비와 기회 제공만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일수록 최상위권 학생들이 선호하는 의대 진학률이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조정훈 의원실이 교육부·한국장학재단·전국 의과대학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도부터 올해까지 12년간 전국 의대 신입생 중 기초·차상위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신입생은 1.4%에 불과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불평등 완화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라며 "입시 교육뿐만 아니라 직장 재교육, 직업훈련 등도 충분한 기회가 있어야 하고 노동시장 장벽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