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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극우당 대부' 장마리 르펜 사망
기사 작성일 : 2025-01-08 00:01:01

프랑스 극우 정치인 장마리 르펜


[로이터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파리= 송진원 특파원 = 프랑스의 극우 세력의 '대부'격인 장마리 르펜이 7일(현지시간) 향년 9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르펜은 최근 세력이 급성장한 극우 성향 정당 국민연합(RN)의 전신인 국민전선(FN)의 설립자다. 또 RN의 실질적 지도자이자 하원 원내대표 마린 르펜 의원의 부친이기도 하다.

1928년생인 그는 전후인 1956년 27세에 당시 최연소 국회의원에 선출됐다.

1972년 국민전선을 창당한 뒤 반(反)이민, 민족주의, 반유럽연합(EU) 정책 노선을 주장해 프랑스 주류 정치권엔 끼지 못했다.

르펜은 자신의 극우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종종 인종차별이나 반유대주의적인 도발도 서슴지 않았다.

1987년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를 언급하며 "제2차 세계대전의 작은 디테일"이라고 표현하며 논란의 중심이 됐다. 2005년엔 한 인터뷰에서 "프랑스가 독일 점령하에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독일 점령이 그렇게 비인도적이진 않았다"고 해 여론의 비판과 함께 사법 판단을 받았다.

프랑스 내 무슬림에 대해 "프랑스인이 아니다"라며 무슬림 사회를 배척하는 혐오 발언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2014년엔 에볼라 바이러스가 아프리카에서 유행하자 "에볼라가 아프리카 인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망언했다.

르펜은 페미니즘 운동과 성소수자의 권리를 비판하는 발언도 종종 내뱉어 인권 운동가들에게 거센 비판을 받기 일쑤였다.

프랑스 내 대표 극우 정치인으로 떠오른 그는 대통령 선거에도 여러 차례 출마했다.

특히 2002년 대선 1차 투표에서는 약 17%의 지지율로 2위에 올라 결선에 진출하면서 프랑스 정치권을 긴장에 빠트리기도 했다. 당시 결선에서 르펜의 약진에 놀란 여론이 자크 시라크 대통령으로 결집, 르펜은 약 18%의 득표에 그쳤다.


장마리 르펜과 그의 딸 마린 르펜


[AFP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르펜은 2011년 딸인 마린 르펜 의원이 당 대표에 오르면서 2선으로 물러나게 된다.

마린 르펜은 당 대표에 오른 뒤 부친과 다르게 당의 외연을 확장하고 주류 정치권에 편입되기 위해 '탈(脫)악마화' 전략을 펴며 급진적 이미지를 상당 부분 완화했다.

당내 반유대주의나 인종차별 발언을 통제하고, EU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를 요구한 과거 극단적인 노선에서도 벗어나려 애썼다.

르펜은 딸의 이런 행보를 강하게 비판하다 결국 2015년 당에서 제명까지 당하게 된다.

그런데도 르펜은 2019년까지 유럽의회 의원을 지내며 활발한 정치활동을 펼쳤다. 유럽의회에서 활동하다 정치 자금을 부정 사용했다는 혐의로 수사 당국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고령에 심혈관 질환까지 앓은 르펜은 최근 건강이 극도로 악화해 시설에 입원했었다.

마린 르펜 의원은 인도양에 있는 프랑스령 마요트섬을 방문하고 파리로 돌아오는 길에 부친의 부고를 들었으나 아직 입장을 내지 않았다.

대통령실인 엘리제궁은 성명에서 "극우의 역사적 인물인 그는 약 70년 동안 우리나라의 공적 영역에서 역할을 수행했고, 이제 역사가 판단할 것"이라며 "공화국 대통령은 그의 가족과 가까운 이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는 엑스에 "그가 불러일으킨 논란에도 그는 프랑스 정치에 중요한 인물이었다. 우리는 그와 싸우면서 그가 어떤 투사인지 알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는 엑스에 "항상 프랑스에 봉사하고 프랑스의 정체성과 주권을 수호했다"며 애도를 표했다.

반면 극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리더인 장뤼크 멜랑숑은 "장마리 르펜의 행동은 여전히 용납될 수 없다. 그가 퍼뜨린 증오와 인종차별, 이슬람 혐오, 반대유대주의와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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