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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샷!] "울지 말고 잘 가"…참사로 '둥이'도 가족을 잃었다
기사 작성일 : 2025-01-14 06:00:30

고인이 촬영한 '둥이'의 모습


[유족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장성= 이승연 기자 = 재난·재해가 휩쓸고 간 자리에 가족을 잃은 채 남겨지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희생자들이 가족으로 여겼던 반려동물도 있다.

말 못 하는 동물이지만 하루아침에 주인을 잃은 반려동물도 충격과 슬픔, 쓸쓸함을 피해가지 못할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달 29일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로 179명이 희생된 가운데 주인과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반려동물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네 집 중 한 집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시대, 참사로 갑자기 가족을 잃게 된 반려동물의 돌봄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라남도 무안군청과 동물권 단체 '카라'가 제주항공 참사로 주인을 잃은 반려견 '둥이'를 입양 보내기 위해 손을 잡았다는 소식에 그 현장을 찾았다.

국가적 재난 상황 속 민관이 함께 희생자의 반려동물 돌봄 공백을 지원한 사례다.


눈을 보고 신난 둥이


이승연 기자 = 지난 10일 제주항공 참사로 가족을 잃은 '둥이'가 눈 쌓인 길을 산책하고 있다. 2025.1.14

지난 10일 흰 눈이 발목까지 쌓여있던 전남 장성군의 한 마을.

최강한파가 전국을 강타한 이날 진도 믹스견 '둥이'는 추위 속에서도 이제나저제나 주인이 돌아올까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둥이의 견주 A씨는 지난달 남편과 함께 태국 여행을 떠났다가 제주항공 참사로 돌아오지 못했다. 최근 건강이 악화해 따뜻한 나라에서 푹 쉬다 오려 했던 여행이 이 부부의 마지막이 됐다.

시신 수습부터 장례, 발인까지 한 달 같은 일주일을 보낸 유족은 고민 끝에 부부가 키우던 둥이를 입양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간 유족이 틈틈이 둥이의 밥을 챙겼지만 '돌봄 공백'의 우려는 현실화했다. 마을 주민들의 도움을 구하는 일도 한계에 봉착했다.

마음을 추스를 여유조차 없던 유가족에게 힘이 된 건 무안군청과 카라의 발 빠른 보호 조치였다.

이날 카라 활동가들은 둥이의 입양을 추진하기 위해 유족과 함께 마을을 방문했다.

둥이는 유족이 다가오자 반가움에 앞다리를 들고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빠르게 흔들었다. 짖고 낑낑대기를 반복하며 기쁨을 표했다.

고인의 친언니 정모(50) 씨는 "이렇게 빨리 떠날 줄 몰랐네. 네 몸집이 커서 (동생이) 이렇게 집도 만들어줬는데…"라며 둥이를 쓰다듬었다. 정씨의 빨간 눈가가 더 붉어지더니 눈물이 가득 맺혔다.

정씨는 "유독 둥이가 저를 보면 반가워했다. 저희가 자매라서 그런지 무언가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정씨에 따르면 고인은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슬하에 자녀는 없었지만 둥이를 아들처럼 애지중지 키웠다고 한다.

정씨가 보여준 고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는 둥이를 향한 애틋함이 가득했다. "한 시간 산책 후 기분 좋은 표정", "매력쟁이", "늠름한 자태, 든든하다"고 적은 고인의 글에서 둥이를 향한 사랑이 묻어났다.

"둥이는 동생이 '어부바' 해주는 걸 유독 좋아했어요. 동생은 몸집이 작은 편이었는데도 둥이가 기대겠다고 하면 매번 등을 내어줬죠."


A씨와 둥이가 함께한 시간


[고인 SNS 캡처. DB 및 재판매 금지]

A씨와 둥이가 가족이 된 건 2019년부터였다.

남편의 비염 치료를 위해 시골살이를 시작한 A씨에게 둥이는 가장 친밀한 친구이자 자녀였다. 장난기가 많은 둥이는 때때로 땅을 파서 집을 뛰쳐나갔지만, 밤이 되면 재깍 돌아왔다고 한다.

"그럴 때면 제부가 둥이를 혼냈는데,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주눅이 들었다가도 또 금방 신이 나서 뛰어놀았죠."

눈밭 위를 신나게 뛰어다니던 둥이가 정씨 앞에 와서 드러누웠다. 정씨가 배를 쓸어주자 둥이는 바닥에 등을 비비며 행복해했다.

옆에 서 있던 정씨의 노모는 이들의 다정한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애틋하면서도 공허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 눈물을 훔쳤다.

정씨는 "동생과 둥이를 떠나보낸 것에 대해 가족들과 앞으로도 계속 얘기하고, 슬퍼하고, 또 그리워하면서 살려고 한다. '그때 우리 함께했지, 참 행복했지, 지금 있었다면 동생이 이렇게 말할 텐데' 하면서 추억하며 살아가려고 한다"고 했다.


작별 인사하는 둥이와 가족들


이승연 기자 = 지난 10일 제주항공 참사로 주인을 잃은 '둥이'와 유가족들이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2024.1.14

유족과 둥이에 대한 소유권 이전 동의를 마친 후 둥이를 케이지에 옮기는 작업이 시작됐다. 좁은 케이지에 들어가는 게 낯설었던 둥이는 바닥에 깔려있던 애꿎은 담요만 물어뜯었다.

마을 사람들도 둥이와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한 주민은 둥이에게 "서울로 간다고? 아이고, 네가 나보다 좋은 곳으로 간다"고 인사를 건넸다. 둥이의 밥을 챙겨준 마을 이장님도 손을 흔들었다.

정씨와 노모는 둥이에게 "울지 말고 잘 가", "행복하게 살아"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들은 활동가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둥이를 가족처럼 대해줄 곳에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동생도 둥이가 행복하길 바랄 거예요. 사랑으로 보듬어줄 가족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검진받는 둥이


이승연 기자 = 지난 10일 제주항공 참사로 주인을 잃은 '둥이'가 동물권단체 '카라' 보호소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있다. 2025.1.14

둥이에 대한 보호 조치는 장성군청과 카라의 면밀한 협력 체계를 토대로 이뤄졌다.

지난 2일 카라는 각 지자체에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장례 기간 반려동물 돌봄, 입양 홍보 등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A씨 유가족의 사정을 인지한 무안군청이 이에 응답해 카라에 지원을 요청했다.

김영환 카라 정책국장은 14일 "동물을 위해서만 아니라, 희생자와 유족을 위해서라도 재난 참사 지원체계에 반려동물 관련 내용이 마련돼야 한다"며 "반려가구 비율이 늘어나는 만큼 향후 대형참사에 대응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지원 체계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3 한국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말 반려동물을 둔 가구는 총 552만가구로 2020년 말보다 2.8% 증가했다. 전체 가구의 25% 수준이다.

장성군청 최성식 주무관은 "유족이 처한 상황이 이례적인 만큼 군 내에서 입양을 추진하기보다 전국에서 활동하는 보호단체에 협조를 요청해 신속히 처리하려 했다"며 "둥이의 사례가 반려동물 지원 체계의 선례로 남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이에 앞서 제주항공 참사로 주인을 잃은 또다른 전남 영광군 반려견 '푸딩이'도 유족 동의 하에 동물권 단체 '케어'를 통해 새 가족을 찾아나서게 됐다.


눈 위를 달리는 둥이


[촬영 이승연] 202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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