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칸유니스에서 휴전 소식을 반기는 주민들
(칸유니스 AP= 15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칸유니스 시내에서 이스라엘과의 휴전합의 타결 소식을 환영하는 현지 주민들. 2025.1.15
황철환 기자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압박 등을 배경으로 전쟁 발발 15개월여만에 6주간의 휴전에 전격 합의하면서 향후 우크라이나전 등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15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의 휴전에 전격 합의했다.
작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해 민간인과 군인, 외국인 등 1천200명을 살해하고 250여명을 납치하면서 시작됐던 전쟁이 마침내 휴전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합의된 사항은 일단 42일간 교전을 중단하면서 하마스가 억류 중인 인질 30여명을 풀어주고 영구휴전 여부를 논의한다는 것이다.
3단계로 이뤄지는 휴전에서, 1단계 휴전 종료 시점에서도 풀려나지 못하는 인질이 여전히 수십명에 이르고, 이스라엘내 극우세력의 반발 탓에 영구휴전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는 등 일부 불안요소가 남아 있지만 현재로선 긍정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장기전에 돌입한 까닭에 경제성장률이 급락하고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등 이스라엘 경제에 심각한 부담이 걸린 데다, 당분간은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할 만한 주변세력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어서다.
하마스는 물론 하마스의 편을 들어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한 레바논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이번 전쟁으로 지도부가 사실상 궤멸했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교외를 순찰하는 보안군 병사들
(다마스쿠스 AFP= 15일(현지시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교외 둠마르 지역을 순찰 중인 보안군 병사들. 2025.1.15
지난달에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친아랍 성향의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리아를 교두보 삼아 이스라엘을 견제해 온 이란도 치명상을 입혔다.
같은 맥락에서 작년 11월 말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체결한 60일간의 임시휴전도 연장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지금껏 헤즈볼라는 시리아를 경유해 이란으로부터 무기와 자금 등을 지원받아왔다. 그러나 아사드 정권 붕괴로 이란과의 육로 연결이 끊기면서 이제는 군사력을 신속하게 복구하기 힘든 형편에 놓인 것으로 평가된다.
극단으로 치닫던 중동의 무력충돌이 종식될 수 있었던 데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라는 변수 역시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대선 과정에서 '힘을 통한 평화'라는 원칙을 거듭 강조했던 그는 지난달 2일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2025년 1월 20일 이전까지 인질들이 석방되지 않는다면 중동 지역과 인류에 반(反)하는 만행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 큰 대가가 있을 것(there will be ALL HELL TO PAY)"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하마스가 현재 억류 중인 미국인 포함 인질을 자신의 취임때까지 석방하지 않을 경우 "중동에서 전면적인 지옥이 펼쳐질 것"이라며 "그것은 하마스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장관 등도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할 때까지 인질 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를 완전히 격파해야 할 것"이라며 압박에 박차를 가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AP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최근에는 트럼프 당선인의 중동평화 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 휴전을 압박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1기 당시 네타냐후 총리와 남다른 '브로맨스'를 과시한 바 있다. 일각에선 이번 휴전이 트럼프 당선인을 위한 네타냐후 총리의 '선물'이란 해석도 나온다.
대선 기간 트럼프 당선인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돼 현재도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취임하면 24시간 안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공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측근들을 중심으로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보류하고 현 전선을 동결시키는 형태의 휴전 방안이 거론돼왔다. 양국군이 대치하는 '경계선'을 기준으로 사실상 새 국경을 긋자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 의지를 거듭 밝히는 한편, 지난 9일에는 회담을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 까닭에 트럼프의 대선 승리가 확정되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휴전 협상에 대비해 한치라도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려고 공세 수위를 대폭 높인 상황이다. 특히 러시아는 북한군의 파병까지 받아들여 우크라이나군과의 전투에 투입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다만,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일방적 승리를 거둔 가자전쟁과, 어느 쪽도 확고한 우세를 점하지 못한 채 3년 가까이 힘겨루기 양상의 소모전이 지속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은 상황이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
[AFP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러시아는 결정적인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피해가 누적되고 있지만 병력과 화력 우위를 앞세워 느리게나마 꾸준히 전선을 밀어붙이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병력부족으로 고전하면서도 완강한 방어전을 펼치며 러시아군에 손실을 강요 중이다.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을 진두지휘해 온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나, 우크라이나 침공을 명령해 전쟁의 불씨를 당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양측 지도부도 건재하다.
전쟁 지속을 위한 여력이 남아 있고 먼저 백기를 드는 쪽이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이 불보듯 뻔한 만큼 휴전협상이 시작되기가 가자 전쟁에서보다 훨씬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트럼프 당선인이 이달 7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반년 안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해결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6개월이라는 시간이 있기를 바란다"며 '24시간내 종전'이란 기존 입장에서 물러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이처럼 녹록치 않은 상황이 반영된 결과일 수 있다.
한편, 오는 20일 퇴임을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은 차기인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끊겨선 안 된다면서 최근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규모 군사원조 패키지를 차례로 발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