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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갈등 1년] ① 증원에 사직·휴학 맞선 '치킨게임'…대화가 먼저다
기사 작성일 : 2025-02-04 06:00:34

[※ 편집자 주 =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2천 명 확대를 발표하면서 불거진 의정 갈등이 1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와 강의실을 떠난 의대생들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고 정부와 의료계는 여전히 공식 대화 없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는 의정 갈등 1년의 경과와 영향, 향후 전망, 전문가 제언, 일지 등을 6편의 기사로 송고합니다.]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 자료사진]

고미혜 오진송 기자 = "19년 동안 묶여 있던 의대 정원을 과감하게 확대하겠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작년 2월 6일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5천58명으로 2천 명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의료계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일방적인 증원이라는 반발 속에 전공의는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휴학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증원된 2025학년도 의대 입시는 거의 마무리됐다. 하지만 여전히 전공의와 의대생은 돌아오지 않았고 정부와 의료계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곧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이 확정되고, 전공의 수련 개시와 새 학기 개강이 코앞으로 닥쳤지만 기나긴 의정 갈등의 캄캄한 터널은 그 끝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의과대학에 놓인 가운


김성민 기자 = 7일 서울 한 의과대학 교실에 가운이 놓여져 있다. 2025.1.7

◇ '5년간 1만 명' 파격 증원 후 醫政 강대강 '치킨게임'

1년 전 정부가 발표한 '5년간 총 1만명' 증원 계획은 2020년 문재인 당시 정부가 추진하다 무산된 '10년간 4천명' 증원보다 규모도 크고 속도도 빠른 것이었다.

정부는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으로 상징되는 지역·필수의료 위기와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 등으로 의사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며, 증원 규모는 국책연구기관 등의 수급 추계와 각 대학의 수요조사를 바탕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으로 필수의료 위기를 해소할 수 없으며 저출생 추세를 고려할 때 의사 수가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맞섰다. 무엇보다 정부가 의료계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였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2020년 의정 갈등 때처럼 젊은 의사와 예비 의사들이 투쟁 선봉에 섰다. 전공의들은 사직으로, 의대생들은 휴학으로 항의 의사를 표시했다.

의사들의 반발에도 정부는 대학별 정원을 확정하면서 증원에 쐐기를 박았고, 전공의에겐 업무개시명령으로, 의대생에겐 휴학 불허로 강경하게 맞섰다.

정부는 전공의 수련특례 적용(7월), 의대생 휴학 승인(10월), 전공의 수련·병역 특례(1월) 등 유화책을 내놓기도 했지만 전공의와 의대생은 증원 백지화 요구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와 같은 강대강 대치는 2025학년도 의대 입시가 거의 마무리된 지금까지도 진행형이다.


전공의 복귀할까


류영석 기자 =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 의료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2025.1.19

◇ '뉴노멀' 된 전공의 없는 병원…의사 배출 '절벽' 현실화

지난달 31일 기준 전국 211개 수련병원 전공의 출근율은 8.7%다. 의정 갈등 이전에 수련병원에 있던 전공의 1만3천531명 중 1천171명만 수련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에 있었던 올해 상반기 레지던트 모집에선 사직 전공의의 2.2%인 199명만이 복귀를 택했다.

작년 2월 20일 전공의 사직이 시작됐을 때 의료현장은 혼돈이었다. 수술이나 진료 연기와 취소가 속출했고, 응급실 뺑뺑이는 더욱 심화해 환자 피해는 커졌다.

정부는 군의관·공보의 차출부터 한시적 수가 인상, 비대면진료 확대 등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한 비상조치를 단행했고, 전문의와 진료지원(PA) 간호사 중심으로 대형병원을 재편하는 등의 작업도 속도를 냈다.

며칠도 못 버틸 것 같던 '전공의 없는 병원'은 1년이 지나며 '뉴노멀'이 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전국 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 비율은 4%에 그친다. 2023년 말 38.5%의 10분의 1 수준이다.

주요 병원들의 수술 건수도 전공의 사직 이전의 74% 수준(1월 2주 차 기준)까지 회복하는 등 초반의 대혼돈도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그러나 의정 갈등 장기화 여파는 수술 건수 증감보다 더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박민수 차관


[ 자료사진]

올해 배출된 신규 의사는 작년의 8.8%인 269명에 그쳤고, 전문의 시험 응시자는 작년의 5분의 1인 566명에 불과하다.

전공의의 빈 자리를 메우던 전문의는 지쳤고, 교수의 연구 활동은 뒷전으로 밀렸다. 비상 의료체계를 유지하는 데 투입된 건강보험 재정도 불어나고 있다.

3월에도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고, 의대생이 휴학을 이어가면 의사 배출 절벽과 의료 파행 해소의 기회는 또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 여전히 공식 대화 없는 의정…2026학년도 정원 논의 물꼬 틀까

지난 1년간 사태 해결을 모색할 정부와 의료계 간 별다른 공식 대화는 없었다.

양측 모두 상대방에 대화를 요구했지만 전제 조건부터 엇갈리며 평행선을 달렸다. 몇 차례의 비공식 물밑 대화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작년 11월 여야의정 협의체가 야당과 주요 의료단체가 빠진 반쪽 형태로나마 출범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의대 정원을 놓고 입장차만 확인하며 20일 만에 좌초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와 당시 포고령에 담긴 '전공의 처단' 문구는 의정 갈등을 더욱 악화시켰다.


대한의사협회


[ 자료사진]

의료계 대표 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의협대로 지난 1년간 임현택 전 회장 취임과 탄핵, 비대위 전환, 보궐선거 등의 혼란을 겪었다.

지난달 취임한 김택우 의협 회장은 정부가 의대 교육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을 제시해야 대화에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한 차례 비공개 회동을 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고, 의협이 비공개 회동이 공개된 데 반발하면서 이후 협의는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갈등이 1년을 넘기면서 양측 모두에게 대화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이 이달엔 확정돼야 하는데 이대로면 1년 전 정해진 2천 명 증원이 내년에도 적용되고, 그리 되면 의료 파행의 출구 찾기는 요원해진다.

대화의 시간이 많지 않지만 일단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14일 개최 예정인 의료인력 추계기구 관련 입법 공청회가 대화의 물꼬를 틀 계기가 될지 관심을 모은다.

여야의 관련 법안을 놓고 이뤄지는 공청회엔 의협 관계자들도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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