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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워치] 이자로 수십조 버는 은행들의 부당대출
기사 작성일 : 2025-02-05 07:00:16

김지훈 선임기자 = 은행에서 대출받았다가 만기일 전에 갚거나 다른 대출로 갈아타려면 중도상환수수료를 내야 한다. 대출자 입장에선 빚을 빨리 갚아 이자 비용을 줄이는 게 좋지만, 은행은 대출해주는 데 들어간 비용이나 자금 운용 차질, 이자수익 감소 등을 이유로 일종의 '위약금' 성격의 벌칙을 매기는 것이다.

그런데 금융위원회가 실제 들어간 비용 내에서만 중도상환수수료를 부과하도록 관련 감독규정을 바꾸자 수수료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은행권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수수료율은 1.43%에서 0.56%로 0.87%포인트(p)나 떨어졌고 변동금리 신용대출도 0.83%에서 0.11%로 0.72%p 하락했다. 5대 시중은행이 받은 중도상환수수료 수입은 연간 약 3천억원 규모다. 중도상환수수료율을 이렇게 내릴 수 있었다면 그동안 열심히 노력해 빚을 일찍 갚은 대출자는 내지 않아도 되는 수수료를 부담한 게 아니냐는 억울한 심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서울시내에 설치된 4대 은행 ATM기기. [ 자료사진]

수수료 수입도 많지만 매년 사상 최대 순이익을 내는 은행들의 최대 효자는 이자 이익이다. 에프엔가이드가 전망한 4대 금융지주의 작년 순이익은 16조8천17억원으로 전년(15조1천367억원)보다 11.0%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작년 4분기 순이익도 2조4천160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3천421억원)의 2배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하나금융지주가 4일 발표한 작년 순이익은 3조7천388억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은행의 수익 급증은 무엇보다 예대금리차 확대 덕이다. 4대 은행의 신규 예대금리차는 작년 8월 평균 0.94%p에서 작년 12월 1.46%p로 커졌다. '영끌'로 간신히 내 집을 마련한 서민이나 생활고를 겪는 자영업자들은 높은 대출금 이자를 감당하기 고통스러워도, 금융당국에겐 적정 수준의 예대마진 관리 감독보다 대출금리를 통한 가계대출 총량 조절이 더 우선순위인 듯하다.

그러니 국내 경기가 어려워도 대출 수요가 있는 한 은행들은 호황이다. 과거처럼 대기업 여신이 부실해져서 은행이 휘청거릴 가능성도 크지 않다. 은행이 돈을 잘 버니 직원들도 급여를 많이 받는다. 2023년 4대 은행의 직원 1인당 평균 급여는 1억1천600만원이었고 작년 상반기엔 6천50만원이었다. 은행들이 희망퇴직 직원에 지급한 퇴직금은 평균 4억∼5억원(기본퇴직금 포함) 선이고 최대 10억원에 육박한 경우도 있었다. 은행은 작년 말과 올해 초 희망퇴직을 실시했는데 최대 28∼31개월 치 임금을 희망 퇴직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은행 대출 창구. [ 자료사진]

고객이 예금한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많은 수익을 내는 은행들이 그 대출에서조차 제대로 관련 규정을 지키지 않거나, 회장 친인척 등에게 해줘서는 안 되는 대출을 해주는 부당행위를 했다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지난 4일 금융감독원 발표를 보면 우리은행,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에서 적발된 부당대출은 482건, 총 3천875억원이었다. 우리은행은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규모가 애초 알려졌던 350억원의 2배에 달했고 다른 은행에서도 허위 매매계약서로 감정평가액을 부풀리거나 대출 차주로부터 금품을 받은 정황도 드러났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 임직원이 은행자원을 본인 등 특정 집단의 사익을 위한 도구로 삼아 부당대출 등 위법행위와 편법영업을 서슴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과거 금융당국이 혁신적 서비스를 통해 국내 금융산업을 '아시아의 금융허브'로 키우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내세웠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당시 기업대출 부실의 위험을 경험한 은행들은 가계대출에 치중해왔고, 특히 아파트를 담보로 잡은 안전한 대출의 이자 수익에 안주하고 있다. 10여년 전 은행산업 내 경쟁을 유도하는 '메기'역할을 하라는 특명하에 인가받았던 인터넷 은행은 현재 대형금융지주와 똑같은 상품·서비스로 영업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은행들이 고되고 팍팍한 삶에 지친 서민을 상대로 '이자로 돈버는 은행'이 아니라 '힘들 때 도와주는 고마운 은행'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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