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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못 먹을지도] ③ 장례식장 성게미역국 자리에 황탯국
기사 작성일 : 2024-09-01 07:00:36

[※ 편집자 주 = 기후위기가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우리 삶에 가져온 변화를 느끼는 데는 둔감합니다. 언제든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미 밥상에는 뚜렷한 변화가 왔습니다. 어릴 적 식탁에서 흔히 보이던 단골 국과 반찬이 어느새 귀한 먹거리가 됐습니다.밥상에 찾아온 변화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짚어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기사를 송고합니다.]

(제주= 백나용 기자 = 서울에 사는 김미연(35)씨는 8월 중순께 친구 할머니 빈소가 마련된 제주시의 한 장례식장을 찾았다가 문화충격을 받았다.


성게미역국


(제주= 백나용 기자 = 성게미역국은 제주 장례식과 잔칫날에 흔히 대접되는 음식이었다. 오죽하면 '인심은 구살(성게의 제주어)국에서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경조사 때 귀한 성게를 얼마나 많이 넣어 국을 끓였는가는 손님에게 성의를 표시하는 척도로 평가됐다.사진은 지난 7월 15일 제주시 한 향토 음식점에서 촬영한 성게미역국. 2024.9.1

상주가 대접한 음식이 소고기와 대파를 넣어 빨갛게 끓여낸 육개장이 아닌 황탯국이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전북에서 제주로 이사해 고등학교까지 다니다 서울에 올라가 줄곧 지낸 그가 문상을 갔던 서울 근처 장례식장에서는 대부분 육개장이 나왔었다.

상주를 위로하고 국 한술 뜨던 그는 또 한 번 낯선 소리를 들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친구가 "요새 제주 장례식장이나 잔칫날에 성게미역국은 보기 힘들어 졋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 말에 상조회사 도우미 분은 "성게가 비싸 단가를 도저히 맞출 수 없다"며 "제주에서는 황탯국이나 생선미역국으로 대체된지 꽤 됐다"고 답했다.

성게미역국은 과거 제주 장례식과 잔칫날에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오죽하면 '인심은 구살(성게의 제주어)국에서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경조사 때 귀한 성게를 얼마나 많이 넣어 국을 끓였는가는 찾아온 손님에게 성의를 표시하는 척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가뜩이나 귀했던 성게가 더욱 귀해지면서 노란 성게알이 둥둥 떠 있는 시원하고 구수한 성게미역국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제주 향토 음식점에나 가야 성게미역국이 메뉴판에 적혀있고, 그것도 성게알은 보이는 듯 마는 듯 한 정도다.

1일 제주지역 어촌계에 따르면 2017년만 해도 1㎏당 6만원에 판매됐던 성게알은 올해 3배 이상 뛴 가격에 거래됐다.

김계숙 제주도해녀협회장은 "대부분 어촌계에서 성게알 1㎏당 17만원에 팔았다. 1㎏당 20만원을 받는 어촌계도 있었다"며 "가격이 비싸도 없어서 못 판다"고 말했다.


보라성게알


(제주= 백나용 기자 = 1일 제주지역 어촌계에 따르면 2017년만 해도 1㎏당 6만원에 판매됐던 성게는 올해 3배는 비싸진 17만∼20만원에 거래됐다. 2024.9.1

이처럼 성게알이 비싸진 이유는 전보다 성게를 채취하는 데 품이 많이 드는데다 힘들게 잡은 성게에 알이 차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령화된 제주 해녀들은 주로 5m 내외 수심에서 해산물을 채취한다.

문제는 이 수심대 어장에서 바위에 하얗게 달라붙어 미역과 모자반 등 해조류를 폐사시키는 '갯녹음 현상'이 가장 먼저 발생한다는 점이다.

한국수산자원공단이 2년마다 실시하고 있는 갯녹음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조사 암반 164.02㎢의 39.53%인 64.84㎢에서 갯녹음이 발생했다.

갯녹음 어장에 서식하는 성게에는 우리가 흔히 '성게알'이라 부르는 생식소가 없다.

성게는 전체 무게 대비 알 무게가 10%는 돼야 경제성이 있지만, 갯녹음 어장에 잡히는 성게 몸통을 반으로 갈라보면 노란 알 대신 내장만 나온다.

결국 알이 찬 성게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갯녹음 현상이 발생하지 않은 더 깊은 바닷속까지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양병규 제주해양수산연구원 연구사는 "갯녹음 어장에서 서식하는 성게는 주 먹이인 해조류가 사라져 영양가 없는 이끼나 석회조류를 먹는 탓에 크기는 크지만, 생식소는 발달하지 못한다. 마치 '공갈빵' 같다"며 "며 "알이 찬 성게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바다에 들어가야만 해 해녀가 성게를 잡는 데 시간이 더 소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알이 차고 있는 성게


(제주= 백나용 기자 = 1일 제주해양수산연구원에 따르면 갯녹음 어장에서 서식하는 성게는 주 먹이인 해조류 대신 석회조류나 이끼를 먹고 살면서 흔히 '성게알'이라고 불리는 생식소가 발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사진은 지난 27일 제주해양수산연구원에서 촬영한 갯녹음 어장에서 채취해 양식 중인 성게. 전체 무게에 약 5%가량 알이 차 있다. 2024.9.1


성게 입


(제주= 1일 제주해양수산연구원에 따르면 갯녹음 어장에서 서식하는 성게는 주 먹이인 해조류 대신 석회조류나 이끼를 먹고 살면서 흔히 '성게알'이라고 불리는 생식소가 발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사진은 지난 27일 제주해양수산연구원에서 촬영한 갯녹음 어장에서 채취한 성게. 2024.9.1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성게는 무자비한 먹성에 강한 생존력으로 갯녹음 어장에서도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

상위 포식자가 없는 갯녹음 어장에서 개체 수를 늘린 성게는 계속해서 서식지를 넓혀가며 해조류 뿌리까지 먹어 치워 갯녹음 현상을 가속화 한다.

그동안 해녀가 성게를 채취하면서 자연스럽게 개체 수 조정이 이뤄졌지만, 경제성이 없어 방치되는 갯녹음 어장에 성게가 늘면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 제주해양수산연구원에 따르면 갯녹음 현상이 발생한 어장 1㎡에 '알 없는' 성게가 100마리 이상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지역 갯녹음 어장 성게 서식 광경


[한국수산자원공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양 연구사는 "갯녹음 어장에 서식하는 성게를 대상으로 양식 실증 실험을 한 결과 '알 없는' 성게라도 해조류나 양배추 잎사귀 등을 먹이니 4개월 만에 10% 이상 알이 차는 것을 확인했다"며 "다만 이 성게에서 알을 채취하고 가공할 방안이 마뜩잖다. 현재 수작업 외에는 방안이 없어 경제성이 낮다"고 말했다.

양 연구사는 "성게알 채취와 가공이 자동화될 수만 있다면 갯녹음 어장 성게 개체수 감소도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갯녹음 현상이 심화해 앞으로 성게미역국을 더 보기 힘들어지기 전에 이와 관련한 연구나 사업 추진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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