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일자리 대체
[구일모 제작] 일러스트
박형빈 기자 = 최근 10년간 급속히 발전한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이 다양한 산업에 빠르게 도입되면서 그 활용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AI가 생산성을 향상하고 인간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긍정적인 역할도 있지만, 인간의 기존 직업이 AI로 대체돼 많은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AI가 거의 모든 일자리를 빼앗아 인간이 AI에 종속되는 디스토피아 공상과학(SF) 영화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일정 부분 대체할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어떤 업종을 대체할지와 대체 속도에 대해선 아직도 의견이 갈리고 있어 과도한 경계보다는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적응할지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 '튜링 테스트'부터 '챗GPT'까지…급속히 발전
오늘날 AI의 태동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 영국의 전산학자 앨런 튜링은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기계의 능력을 측정하는 '튜링 테스트'를 제안했다.
이후 1956년 미국 다트머스 대학 학회에서 기계가 인간처럼 학습·발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토론이 열리며 'AI'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세기의 대국> 마지막 승부
이세돌 9단이 15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 특별 대국장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구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5번기 제5국 맞대결에서 첫 수로 우상귀 소목에 흑돌을 두고 있다. 2016.3.15 [구글 제공]
이 무렵 인간처럼 수학 정리를 증명하는 프로그램 '논리 이론가'(Logic Theorist·1956), 간단한 심리 상담을 할 수 있는 자연어 처리 프로그램 '일라이자'(ELIZA·1964) 등이 개발됐지만 기술적 한계에 부닥쳐 AI 연구는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1980년대 들어 인간이 정한 규칙에 따라 기계가 판정을 내리는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이 등장하는 등 산업계에 관련 개념이 응용돼 다시 관심을 일으켰지만, 이는 인간이 짠 구조 안에서만 작동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지금의 AI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2006년 제프리 힌턴이 '심층 신뢰 신경망'(DBN)을 제시해 신경망의 학습 속도와 효율성을 크게 높이면서 현대 AI 기술의 핵심인 '딥러닝'이 가능해졌다. 기존 AI가 인간이 만든 규칙을 데이터에 적용해 정답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면, 이제는 AI가 스스로 데이터에서 규칙을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GPT-4
[오픈AI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이후 컴퓨터 성능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AI는 급속도로 발전했고, 2016년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AlphaGo)가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을 꺾은 사건은 AI 기술의 잠재력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2022년 출시된 오픈AI의 ▲대형언어모델(LLM)▲ 챗GPT는 AI가 텍스트, 이미지, 오디오 등 다양한 콘텐츠를 창작할 수 있는 '생성형 AI'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2023년 챗GPT를 "과학 발전을 심오하게 변화시킨 존재"로 평가하며 비인간 최초로 '네이처 10'에 선정하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의 반도체와 소규모 인프라로 챗GPT 등 선두 주자를 위협하는 AI 모델 '딥시크-V3'와 '딥시크-R1' 등을 선보여 충격을 주기도 했다.
최근 업계는 LLM에서 나아가 AI가 인간의 물리적·디지털 행동까지 학습해 수행하는 거대행동모델(LAM) 연구에도 힘쓰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CES 2025'에서 "로봇을 위한 챗GPT의 모멘트가 다가오고 있다"며 로봇 중심의 물리적 AI 시대가 다가올 것이라고 시사했다.
◇ AI가 많은 일자리 대체 가능…업종·속도는 이견
각종 기관이나 전문가들은 AI가 많은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그 분야와 속도에 대해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2013년 영국 옥스퍼드대 마이클 오스본 교수와 칼 프레이 교수는 미국에 존재하는 702개 직업(2010년 기준)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향후 20년 이내에 미국 일자리의 약 47%가 컴퓨터에 의해 대체 및 자동화되거나 직업의 형태가 크게 변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AI 일자리 대체 (PG)
[강민지 제작] 일러스트
연구팀은 직업 특성과 전문가들의 판단 등을 근거로 이를 산출했는데, 자동화 위험이 높은 직업은 주로 반복적이고 복잡하지 않은 업무였다. 연구팀은 이후 영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각각 35%, 49%의 일자리가 대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컴퓨터과학 인공지능 연구소(CSAIL) 연구팀은 지난해 1월 발표한 논문에서 대다수의 근로자를 기계로 대체하기에는 현재 경제적 효과가 부족하다며 AI에 의한 일자리 대체가 예상보다 점진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8월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AI 기술 활용 실태조사'를 보면 AI 기술을 실제 경영에 활용하는 국내 기업은 전체의 30.6%에 불과했다. 발전된 기술을 실제 현장에서 수용하는 데에는 수년의 시간이 소요되고, 관련 규제 등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AI에 의한 직업 대체 가능성을 추론하는 다른 이론은 에드 펠튼 교수가 제안한 'AI 직업 노출도'가 있다.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분석팀 오삼일 팀장과 한지우 조사역이 2023년 11월 발표한 'AI와 노동시장 변화'에 따르면 직업별 AI 노출 지수를 산출한 결과, 우리나라 취업자 중 약 341만명(전체 취업자 수 대비 12%)은 AI 기술에 의한 대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념과 다르게 고학력, 고임금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AI에 더 많이 노출돼 대체 가능성이 높게 나타났는데, 화학공학 기술자, 발전장치 조작원, 철도 및 전동차 기관사, 상하수도 처리 장치 조작원, 재활용 처리 장치 조작원, 금속재료 공학 기술자 등이 해당했다. 세분류로 살펴보면 대표적인 고소득자인 의사, 회계사, 자산운용 전문가, 변호사 등도 포함됐다.
반면 AI 노출 지수가 낮은 직업은 음식 관련 단순 종사자, 대학교수 및 강사, 종교 관련 종사자, 운송 서비스 종사자, 가수 등 대면 접촉 및 관계 형성이 중요한 직업이었다.
AI 노출에 의한 자동화 비율
[국회도서관 자료.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국도 골드만삭스가 2023년 직종별 AI 노출도를 분석한 결과, AI 노출도는 모든 산업 전반에 걸쳐 25% 수준이었으며, 역시 행정(46%)과 법률(44%)에서 가장 높고 건설(6%) 및 유지보수(4%)와 같은 노동집약적 분야에서는 낮게 나타났다.
반면 세계경제포럼(WEF)이 같은 해 발표한 '가장 빨리 사라질 일자리'의 상위권에는 은행 창구직원 및 관련 직원, 우체국 직원, 계산원 및 매표원, 데이터 입력 담당자, 행정 및 집행비서 등이 있었다. 입법부 의원 및 공무원도 8위였다.
챗GPT에 '향후 AI의 발전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직업과 낮은 직업을 각각 5개씩 꼽아보라'고 물었다. 높은 직업은 '데이터 입력원', '콜센터 상담원', '조립 및 제조 작업자', '회계 및 세무 분석가', '운송 및 배달원'이라고 답했고, 낮은 직업은 '의사 및 간호사', '예술가', '교사', 사회복지사', 연구개발 과학자'라고 했다.
챗GPT는 "AI의 직업 대체 가능성은 업무의 반복성과 창의성, 그리고 인간적인 판단이 필요한 정도에 따라 갈린다"고 설명했다.
◇ AI가 신규 일자리도 창출…직업 보완성 있어
AI의 발전은 기존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지만, 관련한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한다.
WEF는 AI 및 머신러닝 전문가, 정보보안 분석가, 핀테크 엔지니어, 빅데이터 전문가 등의 일자리가 급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한 기술 콘퍼런스에서 "AI가 우리의 모든 직업을 앗아갈 것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며 "미래에는 직업이 '선택'이 될 것이고 취미 같은 일을 하고 싶으면 할 수 있겠지만, AI와 로봇이 당신이 원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AI에 노출된다고 해 모두 '위태로운' 직업이라는 건 아니다.
이는 AI 노출도와 AI 보완성의 관계를 통해 엿볼 수 있는데, AI 보완성이란 AI가 인간을 대체하지 않고 인간의 업무를 보완해 고도화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판사는 AI의 텍스트 분석 발전으로 AI에 많이 노출돼있지만, AI에 사법 판결을 위임할 가능성은 작아 보완성이 높다.
인공지능 AI 로봇(CG)
[TV 캡처]
한편 AI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소득 격차와 일자리 전환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AI 노출도가 높은 고소득층 중 50% 이상은 대체 효과보다 보완 효과가 강해 소득이 증가하지만, 텔레마케터 등 AI 노출도가 높은 저소득층은 AI로 대체돼 노동소득이 정체되거나 감소할 수 있다.
국회도서관은 지난해 5월 발간자료 '인공지능과 일자리의 미래'에서 "높은 교육 수준을 요구하는 일자리는 증가하고 저임금 일자리는 감소할 수 있으므로 고임금 직업군으로 이동할 수 있는 직업군 이동 프로그램과 직업 매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AI 도입에 대한 국가별 차이가 글로벌 소득격차로 확대할 가능성이 있어 저소득국가와 신흥국은 디지털 인프라와 인적 자본투자, 디지털 기술개발에 중점을 두고 AI 도입 및 적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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