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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에 학업 접었다가 일흔 넘어 고교 졸업장 받는 할머니
기사 작성일 : 2025-02-18 14:00:30

(고양= 노승혁 기자 = "진짜 배움에는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이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일흔 넘어 고교 졸업장 받는 황외숙 할머니


[촬영 노승혁 기자]

생업을 위해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학업을 뒤늦게 이어가 76세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된 할머니가 화제가 되고 있다.

황외숙 할머니는 오는 20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송암고등학교에서 열리는 제44회 졸업식에서 우수 졸업생으로 국회의원 표창을 받는다.

1950년 울산시 울주군 범서면 서사리에서 태어난 황 할머니는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남동생과 여동생 뒷바라지를 위해 어머니와 논농사와 밭농사를 했다.

황 할머니의 학업은 초등학교 졸업 후 중단됐다.

어머니 혼자서 힘든 농사일을 도맡아 할 수 없었기에 20대 중반까지 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농사일을 거들었다.

25살에 친한 언니가 서울서 식당을 해 상경한 황 할머니는 식당 일을 배우면서 정착하게 됐다.

10년간 식당 일을 하다 35살에 친구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남매를 낳아 1992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으로 이사하면서 지방에 계신 어머니도 모셨다.

그는 아이들을 낳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아침이면 우유 배달과 신문 배달을 했고, 배달일이 끝나면 아파트 공사 현장에 나가 노동일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가난과 못 배운 설움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남자들도 버거운 아파트 공사 현장 일에 아파트 페인트 칠하기, 입주 청소, 장판, 도배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고 했다.

그러던 2008년 집 근처에서 3개월짜리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해 곧바로 일을 했다.

그는 하루 두 군데에서 6시간 동안 요양보호사 일을 했다.

일을 너무 잘해 그를 찾는 곳이 끊이질 않았다고 설명했다.

가족을 건사하느라 바빴던 그는 일흔을 넘긴 나이에 배움의 갈증을 달래기에 나섰다.

남매를 대학까지 졸업시킨 그는 2020년 초 지인의 소개로 중학 학력 인증기관인 파주시 금촌동에 있는 한마음 성인 중학교 야간반에 입학했다.

고양시 백석동에서 파주 금촌까지 3년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등교했다. 당시에도 요양 보호사 일을 하면서 일이 끝나면 버스를 타고 금촌역 앞 중학교에 다녔다.


일흔 넘어 고교 졸업장 받는 황외숙 할머니


[촬영 노승혁 기자]

중학교 졸업식 때도 3년 개근해 국회의원상을 받았다.

중학교를 졸업하자 남편의 지원으로 지금의 송암고등학교 문을 두드렸다.

뒤늦게 배움의 길에 나선 그는 열정이 넘쳤다.

백석동에서 버스를 타고 경의·중앙선 일산역 앞에서 스쿨버스를 번갈아 타고 통학하면서도 단 하루도 결석하지 않았다. 당연히 지각도 없었다.

나이 어린 동급생과의 관계도 좋아 '젊은 누나'로 불렸고, 가끔 수업이 지루할 때는 옛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했다.

담임 김장현 교사는 "황외숙 어르신은 너무 성실하고, 엄할 때는 판관 느낌이 났다"며 "수업 중이나 학생 간 논쟁이 있을 때 어르신이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 양측이 수긍하고 잘 넘어가는 걸 몇 차례나 봤다"고 말했다.

18일 와 만난 황 할머니는 졸업의 기쁨을 가족과 급우들에게 돌렸다.

그는 "5년간 건강히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도와준 가족에게 감사하고, 우리 반 학우들이 10대부터 40∼60대, 70∼80대까지 다양한 데 손주 같은 친구부터 자식 같은 학우들이 너무 잘해줘 무사히 공부를 마쳤다"며 "결과가 명확히 나오는 수학을 가장 좋아한다. 학교에 다니면서 몰랐던 영어도 배우고 길거리를 지나다 영어로 된 간판을 보면 뜻을 알 수 있어, 그럴 때면 신세계가 펼쳐진 것 같아 너무 신나고 즐거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대학 진학을 권유받았다는 황 할머니는 최근 전문대학 사회복지학과에 합격했다.

황 할머니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암기 등이 버거워진다"면서 "대학 가서도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싶다. 졸업 후에는 나보다 더 나이 많은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를 해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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